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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팬덤에 난타당하고, 개딸에 '숙청'당하는 민주 의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또다시 ‘문자 폭탄’ 세례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이 아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팬덤으로부터다. 김영배 의원은 1일 국회 예결위 종합정책질의 직후 한 장관 지지층으로부터 “장관한테 눈을 그렇게 부라리면 되냐”, “윽박지르면 다냐” 등 수백통의 문자 폭탄을 받았다고 한다.

김 의원이 이날 한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 입법 의지를 묻는 과정에서, 한 장관이 “제가 (수사지휘권 발동을) 안 하고 있어 (공약이 사실상)이행됐다”고 답하자, 김 의원이 “본인의 말이 곧 법이냐”고 한 장관을 다그친 게 이들의 역린을 건든 꼴이다.

1만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장관의 온라인 팬덤은 그가 검사장으로 일하던 2020년 신설된 네이버 팬카페인 ‘위드후니’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팬페이지 등을 중심으로 결집해 있다.

한동훈 날갯짓 속 야권 잠룡은 고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민주당이 문자 폭탄을 받았던 전례가 없다. 한 장관에게 이런 강성 팬덤이 생겼단 건 차기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 섰다는 징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한 장관을 때릴수록, 한 장관 몸값은 계속 올라갈 것”이라며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 외엔 부각되는 인물 하나 없는 블랙홀에 빠져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여권 잠룡으로 뜨는 사이, 야권에선 잠룡이 자취를 감춘 현재의 상황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2일 발표한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장래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여권 인물은 꽤 많다. 한 장관(9%)을 필두로, 오세훈 서울시장 4%, 홍준표 대구시장 4%,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4%,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3% 순이다.

반면 야권에선 이렇다할 후보가 없다. 전체 후보군 중 1위를 차지한 이 대표(27%)를 제외하곤 이낙연 전 대표(2%)가 간신히 순위권 안에 들었다. 민주당이 여당이던 지난 대선 경선 당시 ‘13인의 잠룡 등판설’까지 나왔을 정도로 후보군이 넘쳐났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엔 차기 잠룡 부상할 공간이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6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6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당 내에선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된 8·28 전당대회를 거치며, 차기 잠룡은 커녕 차기 잠룡이 부상할 수 있는 공간도 없어졌다”(수도권 3선 의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대표가 지난 2일 검찰 소환조사를 통보받은 뒤부터 민주당의 당력은 오직 ‘이재명 사법 리스크 확산’ 저지에 쏠려있는 상황이다.

‘이재명 단일대오’를 벗어나는 당내 인사들이 개딸에 의해 즉각 ‘숙청’에 처해지는 환경도 문제다. 한때 친문 주류였던 전해철·홍영표 의원도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반대한 뒤 강성 지지층의 집중 표적이 됐다. 당내에선 “문재인 정권에서 당의 주요 실세였던 사람들이 마치 퇴역 장교처럼 존재감을 잃었다”(민주당 관계자)는 평가도 나온다.

5년 뒤 대선에서 이 대표의 ‘페이스 메이커’로 거론됐던 김동연 경기지사도 최근 친명(親明) 계와의 갈등설이 불거지며 차기 주자로서 입지가 좁아진 형국이다. 그나마 박용진·강훈식·강병원 의원 등 97그룹(1990년대 학번·1970년대생)이 이번 당 대표 경선을 치르며 인지도를 높인 게 당 차원의 성과라지만, 이들 역시 전당대회 이후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당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이 대표 체제 하에선 새 인물 부상이 어려울 것”이라며 “목소리를 내야 부각이 되는데, 지금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간 바로 사장돼버리지 않나”고 지적했다.

다만 4선 중진 의원은 “대선이 5년이나 남지 않았나” “대선 2년전까지는 잠룡이 부각될 시점이 아니다. 한 장관처럼 일찍부터 거론되는 건 오히려 중도에 고꾸라질 수 있는 여지만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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