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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우리가 바뀌려면 세상이 변해야"…美 ‘원칙론’도, 韓 ‘담대한 구상’도 걷어찼다

중앙일보

입력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북한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이 법령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핵개발 의지를 다지는 내용이 담겼다. 뉴스1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북한은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 이 법령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고, 핵개발 의지를 다지는 내용이 담겼다. 뉴스1

북한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핵무력 법령’은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CVID(최종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요구와는 정반대의 내용이 담겼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법령에 대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1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번 핵무력 법령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불가역적’이라 규정했다. 또 한·일 등 동맹국과의 공조 하에 설계된 미국의 대북 정책을 ‘반공화국 책동’이라 비판하며 “우리의 핵무력 강화 노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미사일 고도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7차 핵실험을 비롯한 추가적인 무력 도발을 예고한 셈이다.

제재·압박에도 '핵 야욕' 공식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비핵화 협상 개시와 동시에 북한에 각종 유인책을 제공하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비핵화 협상 개시와 동시에 북한에 각종 유인책을 제공하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북한이 계속된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핵 무력 증강 의지를 드러낸 것은 미국이 ‘북한의 선제적 변화 없인 인센티브 제공도 없다’는 대북 원칙론을 고수하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단 의미로 풀이된다. 동시에 지난달 윤곽을 드러낸 윤석열표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사실상 거절 통보를 날리는 메시지에 해당한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함과 동시에 인프라·산업·경제 등 각 분야의 지원책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각종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선(先) 비핵화’ 노선보다 북한 측에 한층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핵무력 법령'을 통해 핵미사일 고도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또 핵 무력을 '자위권'으로 규정하며 경제적 유인책을 대가로 한 비핵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연합뉴스

북한은 '핵무력 법령'을 통해 핵미사일 고도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또 핵 무력을 '자위권'으로 규정하며 경제적 유인책을 대가로 한 비핵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은 이번 법령을 통해 이마저도 거부했다. “곤란을 잠시라도 면하기 위해 나라의 생존권과 국가와 인민의 미래의 안전이 달린 자위권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다”면서다. 이는 대북 제재와 코로나19·수해 등으로 계속된 경제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경제적 유인책을 대가로 한 비핵화 협상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다.

"세상이 변해야"…협상 개시 조건 던진 北

다만 북한이 핵 정착 전환의 전제 조건을 먼저 언급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가 북한의 숨구멍을 막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실제 김 위원장은 이날 시정연설을 통해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다”면서도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며 조건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키로 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키로 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은 북한이 그간 대화 개시 조건으로 내세운 적대시정책 철회와 연결된다. 결국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 등 그간의 요구사항을 재차 강조한 셈인데,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연합훈련의 범위·규모를 확대키로 했다. 서로의 요구 조건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같은 상황에선 비핵화 협상 개시를 둘러싼 북한과 한·미 간 기싸움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강조하고 핵 개발 의지를 다지는 이번 법령은 대외적인 위협 메시지보다는 ‘우리는 핵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점을 알리는 대내적 메시지 성격이 강해 보인다”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북한이 계속된 무력 도발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준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이 없는 만큼 한·미 역시 그간의 대북 공조를 일관성 있게 이어가는 것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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