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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반대 할머니 모임…獨 그림책 거장은 '데모'를 해야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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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타 바우어. ⓒKaren Seggelke 미디어창비 제공

유타 바우어. ⓒKaren Seggelke 미디어창비 제공

독일엔 ‘반(反) 극우 할머니 모임’이라는 게 있다. 환경 보호며 성 평등, 파시즘 반대 등에 목소리를 내는 단체로, 회원 중엔 그림책 작가 유타 바우어(68)도 있다. 세계적 권위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은 독일 그림책 분야의 거장이다. 그가 지은 40여권의 그림책들은 특유의 따스함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호평받고 있다. 지난달 말엔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미디어창비)가 나왔다. 그런 그가 왜 ‘반(反) 극우 할머니 모임’을 하는 걸까. 모두가 조금씩 덜 불행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바우어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독일의 재무장 반대나 환경 보호 등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정치적 현안”이라며 “데모에도 가끔 참여한다”고 말했다.

어느 한쪽만을 맹신하며 다른 쪽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타인의 불행에 손을 내밀고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은 책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의 주인공 예페가 대표적이다. 날쌘돌이 예페는 임금님의 지시로 심부름을 떠나지만 가는 길에 마주치는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다. 나 홀로 육아 중인 돼지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다리가 약한 염소 할아버지를 위해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 와중에 예페 자신도 도움을 받게 되고 반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어명을 빨리 받들어 임무를 완수해 출세 가도를 달릴 것인가는 예페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다.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 중 일부. 미디어창비 제공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 중 일부. 미디어창비 제공

바우어 작가는 “성공이나 야망과 같은 성인의 사고나 규범이 아니라, 아이들의 순수함을 간직하는 것이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뭘까. 그는 “호기심과 모든 것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능력, 무궁무진하게 배울 수 있는 능력, 무조건적인 믿음, 뭔가에 매혹되면 거기에만 몰두하는 태도, 끈질김, 상상력 같은 것들”이라고 답했다. 그의 답에 의하면 호기심이나 상상력 역시 일종의 능력인 셈이다. 그는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능력을 잃지 않도록 어른들은 항상 각성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가치들은 불행히도 (성공과 같은) 목표와 순종과 같은 가치에 밀려 뒷전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공주님과 왕자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게 그의 작품의 주제는 아니다. 그는 “아이들도 현실 세계는 해피엔드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는 것은 다 안다”며 “그럼에도 우정과 신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얘기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 표지. 미디어창비 제공

『예페의 심부름 가는 길』 표지. 미디어창비 제공

극우에 반대하고, 경계인을 돌아보는 따스함은 그가 난민 가족의 일원이라는 데서도 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부모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방을 당해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5형제였고 가난했다”며 “독일의 급격한 경제성장 덕도 있겠지만, 부모님의 성실함과 창의력 덕분에 넉넉하게 살게 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제가 성적이 안 좋을 때마다 부모님은 ‘네가 해서 즐거운 일을 해’라고 해주셨다”며 “내가 즐겁지 않으면 불행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

“많은 수입과 높은 지위가 사람을 만족하게 할까요? 그보다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이해와 사랑, 유머로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건강하게 잘 먹이고, 밖에서 실컷 놀게 해주는 게 중요하죠. 매일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않게 같이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는 것도요.”  

한국의 경우는 10대 이전부터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하자, 그는 “남들과 달라도 좋다”며 “나야말로 그런 전형”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정의하는 행복이란 뭘까. 그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행복이란 작은 것”이라며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차 한 잔을 마실 때, 눈앞에서 새가 지저귀고 강물이 반짝이는 걸 볼 때, 가족이 함께 모여 손주의 미소를 바라보는 게 행복 아닐까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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