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은 배우 신구.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최근 공연계에서 그를 비롯한 ‘방탄노년단’ 활약이 뜨겁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껄껄 웃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0년이라는데 지나고 보니까, 어제 같고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올해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은 배우 신구(86)가 밝힌 소감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개막한 연극 ‘두 교황’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난 8일 공연장인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역의 정동환(73)과 함께 만난 그는 “원로라고 하는데 (언제) 이렇게 됐는지 새삼스럽다”며 “연극은 소명이자 생명과도 같다”고 했다.
그를 비롯해 이순재·백일섭·박정자·오영수 등 공연계 흥행을 주름잡는 노년 배우들을 ‘방탄노년단’이라 부른다고 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연극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재주는 없다. 극본, 연습에 충실하면 자연히 발현된다”고 했다.
그는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했다. 예명 ‘신구’(본명은 신순기)는 ‘소’를 쓴 극작가 유치진 선생에게 받은 것이다. 탤런트 데뷔(1972년 KBS 드라마 ‘허생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랐던 그는 올 3월 연극 ‘라스트 세션’ 출연 도중 건강 문제로 하차했다. 지난 60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두 교황’의 복귀 무대가 그래서 더 각별했다.
“건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지난번에 심부전이 와서 입원을 했었어요. 약 잘 먹고 견디고 있습니다.”
“나이 드니 청력이 떨어진다”는 그는 이번 ‘두 교황’ 공연 때부터 자신의 말소리를 더 또렷이 들을 수 있고 무대 뒤 스태프와도 연결된 ‘인이어’를 착용한다. 그는 “몸이 예전 같진 않다”면서도 “‘두 교황’은 내가 좋아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니까 끝까지 책임지고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두 교황’은 로마 가톨릭 2000년 역사상 최초로 2013년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된 실화가 토대다. 넷플릭스 동명 영화로 유명하지만, 연극이 먼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각본가 앤서니 매카튼이 상상을 보태 두 교황의 내밀한 대화를 연극 극본으로 썼고, 2019년 영화 개봉에 앞서 영국에서 초연했다.
신구가 맡은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영화에선 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했던 역할이다. 베네딕토는 종신직인 교황 자리에서 자진 사임한 두 번째 교황이다. 2013년 최초의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일각에서 ‘나치’라 비난할 만큼 보수 성향이 강했다.
영화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부터 베네딕토·프란치스코 교황의 뒤얽힌 운명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렸다면 연극은 두 교황의 팽팽한 언쟁이 이해로 뻗어가는 과정을 위트 있는 장면과 힘 있는 대사에 담았다.
신구는 “베네딕토 교황의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면이 나와 맞아떨어졌다”며 “종교 얘기를 깊숙이, 전문용어로 하니까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때 모르는 세계와 사람도 늘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걸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낸다. 그런 차원에서 반갑게, 또 두려움을 갖고 임했다”면서다.
“아직도 부족한 틈이 많다. 공연 끝날 때까지 열심히 채워나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정동환은 “‘연극은 그냥 연습이야, 연습’이라 늘 말씀하시는데, 그게 선생님을 여기까지 오게 한 큰 힘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교회 성추문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비난받았던 베네딕토 전임 교황은 올 2월이 돼서야 미성년 성학대 피해자들에게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그런 보수적인 인물을 연기했지만, 신구는 젊은 세대에게도 귀를 여는 인생 선배 ‘구야형’으로 통한다. 영화에선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등 거장들의 데뷔작을 맛깔난 연기로 살려냈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의 푼수끼 넘치는 ‘노구’ 역에 이어 “니들이 게 맛을 알아?”란 광고 대사로 인기를 끌며 젊은 세대와 소통했다. 이순재·박근형·백일섭과 함께한 tvN 예능 ‘꽃보다 할배’ 때는 “이 시대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보라” 등 어록을 남겼다.
신구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계라는 걸 느낀다. 대작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면서도 “마지막 작품이란 걸 내세우고 싶지 않다”며 빙그레 웃었다.
“기회가 있고 건강이 따른다면 새 작품에 참여할 생각은 있습니다. 모르죠. 사람 일이란 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