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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옥에 3인분 같은 아침상…'촌캉스'로 진짜 해남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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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은 생활관광 프로그램 '땅끝마실'을 운영한다. 민박이나 한옥에서 숙박하고 장 담그기, 트레킹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진은 특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해남에다녀왔습니다' 마당에서 촬영했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는 이승희 사장이 직접 재배한 고추와 콩으로 고추장 담그기 체험을 진행한다.

전남 해남군은 생활관광 프로그램 '땅끝마실'을 운영한다. 민박이나 한옥에서 숙박하고 장 담그기, 트레킹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진은 특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해남에다녀왔습니다' 마당에서 촬영했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는 이승희 사장이 직접 재배한 고추와 콩으로 고추장 담그기 체험을 진행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여행도 바꿨다. 장기 체류, 비대면 여행, 독채 숙소 선호 같은 현상이 대표적이다. 장기 체류 여행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2년을 거치며 더 확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생활관광' 활성화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한 지역에서 3박 이상 머물며 현지인과 어울리는 여행을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했다. 올해 문체부가 선정한 생활관광 10개 지역 중 하나인 전남 해남군을 가봤다. 해남을 여러 번 가봤지만,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700명 경험한 '땅끝마실'의 매력

생활관광이란 말은 딱딱하고 심심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라. '살아보기', '로컬 체험' 혹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인 '촌캉스'를 떠올리면 된다. 번드르르한 호텔·리조트가 아니라 민박이나 한옥에서 자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체험을 즐기는 여행이다. 해남군의 생활관광 프로그램 이름은 '땅끝마실'이다. 해남을 상징하는 '땅끝'과 가벼운 여행이나 나들이를 뜻하는 '마실'을 합친 단어다.

무선동 한옥마을은 두륜산 자락인 병풍산에 들어앉은 작은 마을이다. 땅끝마실 지정 업체가 5곳 있다.

무선동 한옥마을은 두륜산 자락인 병풍산에 들어앉은 작은 마을이다. 땅끝마실 지정 업체가 5곳 있다.

땅끝마실 숙소는 현재 19개다. 두륜산 북쪽에 자리한 무선동 한옥마을에 가장 많고, 북평면 동해마을과 땅끝마을 등에도 있다. 하룻밤만 묵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3박, 6박까지 가능한 곳도 있다. 투숙 기간 중 김치 담그기, 낚시, 트레킹 같은 체험을 즐긴다. 시범 운영을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700명이 이용했다. 지난 1~2월 오미크론 확산이 심해 운영을 멈췄던 두 달을 뺀 수치다. 이용자 수보다 침체했던 지역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점이 뜻깊다. 해남군 정근순 관광마케팅팀장은 "여행객은 농어촌 마을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주민은 새로운 소득을 얻고 있다"며 "명소 중심의 여행과 달리 주민과 직접 교류를 통해 단골이 생긴다는 게 땅끝마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민박집 주인과 두륜산 트레킹

무선동 한옥마을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한옥이 많다. '새금다정자'는 다도 체험으로 명성이 높다.

무선동 한옥마을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한옥이 많다. '새금다정자'는 다도 체험으로 명성이 높다.

지난 7일, 삼산면 무선동 한옥마을 '또하르네민박'을 찾았다. 일주일 전, 1박2일 숙박을 예약했는데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여러 개 날아왔다. 체험 프로그램 안내와 주변 식당 정보 등이 상세히 담긴 메시지였다. 객실에 짐을 풀고 주인집 거실에서 차를 마셨다. TV로 해남 여행 유튜브 콘텐트를 보면서 해남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들었다. 시골 민박집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또하르네민박은 손님과 함께 두륜산을 걷는 트레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두륜산 초입 계곡길을 1시간 정도 걸으며 담소를 나눈다.

또하르네민박은 손님과 함께 두륜산을 걷는 트레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두륜산 초입 계곡길을 1시간 정도 걸으며 담소를 나눈다.

"이제 슬슬 걸으러 가시죠."
민박집 주인 노남석(61)씨가 두륜산에 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또하르네민박의 체험 프로그램은 트레킹이다. 차를 타고 2.5㎞ 거리에 있는 두륜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대흥사천을 따라 대흥사 입구까지 왕복 1시간 숲길을 걸었다. 거의 평지였다. 삼나무와 편백, 동백나무를 비롯한 난대수종이 빽빽한 숲은 초록 천국이었다. 노씨와 나눈 대화도 재미있었다. 그는 문화관광해설사도 아니고 관광 가이드도 아니다. 대흥사의 역사나 두륜산의 생태를 설명하진 않았다. 대신 어쩌다 연고도 없는 해남에 정착했는지, 무선동 마을의 매력이 뭔지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씨는 "벚꽃이 필 때는 두륜산 미로파크를 걷는다"며 "계절에 따라 다른 코스를 걷는 재미도 색다르다"고 말했다.

툇마루에 앉아 다도 체험 

땅끝마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침식사다. 또하르네민박에서 먹은 조식. 치즈 얹은 고구마구이와 고구마라떼가 특히 맛있었다.

땅끝마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침식사다. 또하르네민박에서 먹은 조식. 치즈 얹은 고구마구이와 고구마라떼가 특히 맛있었다.

귀뚜라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푹 잤다. 이튿날 아침, "동네 목욕탕이 문 열었으니 많이 이용하라"는 삼산면사무소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깼다.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침 먹을 시간이다. 큰 쟁반에 치즈고구마구이, 고구마라떼, 과일 요구르트, 단호박 찜이 나왔다. 3인분은 돼 보였다. 맛도 맛이었지만, 인심에 놀랐다. 날씨가 화창해 마당 테이블에서 먹었다. 새소리 들으며 아침을 먹으니 캠핑 온 기분이었다.

해남민박 김장섭씨는 취미를 활용해 '분재 체험'을 진행한다. 근사한 한옥을 구경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해남민박 김장섭씨는 취미를 활용해 '분재 체험'을 진행한다. 근사한 한옥을 구경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이웃 민박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체험을 하는지 궁금했다. 또하르네민박 옆에 있는 '해남민박'은 100년 넘은 고택이다. 주인 김장섭(75)씨는 취미인 분재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동백·치자나무·와송 등을 작은 화분에 심는 체험을 한다. 작은 온실에 동백만 50종을 갖췄다. '새금다정자'는 다도 체험으로 명성이 높다. 기품이 흐르는 한옥 누마루에 앉아 윤향자(63)씨가 만들어준 녹차와 말차를 마셨다. 새금다정자는 객실에 침대와 에어컨이 없고 화장실이 객실 밖에 있는 말 그대로 '찐' 한옥이다. 윤씨는 "손님 대부분이 정통 한옥과 차를 좋아하는 단골"이라고 말했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에서 고추장 담그기 체험을 해봤다. 구수한 메주 덕분인지 고추장 맛이 깊게 느껴졌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에서 고추장 담그기 체험을 해봤다. 구수한 메주 덕분인지 고추장 맛이 깊게 느껴졌다.

'해남에다녀왔습니다'는 현재 민박 운영은 쉬고 장 담그기 체험만 진행한다. 이승희(63) 사장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고추장과 된장을 담그는 체험도 재미있었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그가 암 투병 후 장 명인으로 거듭난 인생사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고춧가루와 메주, 천일염과 물만 넣고 빚은 고추장은 체험을 마친 뒤 가져갈 수 있다. 숙성까지 두 달이 걸린다는데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여행정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땅끝마실’은 해남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체류 기간과 숙소를 고르고 예약한 뒤 숙박비를 입금하면 된다. 카드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 숙소도 있다. 해남군은 12월까지 전남·광주 외 지역 방문객에게 숙박비 지원 이벤트를 벌인다. 땅끝마실 지정 숙소 19개를 포함해 39개 숙소 이용료를 1박 기준 2만~4만원 할인해준다. 2박~6박 투숙객은 반값으로 깎아준다. 땅끝마실 1박 이용료는 10만원 선(2인, 할인 전 기준), 체험비는 5000~1만원이다. 땅끝마실 이용객은 '특별 체험그램' 참여도 가능하다. 고추장 담그기, 도자기 빚기, 고구마빵 만들기 세 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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