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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7번 합헌 결정했다…또다시 심판대 오르는 국가보안법

중앙일보

입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안법 제7조 존폐를 두고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공개 변론을 연다. 지난 2017년 접수된 헌법소원 사건을 시작으로 10여건을 병합해 심리하던 헌재는 오는 15일 공개변론을 열고 청구인과 법무부, 학계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나 구성원,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동조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을 갖고 문서 등 표현물을 제작하거나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한 사람도 제5항에 의해 처벌된다.

"이적물·이적 행위 기준 모호…표현의 자유 위축"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들과 법원에 위헌 제청을 신청한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가 안전보장과 질서 유지, 공공복리에 어떤 위해를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위험성만을 기준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이적 표현물이나 이적 행위의 기준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어떤 표현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예측하기 어렵고, 자기 검열에 의한 위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경직시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이적 표현물 급속도 전파 가능…안보 방치할 수 없어"

반면 이 사건의 이해관계인인 법무부는 남북이 대치하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적 표현이 확산하면서 생길 수 있는 피해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 측은 "누군가의 이적 행위가 현재 시점에 당장 현실화된 것이 아닐지라도, 언제든지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정보의 확증편향 현상이 심해진 데다, 정보가 급속도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 역시 법무부가 국가보안법 존치를 주장하는 근거다. 이적 표현물이 쉽게 공유되고 퍼질 수 있는 상태에서 국가 안보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국가보안법이 부당하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도록 제한 규정을 두고 있어 악용될 수 없다고도 주장한다.

헌재, 7차례 합헌 결정…"이적 행위 규제 필요"

국가보안법은 지난 1991년 5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제1조 제2항)이 추가되며 일부 바뀌었는데, 이 같은 개정 이후 제7조가 헌재 심판대에 오른 건 이번이 8번째다. 헌재는 줄곧 합헌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제7조에 대해 가장 최근에 나온 합헌 결정은 지난 2015년이다. 헌재는 반국가단체나 동조세력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미리 방지하고 국가 전복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한국이 처한 특수한 현실에 비춰볼 때 이적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결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법이 규정한 '이적 행위'나 '동조', '선전', '찬양' 등의 의미가 불분명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국론의 분열, 체제의 전복 등을 야기하거나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통일 정책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나 사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처벌되지 않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법 조항이 확대 해석돼 적용되거나 처벌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다만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당시 반대의견을 냈다. 현행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의 선전·선동에 호응하거나 가세하는 '동조 행위' 역시 처벌되는데, 과연 어떤 주장까지 처벌하는 것인지 경계를 알기 어려워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동조 행위는 찬양·고무·선전 행위보다 훨씬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어서 외부적 영향력이 극히 적기 때문에 처벌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거나 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3명으로 늘었다. 김 전 재판관과 함께 이진성 전 헌법재판관,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이 부분이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거나 취득한 사람이 이를 대중에 유포하거나 전파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도, 막연한 가능성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다.

설령 이적표현물이 전자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 결론은 달라질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결정문에 "일부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우려해 취득·소지 행위 자체를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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