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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만 쥔채 쓴 '오겜'으로 새역사…스필버그도 극찬한 황동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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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동혁 감독이 12일(미국 현지 시간)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감독 최초 드라마시리즈부문 감독상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황동혁 감독이 12일(미국 현지 시간)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감독 최초 드라마시리즈부문 감독상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황동혁(51) 감독이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최초로 에미상 드라마시리즈 부문 감독상을 차지했다.
홀어머니‧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가 은행 잔고 1만원도 안 됐던 2008년 쓰기 시작한 영화 시나리오가 10여년 뒤 글로벌 OTT(넷플릭스) 드라마로 완성돼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한국 배우들이 한국말로 연기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1억1100만 가구(2021년 넷플릭스 집계)가 본 글로벌 히트작에 등극하며 할리우드 역사를 바꿔 놨다. 미국 방송 분야 최고 권위의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이 작품상‧남우주연상 후보에 진출한 것부터 74년 시상식 역사상 최초였다.

지난 5월 황 감독을 애플 CEO 팀 쿡,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2022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뽑은 미국 타임지는 ‘오징어 게임’을 두고 “황 감독은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회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진실을 드러내는 복잡하고 야만적인 세계를 시각화하는 데 탁월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징어 게임’으로 처음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 그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6개의 치아를 잃은 고생과 맞바꾼 완성도였다.

황동혁 글로벌 흥행작, '오겜' 처음 아냐 

황동혁은 봉준호‧박찬욱 등에 비해 세계 무대에서 낯선 이름이었다. ‘오징어 게임’ 이전까진 액션‧스릴러 같은 장르물 이력도 없었다.

12일(미국 현지 시간)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징어 게임' 팀 단체 사진. AP=연합뉴스

12일(미국 현지 시간) 에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징어 게임' 팀 단체 사진. AP=연합뉴스

그는 ‘오징어 게임’ 캐릭터 조상우(박해수)와 같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 서울대 출신이다. 신문학과 90학번 시절 사회 문제에 빠져 살았다. 비디오카메라 촬영에 재미를 붙여 미국 LA 남가주대(USC) 영화학과 석사를 하면서 재미교포 배우 칼 윤과 만든 한국인 입양아 단편 ‘미라클 마일’이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장편 데뷔작 ‘마이 파더’(2007), ‘도가니’(2011) 등 실화 소재 사회파 영화로 출발해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2014)로 866만 관객의 흥행을 터뜨렸다. ‘오징어 게임’ 전작인 영화 ‘남한산성’(2017)은 병자호란 무대의 정통 사극이다. 이런 그의 연출 색깔을 간략히 정의한다면 ‘사람 냄새 나는 하이 콘셉트 영화’랄까. 한국말로 풀면 친숙한 소재를 신선하되 쉽게 변주해 대중성을 높인 상업 기획영화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으로 들은 최고 칭찬으로 “영화 영웅 스필버그가 ‘당신의 뇌를 훔치고 싶다’고 했던 것”을 들기도 했다.

우상 스필버그 "당신 뇌 훔치고 싶다" 

“25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라고 믿은 스필버그의 수칙에 대부분 부합하는 황동혁 영화는 일찌감치 글로벌 경쟁력이 입증됐다. 특히 그가 각색‧연출을 맡아 ‘70대 할머니가 스무살 몸으로 돌아가 가수의 꿈을 이룬다면…?’이란 가정에서 출발한 ‘수상한 그녀’는 가족을 위한 기성세대의 헌신, 사랑 이야기에 웃음과 눈물을 버무려 보편적 공감대를 얻었다. 8개국 이상 다국적 리메이크 제작이 진행된 최초 사례가 됐다. 중국‧베트남 판이 현지에서 큰 흥행을 거뒀고 영어 판이 개발 중, 스페인어 판 개봉도 앞두고 있다.

‘수상한 그녀’

‘수상한 그녀’

낯선 게임 설정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은 데는 국경을 초월한 불공정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묘사도 한 몫을 했다. 시대적 함의는 그의 영화마다 빠지지 않는 요소다.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장애인 학교의 학대 실화를 파헤친 영화 ‘도가니’는 당시 사건 재조사 요구가 빗발치는 등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특례법 개정안, 일명 ‘도가니법’ 마련의 발판이 됐다.
‘오징어 게임’ 제작사 싸이런픽쳐스(대표 김지연)와 처음 손잡은 ‘남한산성’(2017) 역시 김훈 작가(김지연 대표의 아버지)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병자호란 속 조선의 운명에 “항상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하는”(황동혁, 개봉 당시 영화 제작보고회) 한반도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냈다.

헤니·심은경·이유미…절묘한 캐스팅, 최고 연기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240번 지영’ 역할을 맡은 배우 이유미.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240번 지영’ 역할을 맡은 배우 이유미. 사진 넷플릭스

그의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가 유독 돋보인다. 호감 가는 인물 묘사에 절묘한 캐스팅으로 배우의 최고 기량을 끌어낸다. ‘마이 파더’는 당시 신인이던 다니엘 헤니가 사형수 아버지를 둔 한인 입양아를 서툰 한국말로 진정성 있게 연기해 그의 대표작이 됐다. ‘수상한 그녀’도 원작 시나리오의 섹시한 설정을 지우고 심은경을 발탁해 청춘으로 돌아간 노인 캐릭터를 맛깔나게 그려냈다.
‘오징어 게임’에서 한국 배우 최초 게스트 여배우 상을 받은 이유미도 황 감독이 초고에선 ‘지용’이란 이름의 남자 캐릭터를 여자인 ‘지영’으로 바꾸며 작품에 캐스팅됐다. 소녀를 구하러 온 기사란 설정이 낡게 느껴진 황 감독이 상대역 새벽(정호연)과의 로맨스보다 연대와 유대감을 강조하며 작품을 통틀어 손꼽히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서울대 영화학과·LA 오겜데이…다음 황동혁 효과는? 

'오징어 게임' .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 사진 넷플릭스

황 감독의 모교 서울대는 ‘오징어 게임’ 열풍 이후 올 2월 한류 등 미디어‧예술 환경의 변화 속에 ‘영화학’ 연계 전공 설치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가 영화 유학을 했던 미국 LA시는 한국 작품이 미국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17일을 ‘오징어 게임’의 날로 제정한다고 지난 9일 선포했다.
지난달 미국 매체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20년 전 미국 유학을 갔을 때 유명 감독이 되려면 영어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더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어떤 언어든 전 세계 사람이 공감할 주제와 메시지가 중심이라면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대본 집필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세계 여러 지역으로 무대를 확장해 더 많은 게임을 보여줄 예정이다. 지난 4월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황 감독은 차기작으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에 영감 받은 영화 ‘노인 죽이기 클럽’도 준비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논쟁적 영화, ‘오징어 게임’보다 폭력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그는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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