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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학교·회사 대신 농사·사냥…6000년 전 유행 따라 빗살무늬 토기 썼죠

중앙일보

입력

현대인의 삶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거나, 회사로 출근하죠. 학업이나 근무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쉬거나 밖에서 친구를 만나는 등 시간을 보내고요. 추우면 난방하고, 더우면 냉방기기를 켭니다. 음식은 시장·마트에서 산 재료로 만들거나, 배달시켜 먹고 냉장고에 보관하죠. 사실 인류가 이런 편리한 삶을 살게 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에요. 혹시 수천 년 전 한반도 인류가 어떤 집에서 자고, 무슨 도구를 사용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이 호기심에 대한 답은 의외로 여러분 가까이 있답니다. 바로 전국 각지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인데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그중에서도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을 찾아 수천 년 전 인류의 생활상을 들여다봤어요.

임서준(서울 도성초 5)·권도준(서울 구룡초 4)·박시오(서울 대치초 4·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암사동 유적을 찾아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들여다 봤다.

임서준(서울 도성초 5)·권도준(서울 구룡초 4)·박시오(서울 대치초 4·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암사동 유적을 찾아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들여다 봤다.

혹시 선사시대(先史時代)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직후부터 글자로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 직전까지의 시대를 말해요. 한반도를 기준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된 선사시대는 구석기·중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로 구분할 수 있어요. 특히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신석기는 인류가 움집에 모여 살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토기와 저장고에 식량을 비축하는 등 본격적인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커요. 한반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이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랍니다.

멀게는 약 1만 년부터 가깝게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라서 생소하게만 느껴질 수 있지만, 신석기 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어요. 2022년 기준 전국에서 400곳 이상의 신석기 유적이 발굴됐죠. 서울에도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집터 유적인 암사동 유적이 있어요. 현존하는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최대 규모의 마을이 형성됐던 곳이죠. 신석기는 초창기(BC 8000~6000)·조기(BC 6000~4500)·전기(BC 4500~3600)·중기(BC 3600~2500)·후기(BC 2500~1500)로 나눌 수 있는데, 서울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 전기 한반도 중서부 지방에서 많이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로 잘 알려져 있죠. 한강변에 위치한 최초의 대규모 집단 정착 생활, 신석기 시대를 대표할 만큼 완성도 높은 빗살무늬 토기 출토 등이 특징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어요. 권도준·박시오·임서준 학생기자가 이곳을 찾아 수천 년 전 한반도에서 살았던 인류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기로 했어요. 홍경아 문화관광해설사가 이들을 맞이했죠.

서울 암사동 유적 유구 보호각에 재현된 신석기 시대 집터. 원형에 가까운 방형인 경우가 많지만,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모양인 말각방형도 있다.

서울 암사동 유적 유구 보호각에 재현된 신석기 시대 집터. 원형에 가까운 방형인 경우가 많지만,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모양인 말각방형도 있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수천 년 동안 땅에 묻혀있던 토기·석기 등 유물이 노출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어요. 당시에는 유적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보고 조사하지 않았죠. 해방 후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조사 및 발굴이 이뤄졌어요." 홍 해설사가 이끈 유구 보호각에는 땅을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파놓은 여러 구덩이가 있었는데요. 바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거주한 움집터 유구(遺構)예요. 2016~2017년 실시된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불에 탄 신석기 시대 주거지 8기를 발견했죠. 일반적으로 땅을 파서 화덕·저장 시설 등을 내부에 마련하고, 상부에 지붕을 덮은 구조의 살림집, 움집터예요. "신석기 시대 움집의 특징은 집 내부 중앙에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노지)이 있다는 거예요." 화덕 덕분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음식을 따뜻하게 조리하고, 추위와 사나운 짐승을 피할 수 있었어요.

움집은 땅을 0.7~1m 정도의 깊이로 파고 바닥을 다진 뒤, 기둥을 세워서 집의 뼈대를 만들고 억새·갈대·칡넝쿨·나뭇잎 등을 덮어 지붕을 씌워 만들었어요. 땅을 파내며 생긴 흙벽이 있어 벽을 따로 세우진 않았죠. 땅속은 바깥보다 온도 변화가 적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어요. 집터는 원형에 가까운 방형(方形)인 경우도 많지만,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모양인 말각방형(抹角方形)으로도 만들었습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갑자기 자연재해로 땅속에 파묻히게 된다면 TV·침대 등 가구를 비롯해 냉장고와 그 안의 식료품 등이 후대에 발굴되겠죠. 그처럼 신석기 시대 집터였던 이곳에서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보관할 때 사용한 토기 조각부터 주요 식량 중 하나였던 도토리까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발견됐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 암사동 유적에 복원한 신석기 시대 움집을 둘러봤다. 움집은 멀리서 보면 고깔처럼 생겼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 암사동 유적에 복원한 신석기 시대 움집을 둘러봤다. 움집은 멀리서 보면 고깔처럼 생겼다.

서울 암사동 선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뿐 아니라 청동기·삼국시대 유물도 출토됐습니다. 이는 해당 지역에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의미예요. 우리는 아시아 대륙의 동북쪽 끝쪽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한반도에 살고 있죠. 학자마다 조금씩 시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7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해요. 신석기 시대는 인류가 이동 생활을 주로 하던 구석기와는 달리 정착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움집터처럼 이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유물이 묻힌 토층이 존재하죠. 이걸 문화층이라고 해요. 암사동 선사 유적에서는 제1문화층인 신석기, 제2문화층인 청동기, 제3문화층인 삼국시대(백제) 관련 유물과 유구가 출토됐어요.

홍경아 문화관광해설사(맨 오른쪽)가 토층과 문화층에 관해 설명했다. 암사동 유적에서는 신석기부터 청동기·삼국시대까지 관련 유물과 유구가 토층별로 출토됐다.

홍경아 문화관광해설사(맨 오른쪽)가 토층과 문화층에 관해 설명했다. 암사동 유적에서는 신석기부터 청동기·삼국시대까지 관련 유물과 유구가 토층별로 출토됐다.

"움집터를 봤으니 이제 지붕까지 씌운 겉모습을 볼까요?" 홍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복원 움집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끌었어요. 움집은 집터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가로로 도리를 올린 뒤 서까래까지 얹어 지붕을 씌운 구조인데요. 멀리서 보면 고깔 모양처럼 생겼어요. 실내 중앙에는 집터에서 살펴본 것처럼 화덕이 있고, 화덕에서 나온 연기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꼭지 아래에 까치구멍이라고 불리는 환기 시설이 있었죠. 약 6000년 전 암사동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지냈다니, 소중 학생기자단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습니다.

암사동 선사 유적 박물관에 전시된 움집의 내부. 실내 중앙에 화덕을 놓은 구조가 특징이다.

암사동 선사 유적 박물관에 전시된 움집의 내부. 실내 중앙에 화덕을 놓은 구조가 특징이다.

토기와 도구로 알아본 신석기인들의 생활상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집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암사동 선사유적 박물관으로 이동했어요. 신석기 사람들이 살던 움집 안에는 어떤 물건이 있었는지, 또 그들이 살던 당시 암사동 주변 환경은 어땠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죠.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홍 해설사와 함께 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복원된 빗살무늬 토기였습니다. 빗살무늬 토기란 포탄형 또는 반계란형으로 생긴 몸체에 음각으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 넣은 토기를 말해요. 신석기 시대 인류는 한곳에 정착하면서 채집·사냥·물고기잡이 등으로 얻은 식량을 보관하고 조리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었죠.

신석기 시대 토기는 동아시아에서는 BC 약 1만5000년, 그 외 지역에서는 BC 1만 년을 전후로 세계 각지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토기는 바닥이 편평하고 무늬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릇을 모래나 땅에 박아서 고정할 수 있도록 점차 바닥이 뾰족해졌고 문양과 형태를 표면에 새기기 시작했죠.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 전기(BC 4500~3600년) 한반도 중서부 지방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졌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동북 지방과 일본·시베리아·북유럽에서도 비슷한 형태 토기가 나타납니다.

신석기 시대 지역별 토기의 형태에 대해 알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신석기 시대 토기는 기원전 1만 년을 전후한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출현하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이보다 약 5000년 앞서 토기를 제작했다.

신석기 시대 지역별 토기의 형태에 대해 알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신석기 시대 토기는 기원전 1만 년을 전후한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 출현하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이보다 약 5000년 앞서 토기를 제작했다.

"빗살무늬 토기를 만드는 재료와 과정이 궁금해요." 시오 학생기자의 말에 홍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빗살무늬 토기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코너로 이끌었어요. 과정은 크게 흙 채취 및 준비→토기 모양 만들기→표면 다듬기와 무늬 새기기→건조→굽기(소성)로 구분할 수 있어요. 먼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을 물에 개어 잘 반죽해요. 여기에 돌가루나 조갯가루를 섞으면 더욱 튼튼한 토기를 만들 수 있죠. 두 번째로 둥근 진흙띠를 여러 개를 똬리 모양으로 쌓아 올리는 테쌓기 기법이나, 긴 진흙띠를 나선형으로 감아올려 그릇 모양을 만드는 서리기 기법으로 토기 모양을 만들어요. 크기가 작은 토기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손으로 빚을 수도 있죠. 세 번째로 토기 표면을 손으로 두드리거나 나무칼·조가비·둥근 자갈 등으로 긁어내서 다듬어요.

모양이 완성된 토기는 나뭇가지·동물 뼈·조가비 등으로 누르거나 그어서 표면에 무늬를 새깁니다. 작은 칼처럼 생긴 무늬새기개를 이용하기도 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무늬새기개를 살펴봤어요. 마지막으로 불을 지펴 토기를 구우면 우리가 아는 빗살무늬 토기가 탄생해요. 신석기 시대에는 그릇을 굽는 가마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야외에서 불을 지펴 토기를 구웠죠. 공기와 접촉한 상태로 구워진 빗살무늬 토기는 붉은빛이 도는 경우가 많고, 밀폐된 가마에서 구운 도기에 비해 강도도 약해요.

신석기 시대에 대해 알아본 박시오 ·임서준·권도준·(왼쪽부터) 학생기자. 신석기 시대는 원시적 농경과 정착 생활의 시작, 간석기 이용 등으로 인류의 삶이 구석기 시대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한다.

신석기 시대에 대해 알아본 박시오 ·임서준·권도준·(왼쪽부터) 학생기자. 신석기 시대는 원시적 농경과 정착 생활의 시작, 간석기 이용 등으로 인류의 삶이 구석기 시대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한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빗살무늬 토기 관련 유물을 둘러보던 서준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원시적 농경의 시작, 토기·간석기의 사용이에요. 구석기 시대에는 돌을 쳐서 깨뜨리거나 떼어내서 크기와 형태를 조절하는 방법을 사용했어요. 반면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갈아서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는데요. 덕분에 이전보다 더 날카롭고 정교한 돌로 만든 도구를 만들 수 있었죠. 이걸 간석기라고 해요."

간석기 설명을 듣던 도준 학생기자가 "그렇다면 신석기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있을까요?"라고 물었어요. 마침 옆에 농경 및 수렵‧어로 활동에 사용된 간석기들이 전시돼 있었죠. 사냥할 때 쓰던 돌화살촉과 돌창,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질 때 쓰던 그물추, 땅속을 뒤져 식물의 뿌리나 열매를 캐는 데 쓰던 뒤지개, 농사지은 곡식의 대를 벨 때 쓰던 돌낫, 낟알의 껍질을 벗기거나 열매를 갈 때 사용하던 갈판·갈돌 등이 눈에 들어왔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갈돌과 갈판.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갈돌과 갈판.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던 당시 암사동 지역은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나타났죠.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 한강 생태계는 우리가 사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해요.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침엽수인 소나무·가문비나무 종류와 낙엽 활엽수인 참나무·느릅나무·벚나무 종류가 자라고 있었죠. 또 참나무의 열매 도토리가 탄화된 것도 많이 발견됐어요. 당시 이곳에서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도토리를 많이 채집해서 식량으로 삼았다는 증거죠.

신석기 시대 한반도는 온난화 현상으로 해수면이 차차 높아지고, 새로운 동식물이 나타났어요. 빙하기에 살던 매머드 등 대형 동물들이 따뜻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뒤 사슴·소·멧돼지 중소형 포유류 등이 출현했죠. 또 오리류·고니류·기러기류 등 각종 철새는 물론 꿩과 같은 텃새도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식했는데, 이들은 암사동 유역에 살던 신석기인들의 중요한 식량이었을 것으로 보여요. 먹잇감이 풍부해진 덕분에 신석기인들은 도구들을 활용해 농사를 짓거나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한곳에 정착할 수 있었죠.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전시실 옆쪽에는 움집 내 화덕에 불 피우기, 갈돌·갈판으로 곡식 갈기, 움집 조립 등 신석기 시대 생활을 간단히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어요. 도준·시오·서준 학생기자가 차례대로 도전해봤는데요. 나무와 돌의 마찰열을 이용한 불 피우기부터 갈돌을 갈판에 끊임없이 문질러야 하는 곡식 갈기까지 쉬운 게 없었습니다. 가스레인지와 믹서기의 버튼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요즘과는 너무 달랐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아는 서울 암사동 유적은 약 100여 년에 걸쳐 발굴과 조사가 이뤄진 역사적인 현장인데요. 소중 학생기자단도 고고학자들처럼 빗살무늬 토기 조각을 한 번 맞춰보기로 했죠. 박물관을 나와 움집들이 모여있는 체험마을을 지나면 보이는 체험교실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조각들을 접착제를 이용하여 조립하는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접착제와 면봉, 토기 조각을 받아든 도준·시오·서준 기자는 가이드 영상을 시청한 뒤 조립을 시작했죠. 언뜻 쉬워 보였지만 서로 아귀가 맞는 조각을 찾아 빈틈없이 맞추는 작업은 꽤 인내심이 필요했어요. 가장 먼저 조립을 끝낸 서준 학생기자에 이어 시오·도준 학생기자까지 완성한 뒤 자세히 살펴보니 체험용 빗살무늬 토기 모형에도 박물관에서 살펴본 것처럼 상부·몸통·하부에 서로 다른 무늬가 있었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의 곳곳을 둘러보며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탐방한 소중 학생기자단. 신석기 시대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궁금해하자 서재원 서울 암사동 유적 학예연구사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보내왔어요.

1974년(위 사진)과 1984년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 발굴 현장.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세상에 처음 알려진 후 100여 년에 걸쳐 조사됐다.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1974년(위 사진)과 1984년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 발굴 현장.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세상에 처음 알려진 후 100여 년에 걸쳐 조사됐다.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시오: 서울 암사동 유적을 둘러보다 보니 복원된 움집이 기억에 남아요. 움집이 등장하기 전에 인류는 어떤 곳에서 살았나요. 신석기 시대 움집 외에 다른 주거 형태도 있었나요.  
인류는 신석기 시대에 처음으로 움집을 지어 정착 생활을 시작했으며, 움집 이전 인류는 임시로 막집을 지어 살거나 주로 동굴 같은 곳에서 생활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움집터는 제주도 고산리유적이에요. 참고로 신석기 시대에도 동굴에서 살았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해요.  
도준: 최근 우리나라에 폭우가 와서 많은 집이 침수됐어요. 신석기 움집은 비나 눈이 많이 와도 버틸 수 있는 구조였나요.
움집은 어느 정도의 비나 눈에는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구조로 만들었지만 심한 폭우에 따른 침수 등에는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옥으로 만든 장신구.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옥으로 만든 장신구.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서준: 실제로 보니 움집이 꽤 크더라고요. 서울 암사동 유적 움집들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서울 암사동 유적의 움집은 평균적으로 지름 5~6m 정도에 면적 30㎡ 내외이지만, 큰 움집의 경우 지름이 7.6m에 달하고 면적이 50㎡를 넘는 경우도 있어요. 움집 내부 구조는 (여러분이 살펴본 것처럼) 추위와 비바람 등을 막고 요리하기 위해 땅을 원형 또는 방형으로 파고 가운데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을 만들었죠. 
도준: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은 몇 군데가 발굴됐나요? 암사동 유적의 발굴 과정도 궁금합니다.  

2022년 현재 400곳 이상의 신석기 유적이 발굴됐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는데, 당시 유적이 홍수로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인식되어 정밀한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60년대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1971~1975년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해 30여 기의 집자리와 수천 점의 토기·석기를 발굴했죠. 이후 유적공원·전시관 설립을 위한 발굴조사를 2~3차례 더 진행했고, 2016·2017년에는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8기의 집자리를 더 조사했어요. 그중 3기를 유구 보호각에서 직접 볼 수 있죠. 
 신석기인들은 빗살무늬 토기 표면에 여러 종류의 문양을 그려넣었다.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신석기인들은 빗살무늬 토기 표면에 여러 종류의 문양을 그려넣었다.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시오: 빗살무늬 토기에는 여러 가지 문양을 그려 넣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종류가 있나요. 또 문양을 일부러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빗살무늬·무지개무늬·번개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있어요. 다만 각 문양이 특정한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이러한 문양을 아무런 목적 없이 장식용으로만 새겨 넣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또 무엇의 형상을 참고하여 새겨 넣었을 것으로 생각돼요.
도준: 신석기 시대 토기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빗살무늬 토기이지만, 알고 보면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던데 각각 특징과 만들어진 시기가 궁금해요.
구석기와 신석기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유물이 바로 토기죠. 우리나라의 토기 형태와 문양을 기준으로 크게 동북·서북·중서부·남부 4개의 문화권으로 구분해요. 동북·서북 지방은 바닥이 평평한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중서부·남부 지방은 바닥이 뾰족한 토기가 주류죠. 신석기 시대 초창기 대표 유적인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는 바닥이 평평하고 식물성 섬유질을 다량 섞은 문양이 없는 토기가 발견됐어요. 신석기 조기(BC 6000~4500)에 나타나는 토기는 주로 동북과 남부지방의 해안가와 섬 지역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점토띠를 표면에 붙여서 만든 덧무늬토기가 대표적이에요. 신석기 전기(BC 4500~3600)에는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하고 전면에 빗살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중기(BC 3600~2500)에는 다양한 문양의 빗살무늬 토기가 나타나죠. 신석기 후기‧말기(BC 2500~1500)에는 토기에 무늬가 새겨지는 면적이 크게 줄어 입술 부분에만 새겨지거나, 거칠고 엉성하게 그려진 토기가 많이 나타나요.
움집에 살며 농경·사냥·채집 등을 했던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감상 중인 소중 학생기자단.

움집에 살며 농경·사냥·채집 등을 했던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감상 중인 소중 학생기자단.

시오: 돌괭이·돌도끼·돌창·돌낫·돌화살촉·갈돌 등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간석기가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에 비해 편리한 점은 무엇인가요.
신석기 시대에는 석기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방법으로 간석기라는 새로운 도구가 출현하였는데요. 특히 날 부분을 정교하게 만들어 도구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도 했고, 뗀석기보다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여 문화의 발달로 이어지기도 해요. 간석기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석기를 사용하다가 파손되거나 마모되면 재가공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석기는 사용할수록 전체적인 형태가 변화하고 그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재가공 시 다른 용도의 석기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어요.  

기후와 자연환경 변화로 인한 신석기 시대의 시작부터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움집과 그들이 식량을 구할 때 쓰던 도구까지.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아봤어요.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정착 생활과 농경은 잉여 식량과 인구 증가로 이어졌으며, 이는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국가와 문명이 탄생하는 토대가 됐죠. 이때부터 축적됐던 여러 기술과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모여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재를 만든 거랍니다. 어때요. 이렇게 들여다보니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신석기 시대가 한층 가깝게 느껴지지 않나요.

신석기 생활 예술품이었던 빗살무늬 토기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경희대학교 소장품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경희대학교 소장품

빗살무늬 토기 문양의 종류.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빗살무늬 토기 문양의 종류. 서울 암사동 유적 제공

빗살무늬 토기는 바닥이 뾰족한 형태로 점과 선으로 구성된 문양으로 장식한 토기입니다. 겉면을 위(입술)·몸통·하부로 구분해 각각 다른 문양을 새겨 넣었어요. 윗부분은 주로 3~5열의 짧은 빗금이나 손톱을 눌러 새긴 듯한 반원, 끝이 둥근 무늬새기개로 찍어 누른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점 문양 등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죠. 몸통 부위에는 브이(V)자를 여러 개 겹친 듯한 문양을 넣었는데, 이 모양이 마치 생선 뼈와 비슷하다고 해서 '어골문(魚骨文)'이라고도 불러요. 또한 손톱무늬·세모띠무늬·무지개무늬·겹톱니무늬·문살무늬·생선뼈무늬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무늬를 반복적으로 새겨 넣었죠. 하부에는 몸통 문양을 연결하거나 동심원 문양을 새겨 넣었어요. 이러한 문양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음식을 조리하거나 보관하는 용도였던 토기에 무늬를 넣어 예술성을 더한 점에서 빗살무늬 토기는 생활 예술품이기도 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빗살무늬 토기 모형 복원 체험 후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만난다는 의미를 담은 설치 작품인 '시간의 길' 앞에 섰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빗살무늬 토기 모형 복원 체험 후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만난다는 의미를 담은 설치 작품인 '시간의 길' 앞에 섰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역사를 좋아하는 저에게 서울 암사동 유적 취재는 정말 재미있고 특별했어요.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발굴된 유적지가 제가 사는 동네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죠. 움집터와 복원된 움집을 보며 신석기 시대 생활을 상상해볼 수 있었고, 신석기인들의 생활방식과 유물에 대해 잘 알게 됐어요. 취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빗살무늬 토기 모형을 복원해본 것이에요. 앞으로도 더욱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권도준(서울 구룡초 4) 학생기자

역사 유적 취재는 처음이라 시작 전부터 호기심이 컸고 마음도 들떴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과 그들이 주로 사용하던 물건, 먹던 음식 등 많은 점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체험장소였죠. 홍경아 해설사 선생님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깔끔한 설명 덕분에 평소 헷갈리거나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점들도 알게 됐어요. 특히 박물관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들의 형태와 특징, 움집의 형태를 배우고 체험교실에서 빗살무늬 토기 복원 체험을 했는데, 부서진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고 접착제로 바르며 온전한 토기의 모양을 찾아가는 점이 참 유익했어요. 머나먼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던 미를 알게 되어서 한층 더 똑똑해진 기분이 들었달까요. 원래는 관람객들이 움집에 들어가 움집 생활을 체험해볼 수도 있는데, 최근 이어진 폭우로 인한 시설 문제로 들어가지 못해 조금 아쉬웠어요. 하지만 전시관에서 움집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기에 움집 체험 못지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 탐방을 통해 평소 역사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역사의 재미를 찾고 머나먼 옛 시절의 우리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 좋겠어요.

박시오(서울 대치초 4) 학생기자

서울 암사동 유적은 40기 이상의 집터가 발견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한강을 중심으로 어로와 채집·원시적 농경 생활을 하며 살았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에요. 빗살무늬 토기와 여러 간석기가 발굴된 곳이기도 하죠. 저는 신석기 관련 유물이 멋지게 전시된 박물관을 둘러보고, 빗살무늬 토기 모형 복원 체험도 해봤어요. 이외에 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움집 만들기 등의 체험도 있었는데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임서준(서울 도성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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