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3)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무무헌
가회동 북촌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들이 살던 유서 깊은 동네이다. 이러한 가회동 한복판에 위치한 무무헌은 과거가 어떤 형태로 현재 그리고 미래에 맞닿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옥이라고 할 수 있다.
130년대 중반, 무무헌 부지에는 가회동 내 대규모 한옥지구 개발의 일환으로 모델하우스가 지어져 있었다. 이 건물은 70년이 지난 2000년 초가 돼서야 건축가 황두진 소장에 의해 새로운 양식의 한옥으로 재탄생했다. 비록 한국 전통 건축 양식과 관련한 교육을 정식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황 소장은 무무헌 한옥 작업을 통해 한옥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북촌 일대 혁신적인 한옥 작업에 참여하게 된 인물이다.
‘무(無)조차 없다’라는 뜻처럼 무무헌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불교의 참선을 닮은 절제와 내적 아름다움의 덕을 완벽하게 담아낸 장소다. 집주인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취미인 서예를 하고 개인 미술 소장품도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어 했다. 이러한 바람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없이 자신을 비워내자는 집주인을 철학과 맞물리며 전통적인 디자인을 지닌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무무헌의 소박한 디자인, 자연과 공존하는 마당은 공간에 대한 집주인의 철학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이채로움을 선사한다. 무무헌의 설계는 이 책에 소개된 다른 한옥과 달리 전통 한옥 구조를 엄격하게 준수해 이뤄졌다.
이를테면, 집 안에서 지하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나 부엌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 무무헌에는 의자나 침대가 없는데 이는 바닥에서 쉬고, 일하고, 식사하고, 잠을 자는 전통 한옥의 좌식 문화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무무헌에서는 마치 옛날 한옥에서 생활했던 방식 그대로 식사를 할 때 좌식 식탁을 이용하며, 잠을 청할 때는 온돌 바닥 위에 이부자리를 편다.
대문과 길가에 자리 잡은 사랑채, 대문 맞은편에 위치한 안채, 그리고 두 채 사이에 놓인 부엌이 마당을 중심으로 디귿(ㄷ)자 형태를 한 무무헌은 전형적인 도시형 한옥의 구조를 답습한다. 대청마루 한쪽에는 집주인이 서예를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 있는데,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일 뿐만 아니라 집채보다 조금 높게 지어져 서울 도심과 가회동 한옥이 한눈에 들어오게끔 설계됐다.
전형적인 도시형 한옥의 특징인 한지로 마감한 목재 방바닥 아래에는 전통 온돌이 아닌 현대적 온수 보일러가 설치돼 있다. 서예 공간 옆에 위치한 우물마루는 사랑채를 마주 보고 있고, 그 건너편에는 안방이 있다. 사랑채, 안채, 부엌 모두 새하얀 한지, 좌식 식탁과 궤로 실내 장식이 되어 있고 수납공간 또한 부엌 위 다락과 미닫이문 뒤에 숨겨진 채로 전통적인 우아함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도시형 한옥의 구조에서는 마당을 통해 부엌으로 출입하지만, 무무헌에서는 안방과 부엌이 계단을 통해 연결된다는 점도 이채롭다. 부엌 왼쪽의 사랑채에는 손님맞이를 위한 조그마한 취침 공간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