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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에미상 받을까” 5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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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2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른 ‘오징어 게임’의 주역들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트로피와 꽃다발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박해수ㆍ오영수 배우, 황동혁 감독, 이정재 배우,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 정호연 배우. LA=홍희정 JTBC 특파원

12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른 ‘오징어 게임’의 주역들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트로피와 꽃다발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박해수ㆍ오영수 배우, 황동혁 감독, 이정재 배우,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 정호연 배우. LA=홍희정 JTBC 특파원

과연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사실 약 5년 전만 해도 결코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2022년 제74회 에미상에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비롯해 13개 부문 14개 후보에 올랐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이 앞서 던진 질문을 던졌고, 사실 업계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수상을 점치고 있었다. 그만큼 지난 5년간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K콘텐트의 위상은 어떤 상이든 충분히 받을 정도로 높다고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비영어권 최초 남우주연상 등 6관왕 성과 #K콘텐트와 넷플릭스 협업으로 가능해져 #OTT로 글로벌 소비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워 #경쟁력 꼽히는 맨파워 지속가능성 고민할 때

그리고 결국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은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 4일 개최된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 시상식에서 여우게스트(이유미), 싱글 에피소드 부문 특수시각효과상(정재훈 외), 스턴트 퍼포먼스상(임태훈 외), 내러티브 컨템포러리 프로그램 부문 프로덕션 디자인상(채경선 외)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사실상 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황동혁 감독이 감독상을,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지난해 9월 공개돼 전 세계 1위에 오른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진 넷플릭스]

지난해 9월 공개돼 전 세계 1위에 오른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 가진 의미는 여러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지만, 가장 큰 건 K팝, K무비에 이어 K드라마 역시 세계적인 권위의 시상식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드라마 같은 시리즈물은 주로 집에서 TV(혹은 인터넷)를 통해 시청하기 때문에 보다 소비자의 일상적 소비에 맞닿아 있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국적과 언어의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만 두고 봐도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했던 2016년 이전까지 일상적으로 집에서 외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은 낯선 일이었다. 그러니 ‘TV 아카데미’라고도 불리는 에미상이 어찌 보면 아카데미상보다 비영어권 콘텐트에는 그 장벽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은 바로 이 장벽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이 장벽을 넘는 데 있어서 그 발판이 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황동혁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TV 아카데미에 감사드리고, 이 영광을 저를 믿고 지지해준 넷플릭스에도 돌리고 싶습니다”라는 한 말은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라는 성취는 엄밀히 말하면 K콘텐트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의 협업이 만들어낸 성과라는 걸 분명히 봐야 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또한 중요한 건 이 수상이 말해주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다. 상은 좋은 콘텐트에 대한 치하의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시장의 변화 같은 시대성의 의미도 담기 마련이다. 이른바 ‘OTT 시대’로 들어오면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의해 시장은 글로벌화하고 있다. 또 소비자도 다양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대중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결국 에미상이나 아카데미상 같은 전통적으로 영어권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상식이 최근 몇 년간 비영어권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하는 건 이러한 시장의 변화 때문이다. 영어권만이 아닌 비영어권 소비자들까지 망라한 콘텐트 소비가 글로벌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이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어서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을 받는 건 그래서 그 작품 하나의 성취 그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봉준호 감독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1인치의 장벽’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의해 이미 허물어지고 있고 적어도 콘텐트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국적을 뛰어넘는 지대에서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아카데미상이나 에미상은 이런 변화에 화답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비영어권 콘텐트 중 하필이면 ‘오징어 게임’ 같은 K콘텐트일까. 그것이 K콘텐트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경쟁력이 있다는 것인데, 이번 에미상 수상을 들여다보면 그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가가 확연하게 보인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이 수상 결과가 말해주는 건 K콘텐트가 가진 ‘맨파워’다. K콘텐트는 외국인들이 알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제작비로 더욱 놀라운 완성도의 콘텐트를 내놓는데 그게 가능한 건 바로 감독, 작가, 배우 같은 맨파워가 있어서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한 작품이다. 게다가 이정재만이 아니라 박해수, 오영수, 정호연, 허성태, 이유미 등등 여러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빛을 발하게 만든 작품이다.

중요한 건 제2의 ‘오징어 게임’ 같은 성취를 가진 K콘텐트를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일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K콘텐트들이 예전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저작권 문제로 창작자들이 ‘오징어 게임’ 같은 엄청난 성과를 내도 그만한 부가이익을 얻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고, ‘오징어 게임’처럼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 대신 보다 안전한 리메이크나, ‘해외 성공작의 한국판’ 같은 가성비 작품들의 양산, 열악한 현실 때문에 이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제작사들 같은 문제들이 뒤섞여 있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이 결국은 K콘텐트의 경쟁력으로 지목되는 맨파워를 소모하게 된다면 제2의 ‘오징어 게임’은 요원해진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라는 쾌거가 보여주는 K콘텐트의 화룡점정에서 우리는 다시 이런 작품을 시도하고 실험했던 초심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하는 마지막 비영어권 시리즈가 아니길 바랍니다.” 성과에 도취할 게 아니라 황동혁 감독이 수상 소감 말미에 남긴 이 말을 곱씹어야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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