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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 선언했지만 험난한 국회 문턱…“독립적 재정기구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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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나라 살림 씀씀이를 제어하는 ‘재정준칙’의 연내 법제화를 선언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길 때는 적자 한도를 2%로 억제하는 내용이다. 나라 경제의 성장세와 비례해 살림살이를 짜도록 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재정 폭주’를 막겠다는 취지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부터 재정준칙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압도적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보다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직 민주당이 공식적인 당론을 채택하진 않았지만, 반대기류가 강하다. 경기 위축에 따라 국가 재정의 역할이 커질 텐데, 재정준칙 도입은 시기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날 민주당 원내 대책회의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고 취약층 지원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인데 거꾸로 긴축재정을 편성했다”(김정호 원내 선임부대표)며 확장 재정에 무게를 뒀다. 민주당은 여당이던 문재인 정부 때에도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마련한 재정준칙에 비슷한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적으로도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이른바 부자 감세 논란이 현안이라 당분간 재정준칙 논의가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재위의 관심사는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인하 등 정부의 세제 개편안”이라며 “민주당 내에서 재정준칙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으나,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급하게 통과시킬 이유는 없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정 운용 기준이 구체적인 수치로 법에 명시되면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통해 정책적으로 개입할 운신의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전시나 국가 비상사태, 대규모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위기 같은 재난적 상황에서는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예외 사유를 법에 명시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안보다 더 강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확장 재정으로 국가채무는 5년간 450조원이나 불어나 1000조원을 넘어섰다. 매년 100조원 수준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급상승했다. 인구 감소세에 노령화까지 겹쳐 복지 수요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빚더미는 미래세대가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재정준칙은 현재 세계 105개국이 도입해 시행 중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터키)뿐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전 정부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라면서도 “재정준칙 예외 사유를 추경 편성 요건과 동일하게 규정했는데, 이는 결국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재정이 흔들릴 소지가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장기적으로는 준칙이 엄격히 실행되고, 재정이 외풍에 간섭받지 않도록 독립적인 재정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국회 예산정책처의 기능을 강화해 예산 규모 적정성에 대한 검증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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