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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가장의 마약왕 체포기 ‘수리남’ 세계인을 사로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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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넷플릭스 ‘수리남’은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업가 강인구(하정우·가운데)가 마약왕인 목사 전요환(황정민)을 유인하는 과정에 박해수, 유연석, 장첸, 조우진 등 조연들이 긴장감을 빼곡하게 채운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수리남’은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업가 강인구(하정우·가운데)가 마약왕인 목사 전요환(황정민)을 유인하는 과정에 박해수, 유연석, 장첸, 조우진 등 조연들이 긴장감을 빼곡하게 채운다. [사진 넷플릭스]

“서로 같은 DNA를 믿어봅시다. 딴생각 안 하고 돈만 보는 DNA.”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을 캐릭터 면에서 보면, 영화 ‘신세계’의 정청(황정민)과 ‘군도’의 도치(하정우)가 수리남에서 만난 듯하다.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만난 두 배우의 카리스마 대결이 숨 막히게 팽팽하다. 추석 연휴 기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호응했다. 12일 스트리밍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수리남’은 넷플릭스 TV쇼 부문 8위다. 11일 기준 33개국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한국·홍콩·베트남 등에서는 1위에 올랐다.

‘수리남’은 ‘공작’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물이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전요환(황정민), 그의 작업에 이용돼 수리남에서 옥살이하는 강인구(하정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밀매조직을 운영한 조봉행(70)의 실화가 바탕이다. 그는 2009년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DEA), 브라질 경찰의 공조로 체포돼 국내에서 2011년 징역 10년, 벌금 1억을 선고받았다.

조봉행 범죄, 이미 한차례 영화화

박해수

박해수

조봉행 일당의 범죄는 이미 한 차례 영화화됐다. 2004년 지인에게 속아 마약을 대신 운반해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2년간 옥살이한 장미정씨 사건을 영화화한 ‘집으로 가는 길’(2013)이다. 마약이 몰래 숨겨져 있던 지인의 짐을 대신 들었던 ‘집으로 가는 길’의 송정연(전도연)처럼, ‘수리남’의 강인구는 홍어로 가득한 한국행 컨테이너에 마약이 몰래 실려 있는 바람에 마약범으로 몰린다. 강인구는 전요환을 체포하려는 국정원을 돕는다.

장첸

장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여러 편의 작품을 하정우와 함께한 윤 감독은 이번에도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캐릭터에 무게를 싣는다. 살기 위해 도끼를 든 ‘군도’의 도치처럼, 강인구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감에서 수리남에 건너갔다가 사건에 휘말린다. 강인구는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단란주점 서빙, 식재료 납품 등 돈 되는 일은 뭐든 하는 가난한 집 장남이다. 고군분투하는 ‘K-가장’의 전형적인 얼굴이다.

황정민

황정민

하정우가 펼친 익숙함 위에 긴장감을 얹는 건 황정민이다. 전요환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번득이는 순간 화면의 질감이 바뀐다. 속마음을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신세계’의 정청과 비슷하다.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주님의 은총이지”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어” 등 대사도 강렬하다.

유연석

유연석

차이나타운 중국인 조폭 보스의 수하였으나 전요환의 오른팔로 전향한 변기태는 극 중 가장 변화무쌍한 캐릭터다. 마지막까지 극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면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변기태를 조우진이 잘 표현해낸다. ‘오징어 게임’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에 이어 ‘수리남’까지 출연해 ‘넷플릭스의 남자’로 불리는 박해수는 허세를 떨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국정원 요원 최창호를 연기한다. 색깔 강한 캐릭터들 사이 균형감을 유지한다.

영화·드라마 장점 담은 ‘시네라마’

윤종빈

윤종빈

긴장감을 조성하는 카메라 무빙, 국정원과 DEA의 체포 작전 등은 영화를 보는 듯하다. 김헌식 평론가는 “시네라마(시네마+드라마)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영화 같은 작품이면서 드라마의 장점도 잘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강인구와 최창호의 서사가 1~2화에 내레이션으로 이어진 점이 적절했다는 평이 많다. 김헌식 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해외 개봉했을 때 모성애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많았다”며 “내레이션 덕분에 가장의 책임감이란 맥락을 해외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도 조봉행 일당에 이용 된 여성의 이야기였다. [사진 CJ ENM]

영화 ‘집으로 가는 길’도 조봉행 일당에 이용 된 여성의 이야기였다. [사진 CJ ENM]

현실 고증에 강한 윤종빈 감독은 영화 ‘쉬리’(1999) 느낌이 나는 메인 타이틀을 비롯해, ‘깔쌈하다’ ‘갑이야’ 등 철 지난 표현을 작품에 담았다. 사업아이템인 홍어와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자개장, 이순신 장군 칼 등 한국적 문화요소를 배치했다. ‘인삼주는 한민족 소울푸드’라는 대사, 수리남 군인도 좋아하는 한국 인스턴트 커피, 외국인 재소자도 즐겨 먹는 한국 컵라면과 김치 등 곳곳에 배치한 한국적 소재가 눈에 띈다.

김헌식 평론가는 “넷플릭스의 글로컬 전략(지역적 소재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딱 맞는 작품”이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데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K-가장이라는 한국적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나르코스’의 한국판 같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르코스’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심리 게임이 치밀하다”며 “심리 묘사와 정체 찾기가 많이 들어간 게 한국적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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