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 1만원일 때 쓴 오겜, 10년 뒤 1억가구가 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12일(현지시간) 미국 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징어 게임’의 주역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영수 배우, 정호연 배우, 황동혁 감독,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 이정재 배우, 박해수 배우. ‘오징어 게임’은 6관왕에 올랐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징어 게임’의 주역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영수 배우, 정호연 배우, 황동혁 감독,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 이정재 배우, 박해수 배우. ‘오징어 게임’은 6관왕에 올랐다. [AP=연합뉴스]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최초로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감독상을 차지한 황동혁(51) 감독. 은행 잔고가 1만원도 안 되던 2008년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가 10여 년 뒤 글로벌 OTT(넷플릭스) 드라마로 완성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한국 배우들이 한국말로 연기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1억1100만 가구(2021년 넷플릭스 집계)가 시청한 글로벌 히트작에 등극하며 할리우드의 역사를 바꿨다. 미국 방송 분야 최고 권위의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이 작품상·남우주연상 후보가 된 것부터 74년 시상식 역사상 처음이었다.

관련기사

황동혁은 봉준호·박찬욱보다 국제 무대에선 낯선 이름이었다. ‘오징어 게임’ 전까진 액션·스릴러 같은 장르물 이력도 없었다. 그는 ‘오징어 게임’ 캐릭터 조상우(박해수)와 같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 서울대(신문학과 90학번) 출신이다. 미국 LA 남가주대(USC) 영화학과 석사과정 당시 재미교포 배우 칼 윤과 만든 한국인 입양아 단편 ‘미라클 마일’이 칸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정도였다.

장편 데뷔작 ‘마이파더’(2007), ‘도가니’(2011) 등 실화 소재 사회파 영화로 출발한 그는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흥행에도 성공했다(866만 관객). 영화 ‘남한산성’(2017)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정통 사극이다. 그의 연출 색깔을 간략히 정의한다면 ‘사람 냄새 나는 하이 콘셉트 영화’다. 한국말로 풀면 친숙한 소재를 신선하되 쉽게 변주해 대중성을 높인 상업 기획영화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이 대표적이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으로 “스필버그가 ‘당신 뇌를 훔치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25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라는 스필버그의 수칙에 대부분 부합하는 황동혁 영화는 일찌감치 글로벌 경쟁력이 입증됐다. 그가 각색·연출을 맡은 ‘수상한 그녀’는 가족을 위한 기성세대의 헌신, 사랑 이야기에 웃음과 눈물을 버무려 공감을 끌어냈다. 8개국 넘는 다국적 리메이크가 진행된 첫 사례다.

에미상

에미상

낯선 설정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한 데는 불공정 사회에 대한 비판이 한몫했다. 시대적 함의는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장애인 학교의 학대 실화를 파헤친 영화 ‘도가니’는 사건 재조사 요구가 빗발치는 등 국민적 공분을 끌어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례법 개정안, 일명 ‘도가니법’ 제정의 계기가 됐다.

지난달 미국 매체 데드라인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20년 전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유명 감독이 되려면 영어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더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어떤 언어든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주제와 메시지가 중심이라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본을 집필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무대를 세계로 확장해 더 많은 게임을 보여줄 예정이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차기작으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노인 죽이기 클럽’을 준비한다. 그는 “또 하나의 논쟁적 영화, ‘오징어 게임’보다 폭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