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 10개 중 3개는 짝퉁"…건당 9000원 '명품 감정'에 줄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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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가 똑같이 생겼지요? 요즘에는 소재도 거의 같고 무게도 비슷해서 만져보고 들어봐서는 (가품 여부를) 구분 못 해요. 확대경으로 부속품을 살펴보고, 로고 글자의 자간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1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중고명품 거래업체 ‘고이비토’ 사무실. 15년 경력의 명품 감정사인 박원범 총괄팀장은 기자에게 샤넬 가방 두 점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원범 명품 감정사가 명품 팔찌 제품을 현미경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경첩 부분의 주물 자국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가품으로 판명된 제품이다. 유지연 기자

박원범 명품 감정사가 명품 팔찌 제품을 현미경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경첩 부분의 주물 자국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 가품으로 판명된 제품이다. 유지연 기자

의뢰 받은 명품 중 3할은 짝퉁 

고이비토는 지난 6월 ‘명품 감정’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인에게 받은 선물이나 당근마켓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거래한 제품의 진위를 검증하는 일이다. 온라인으로는 건당 9000원, 실물의 경우 건당 2만~5만원대 수수료를 받고 있다. 최근 3개월간 누적 4000건의 검수 건수를 기록했다. 박 팀장은 “의뢰받은 물품 중 약 30%는 가품으로 판정된다”고 귀띔했다.

최근 위조품이 정교해지면서 전문가도 판별이 어려운 수준이다. 왼쪽의 로고 주물이 오른쪽 진품과 미묘하게 다르다. 박 감정사는 "수천만원대 모 가방의 경우 3일간 40여명이 매달려 감정한적도 있다"고 했다. 해당 가방은 스트랩의 길이가 약간 달라 가품으로 판별됐다. 유지연 기자

최근 위조품이 정교해지면서 전문가도 판별이 어려운 수준이다. 왼쪽의 로고 주물이 오른쪽 진품과 미묘하게 다르다. 박 감정사는 "수천만원대 모 가방의 경우 3일간 40여명이 매달려 감정한적도 있다"고 했다. 해당 가방은 스트랩의 길이가 약간 달라 가품으로 판별됐다. 유지연 기자

최근 들어 ‘진·가품’을 가리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백화점이나 부티크·아웃렛 등 ‘검증’된 매장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병행 수입이나 중고 거래나 병행 수입 등 구매 경로가 다양해지면서다. 일단 명품 제품을 확보한 후 값을 더 붙여 파는 이른바 ‘리셀 테크(resale+재테크) 바람’도 감정 시장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로 보복소비 열풍이 불면서 지난 2년간 국내 명품 시장은 급성장했다. 특히 머스트잇·트렌비·발란 등 명품 플랫폼 강자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을 재편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7475억원이었다. 전년 대비해 7.9% 늘어났다.

로고가 쓰인 폰트의 차이와 글자 간격도 유심히 보는 포인트다. 왼쪽이 정품, 오른쪽이 가품. 유지연 기자

로고가 쓰인 폰트의 차이와 글자 간격도 유심히 보는 포인트다. 왼쪽이 정품, 오른쪽이 가품. 유지연 기자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무신사 vs 크림 논란 불거지기도  

하지만 플랫폼 신뢰도에는 경고등이 커졌다. 지난 2월 티셔츠 한 장으로 무신사와 크림이 맞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5만원 상당의 ‘피어오브갓’ 티셔츠가 정품인지를 두고 두 플랫폼의 ‘검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결국 무신사 제품에 대해 제조사(브랜드) 측이 “정품이라고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변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공식 유통처였던 ‘팍선’ ‘센스’ 등의 제품도 정품 확인이 안 되면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씁쓸한 진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가품 신고는 갈수록 증가 추세다. 특허청에 따르면 네이버 등 국내 대형 10대 플랫폼에서 구매한 제품 중 위조 상품이 의심돼 신고한 건수는 2018년 1309건에서 2019년 3001건, 2020년 3101건으로 2년 새 2.4배 급증했다.

지난 2월 무신사와 크림간에 공방이 벌어진 피어오브갓의 에센셜 티셔츠. [사진 크림 홈페이지 캡처]

지난 2월 무신사와 크림간에 공방이 벌어진 피어오브갓의 에센셜 티셔츠. [사진 크림 홈페이지 캡처]

업계엔 당장 ‘검수력 강화’라는 불똥이 떨어졌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소 5년 이상은 업력이 쌓여야 명품을 판별하는 ‘눈’이 생긴다. 그동안 국내에서 명품을 취급했던 업체는 중고 위탁 전문점 출신의 감정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마저도 워낙 한정된 인력이라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

고이비토는 약 45명의 감정사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명품감정원은 위탁 판매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감정 전문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온라인 명품·중고 플랫폼들은 주로 이들과 협력한다. 발란은 고이비토와 손잡고 ‘발란 케어’라는 정품 감정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머스트잇은 ‘의심 상품’이 생기면 한국명품감정원에 감정을 맡긴다.

크림은 온라인 카페 '나이키매니아'를 인수, 초기 검수 인프라 구축에 활용했다. [사진 크림]

크림은 온라인 카페 '나이키매니아'를 인수, 초기 검수 인프라 구축에 활용했다. [사진 크림]

자체적으로 검수 센터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트렌비는 사내 검수센터에 40여 명의 감정사를 배치했다. 지난 4월부터는 명품 감정 아카데미를 설립해 전문 감정사를 양성하고 있다. 크림은 스니커즈 컬렉터나 제조 공장 운영 경험자 등 신발 전문가로 구성된 검수센터를 운영 중이다. 네이버 카페 ‘나이키매니아’ ‘시크먼트’ 등을 인수, 이를 기반으로 스니커즈·명품 마니아들의 축적된 노하우를 검수력으로 전환한 사례다.

외부 전문가를 모셔오기도 한다. 번개장터는 맞춤형 시계 제조와 명품 시계 경매 컨설팅으로 유명한 김한뫼 엠오아이워치 대표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무신사는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와 협력해 수입한 제품을 전수 조사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브그즈트 컬렉션에서의 명품 시계 위탁 판매를 위해 외부 전문가 김한뫼 고문을 영입했다. [사진 번개장터]

번개장터는 브그즈트 컬렉션에서의 명품 시계 위탁 판매를 위해 외부 전문가 김한뫼 고문을 영입했다. [사진 번개장터]

일부선 “제3의 검증 기관 필요” 목소리

디지털 보증서 등 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SSG닷컴은 위·변조가 불가능한 대체불가능토큰(NFT)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보증서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플랫폼 신뢰도를 쌓고 있다. 판매 업체 20여 곳의 상품 하나하나에 고유 번호를 매기고, 디지털 카드에 기재한 뒤 제품을 사면 이를 함께 제공한다.

롯데온은 외부 협력기관과 함께 ‘트러스트 온’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증빙 서류와 샘플 검수 등으로 판매자를 검증해 우대하는 서비스다.

사단법인 TIPA와 함께 수입 럭셔리 제품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무신사. [사진 무신사]

사단법인 TIPA와 함께 수입 럭셔리 제품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무신사. [사진 무신사]

시장에선 플랫폼들의 ‘공동 검수’를 통해 신뢰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요한 발란 ESG경영실장은 “사설 기관의 감정 능력에 한계가 있고, 플랫폼 내부 검수 시스템은 이해관계로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적재산권협회 등 공공기관과 주요 사업자가 참여하는 제3의 검수 자문 기관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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