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책이라는 ‘네모난 오아시스’에 뛰어들면 예술이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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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조각가·디자이너 등 많은 예술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죠. 그들의 작품 중에는 책 형식으로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 ‘예술가의 책을 위한 오아시스’를 의미하는 ÓPLA(Oasi Per LibriArtistici) 아카이브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메라노에서 1997년부터 예술가의 책을 수집·연구·조사하고 있죠. 현재 출판되고 있는 책뿐만 아니라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품,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 등 800여 점을 수집했어요. 책 형식의 예술 작품, ÓPLA 아카이브 컬렉션을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만날 수 있습니다. 11월 20일까지 열리는 ‘네모난 오아시스’ 전시를 통해서죠.

알파벳·숫자 같은 사회적 기호를 작가마다 다른 관점으로 표현한 작품이 가득한 ‘예술가의 신기한 기호’ 섹션.

예술가의 책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제안하는 전시 ‘네모난 오아시스’는 크게 6개 주제로 나눠 호안 미로·니키 드 생팔·앤디 워홀 등 64명의 작가에 대한 ÓPLA 아카이브 컬렉션 도서 96권과 원화 및 아트 프린트를 선보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세희 학예사는 “작품 하나하나 예술가들이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며 “관찰·상상·기호·형식·표현·놀이의 6개 주제를 가지고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게 공간을 구성했다”고 전했어요.
먼저 ‘예술가의 세심한 관찰’ 섹션에는 일상 속 인물·사물 등을 관찰해 그대로 담아내거나 작가의 철학을 더한 작품을 모았습니다. 어린이 체구에 맞춘 탁자를 보면 뉴욕 풍경에 숨어있는 알파벳을 찾아낸 관찰의 대가 스테판 T 존슨의 『숫자로 보는 도시』가 시선을 끌죠. 또 20세기 이탈리아 그래픽·디자인을 아우르는 예술가 브루노 무나리가 평범한 돌을 주의 깊게 살펴 개성을 찾아내고 즐거운 상상을 덧붙여 만든 『멀리서 보면 섬이다』도 전시됐어요. 그 옆에선 작가처럼 일상에 흔한 물건을 관찰하고 색다른 면을 찾아 그려보는 활동을 제안합니다. 특히 신체를 관찰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마리오 마리오티의 작품은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예요.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 엔리코 바이는 12개 큐브의 72개 면에 다른 그림을 그려 형태를 분해하고 조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 책』을 만들었다. ⓒ Enrico Baj

‘예술가의 엉뚱한 상상’ 섹션에서는 그림책을 매개로 작가들이 어떻게 상상력을 펼쳤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현실주의자로 사회 비판에 앞장선 작가 오토 딕스가 그의 자녀·손주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을 모은 『어린이를 위한 앨범』이 대표적이죠. 평소 그의 작품과 달리 가족을 위해 발휘한 상상력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반려견을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변신시킨 윌리엄 웨그만의 작품도 눈길을 끌죠.
알파벳·숫자 같은 사회적 기호를 작가마다 다른 관점으로 표현한 작품을 모은 ‘예술가의 신기한 기호’ 섹션의 대표작은 피터 블레이크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입니다. 26개 알파벳에 대한 인쇄물을 각각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해 시야를 확장하죠. 그의 작업 공간 사진 앞에는 그처럼 페이퍼 콜라주를 해보는 공간도 마련됐어요. 그래픽 디자이너 데이비드 펠레티에의 『그래픽 알파벳』은 알파벳에 해당하는 그림을 함께 디자인했죠. 예를 들어 F는 Fire니까 불이 붙은 F를 그리는 식입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알파벳 뒤편으로는 숫자들이 이어집니다.

화려한 문양의 드로잉과 조각으로 유명한 니키 드 생팔의 『상처 입은 동물들』은 ‘예술가의 독특한 표현’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 Niki de Saint Phalle

위층으로 올라가면 ‘예술가의 새로운 형식’ 섹션을 통해 책의 형식을 다양하게 실험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책 뒷장으로 갈수록 사이즈가 줄어들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브루노 무나리의 『판매용 동물』이 한 예죠. 책 일부를 아이들 키만 하게 재현해 흥미를 돋웁니다. 김 학예사는 “팝업북, 아코디언북, 두루마리, 기울어진 책 등 일반적인 책 구성과 형태의 구조적 요소를 변화시켜 한계를 무너트리는 작품에 맞춰 한쪽 벽을 튀어나오게 연출했다”고 말했죠.
‘예술가의 독특한 표현’ 섹션에서는 예술가의 대표적인 기법이 드러나는 작품이나 독특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그림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호안 미로가 밝고 꿈같은 분위기로 만든 75개의 목판화와 콜라그래프로 구성한 그림책 『모든 증거에서』죠. 10여 년간 폴 엘뤼아르가 쓴 시와 호안 미로의 상상이 만나 독특한 책이 됐어요. 움베르토 에코가 글을 쓰고 에우제니오 카르미가 그림을 그린 『폭탄과 장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지안루이지 토카폰도가 피노키오를 가지고 만든 책과 애니메이션도 볼 수 있죠. 옆에는 알베르토 롱고니의 섬세한 라인드로잉으로 태어난 피노키오가 함께 전시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어요.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가 만든 어린이 그림책 『머드북』은 진흙으로 파이와 케이크 레시피를 알려주는 유머러스한 책이다. ⓒJohn Cage

마지막 섹션인 ‘예술가의 실험적 놀이’는 책을 통해, 책을 가지고, 책처럼 놀아보길 제안해요. 특히 빈센트 콜러의 『브리코폴리스』는 방구석에 버려진 종이상자 안의 물건들이 로봇·비행선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나며 우주 도시를 형성하는데요. 주변 공간에 각종 물건이 담긴 종이상자를 두고 작가와 같이 브리콜라주 창작을 해보도록 유도하죠. 또 앤디 워홀이 간결한 선으로 그린 일러스트에 자유롭게 색칠한다거나, 마르티 귀세의 『푸드북』을 통해 원하는 음식을 그려보는 등 상상과 놀이를 제안하는 작품들로 가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