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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팔아먹었다"…부안 농촌 뒤집은 '도장값 500만원'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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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시설. 본 기사와 무관함. 중앙포토

태양광 발전시설. 본 기사와 무관함. 중앙포토

주민들, 사문서 위조 혐의 60대 이웃 고소   

대대손손 이웃끼리 사이 좋게 지내던 전북 부안군의 한 농촌 마을이 최근 쑥대밭이 됐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한 주민이 외지 업체와 짜고 주민 허락 없이 동의서를 위조해 부안군 허가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다.

11일 부안경찰서에 따르면 A씨(49) 등 3명은 지난 5월 사문서위조·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같은 마을 주민 B씨(64)를 고소했다. A씨 등은 "B씨가 태양광 업체에 매수돼 마을 주민 몰래 주민 동의서를 꾸며 업체에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업체가 위조된 동의서를 개발 행위 허가 신청서에 첨부해 부안군에 제출했고, 담당 공무원이 주민 동의를 받은 것으로 착각해 태양광 발전시설 설립 허가를 내줬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양측 조사를 마친 경찰은 조만간 검찰 송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부안군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전문 업체 대표 C씨 등 5명은 2019년 6월 '부안 ○○마을 토지(6235㎡)에 약 400kw급 태양광 발전시설을 짓겠다'며 부안군에 신청서를 냈다. 이에 부안군은 소규모 환경 영향 평가 등을 거쳐 같은 해 9월 사업을 허가했다.

업체는 지난해 11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 7월 발전시설을 완공한 뒤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발전시설 때문에 마을 미관이 나빠지고 공사 현장을 드나드는 트럭으로 인한 소음·분진 피해가 난나고 한다. 또 고압 전선 설치에 따른 전자파 우려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 30여 명은 대부분 70대 이상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월 전남 신안군 한 마을 주민들의 민가가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 현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다. 본 기사와는 무관함.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월 전남 신안군 한 마을 주민들의 민가가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 현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서 있다. 본 기사와는 무관함. 프리랜서 장정필

"동의서 위조하지 않았다…허가와도 무관" 반박

주민들은 B씨를 마을에 분란을 일으킨 '공공의 적'으로 보고 있다. A씨는 "태양광 발전시설 부지가 주택과 50~60m 거리에 있다"며 "주민들은 업체 측이 부안군에 낸 동의서에 서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민 반대가 크자 B씨가 (A씨) 어머니(80) 등 주민 일부에게 찾아가 현금 500만 원을 보여주며 공사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한 적도 있다"며 "어른들은 'B씨가 돈을 받고 마을을 팔아먹었다'고 원망한다"고 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지자체에서는 주민 동의서가 없으면 함부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게 관례로 안다"며 "시킨 사람이 없는데 B씨가 자발적으로 동의서를 받으러 다녔다는 것은 '꼬리 자르기'"라고 했다.

반면 B씨 측은 "동의서는 위조하지 않았고, 허가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B씨는 "해당 동의서는 애초 2017년 내가 내 땅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짓기 위해 미리 15명에게 받은 것"이라며 "업체 대표가 친구의 친구여서 참고하라고 준 건데 업체 직원 착오로 서류가 제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안군 관련 조례상 (발전시설 경계로부터) 직선 거리로 100m 이내에 10가구 미만이면 주민 동의서가 필요 없고, 당시엔 7가구밖에 없었다"며 "과거엔 나도 해당 조례를 몰라 동의서를 받았다"고 했다. B씨는 다만 "마을 어른들에게 나쁘게 해 본 적이 없는데 법적 다툼까지 하게 돼 미안한 마음"이라며 "업체 대표 부탁으로 절충안을 찾기 위해 주민들을 만난 건 맞지만, 현금을 보여주며 동의를 요구한 사실은 없다"고 했다.

경찰 로고. 부안경찰서는 11일 "A씨(49) 등 3명이 지난 5월 사문서위조·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같은 마을 주민 B씨(64)를 고소해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 로고. 부안경찰서는 11일 "A씨(49) 등 3명이 지난 5월 사문서위조·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같은 마을 주민 B씨(64)를 고소해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업체 "정당한 공사…마을 주민들이 방해" 

업체 측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허가를 받은 공사인데 주민들이 명분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업체 대표 C씨는 "마을에서 수차례 공청회를 열어 충분히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수개월간 트랙터 등으로 진입로를 막아 공사를 방해했다"며 "개인 땅을 빌려 우회 도로를 만드느라 1000만 원 이상 추가 비용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업체 측은 지난 4월 업무방해 혐의로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달 A씨를 약식기소했다. 업체 대표는 "마을 발전기금으로 2000만 원을 내겠다고 해도 주민들이 무조건 반대하니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주민들은 지난 3월 '발전시설 허가 과정에 주민 동의서가 부당하게 첨부됐다'며 공사 중지를 요청하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냈다. 이에 대해 부안군은 "해당 신청 부지는 2018년 10월 개정된 '부안군 군계획 조례'에 따라 10가구 이상 주거지에서 100m 이격(離隔)해야 한다"며 "하지만 조사 결과 10가구 미만으로 이격 거리 검토 대상이 아니어서 개발 행위 허가를 처리했고, 해당 조례에 주민 동의서 수령 조항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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