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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신세계 촬영 때 미치겠다며 전화…느끼는 대로 하라 그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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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정재(오른쪽)가 ‘제2의 전성기’ 발판이 된 ‘신세계’에서 황정민과 호흡 맞춘 장면. [사진 NEW]

이정재(오른쪽)가 ‘제2의 전성기’ 발판이 된 ‘신세계’에서 황정민과 호흡 맞춘 장면. [사진 NEW]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비영어권 배우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의 인터뷰에서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최형인(73) 명예교수다. 1999년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입학해 대학원에서 공연영상예술학 석사까지 마친 이정재가 다른 학교에 몸담고 있던 최 교수를 ‘연기 스승’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배우 출신 교수이자 여성 연출가로 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를 지낸 최 교수는 이정재뿐 아니라 이경영·권해효·유오성·설경구·이문식 등 연기파 배우들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13일 이정재의 에미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 소식을 들은 최 교수는 “이제 진짜 국제적인 스타가 됐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사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송해성 감독이었나. 연기를 좀 가르쳐 달라며 집으로 데려왔더라고요.”

모델 출신으로 갑작스레 배우로 데뷔하게 된 이정재는 드라마 ‘공룡선생’(1993)과 ‘모래시계’(1995), 영화 ‘젊은 남자’(1994)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비주얼은 좋지만 입도 벙긋하면 안 된다”는 세간의 평가에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였다. 영화 ‘정사’(1998) 등에서 가능성을 본 최 교수는 학교에서 수업하듯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최형인 교수

최형인 교수

이정재는 난관에 봉착할 때면 최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영화 ‘오! 브라더스’(2003) 촬영 도중 스스로 옛날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도, ‘태풍’(2005)에서 캐릭터 고민이 깊어질 때도 최 교수를 찾았다.

최 교수는 부산에서 ‘신세계’(2013) 촬영 당시 갑자기 “미치겠다”며 걸려 온 전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금 누구랑 찍고 있느냐고 물으니 최민식·황정민 같은 배우들이랑 찍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뭘 할 생각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네가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보여줘라 그랬죠.”

‘신세계’의 이자성, ‘관상’(2013)의 수양대군 등 강렬한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후에야 연기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는 뭘 가르칠 수 있겠어요. 자기 안에 가지고 있지만 모르는 걸 끄집어내 주고, 위축될 때마다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거죠.”

그는 배우로서 이정재가 가진 강점으로 ‘착함’을 꼽았다.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처럼 “남을 이겨 먹으려 하지 않고 과시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편안하게 내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50점은 먹고 들어가요. TV를 보다 보면 연기 실력을 으스대는 배우들도 있는데 그러면 바로 채널이 돌아가죠. 배우는 나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캐릭터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는 ‘목소리’를 꼽았다. “성대 위아래가 붙어서 짓이기는 소리가 나서 부드럽게 통을 넓히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오랜 버릇이라 쉽게 고쳐지진 않더라”고 했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를 지켜온 사람으로서 오영수·박해수 등 연극배우 출신의 활약도 반겼다.

“연극은 들키기 쉬운 곳이라 연기 공부하기에 제일 좋은 장르에요. 신마다 따로 찍는 게 아니라 통으로 무대에 올라야 하니 내가 맡은 캐릭터뿐 아니라 전체적인 작품 분석을 잘할 수밖에 없죠. 앞으로도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이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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