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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채 숨지는 ‘무연고 사망’ 3603명…정부가 장례 지원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월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수원 세모녀' 발인식에서 수원시 관계자들이 세 모녀의 관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수원 세모녀' 발인식에서 수원시 관계자들이 세 모녀의 관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마련됐다. 지병을 앓고 있었고 1년 4개월 동안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이들은 전입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친인척이 주검 인수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세 모녀는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수원시는 세 모녀의 장례를 '공영 장례'로 치렀다. 시 조례에 따라 안치료·염습비 등 시신 처리에 드는 비용과 장례 의식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했다. 시민들과 종교 단체 등에서 빈소를 방문해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지난해 기준 3600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모두가 이렇게 추모의 시간을 갖고 마지막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 8년 사이 2.8배 증가

무연고 사망자는 가족·친인척 등 연고자가 없거나, 있어도 시신을 넘겨 받는 것을 거부·기피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3603명이다. 2013년 1280명에서 꾸준히 늘어 8년 사이 2.8배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314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복지부는 “1인 가구 증가, 경제적 어려움·사회적 관계 단절로 인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면 지자체에서 시신을 처리해야 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12조 1항에는 ‘시장 등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대해 매장 또는 화장해 봉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신 처리 절차만 규정할 뿐 장례식 절차는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고인 대한 추모 및 장례 지원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지난 8월 기준 101곳의 기초자치단체만이 무연고 사망자 등 공영 장례를 위한 조례를 마련했다. 68개 기초자치단체는 장례 지원 예산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공영 장례를 따로 치르지 않는 지역에서는 장례업체에 시신 처리를 위한 비용을 지급하는 정도의 조치만 이뤄진다.

관련 조례도 예산도 없는 경북 A군 관계자는 “무연고로 사망하신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식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례가 생기면 의무가 되고, 관할 내에서 공무원 한 명이 이 모든 것을 담당해야 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원 B군 관계자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나오는 장제급여 80만원과 함께 시신 처리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정도고, 공영 장례 예산을 별도로 잡은 것은 없다”면서 “무연고 사망자 외에 지역 내 모든 장례 업무를 공무원 한 명이 보고 있는데, 일일이 장례식을 잘 진행하는지 확인하고 챙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장사법이 개정되면서 정부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례비용 등을 지원할 수 있다(제12조 4항)’는 조항이 신설됐다. 주철 복지부 노인정책과장은 “그동안 장사법에 적힌 시신 처리 규정은 고인의 죽음을 보건 위생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했지만,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마지막 길을 추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 사업’ 시작

별빛버스(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용 버스) 내부 '간이 빈소'의 모습. 보건복지부

별빛버스(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용 버스) 내부 '간이 빈소'의 모습.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14일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를 지원하기 위한 ‘별빛버스 운영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기증받은 별빛 버스가 지자체를 순회하며 장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무연고 사망 발생 건수가 많은 지역을 제외하고, 발생 빈도가 낮고 장례 지원이 여의치 않은 지자체를 우선 지원한다. 지난 8월 기준 86개 지자체가 신청했다.

별빛 버스는 내부에 조문객 탑승 좌석과 시신을 화장시설로 운구할 수 있는 저온 안치 공간을 갖췄다. 지역 화장시설의 분향실을 이용하기 어려울 때 장례식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내부 간이빈소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버스 1대가 전국 지자체 대상으로 운영되는 만큼 적시에 이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적도 있다. 주철 과장은 “버스가 우선 지원하는 지역은 인구가 적어 연간 1~2건, 많아야 5건 미만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한다”며 “지자체 2~3군데가 하나의 화장장을 같이 사용하는 지역도 있어 버스가 순회하면서 무연고 시신을 운구 하는 등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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