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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못가고 "스팸세트 되팔아요"…2030 겨우 몇만원 쥐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도봉구에서 사는 이모(30)씨는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고향인 부산에 가지 않고 자취방에 머물기로 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명절 상여금도 줄어든 데다, 하고 있던 주식도 크게 떨어지면서 지갑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부모님께는 연휴 특근을 핑계로 귀향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식비까지 졸라매던 상황에서 10만원 넘게 들어가는 교통비도 부담된다”며 “부모님 용돈도 드려야 하는데 내 몸 움직이는 돈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5~6%대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지난 6월부터 지속하면서 추석 연휴 자발적 ‘짠테크족’에 합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귀향을 포기하거나 명절 선물을 중고거래로 되파는 등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소비지출이 0.4% 증가에 그쳐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6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이 제수용 과일을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6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이 제수용 과일을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과일 가격 너무 올라…차례상 차리는 데 10만원 더 들어”

폭등한 물가 탓에 직장인뿐만 아니라 소득이 없는 취업준비생의 귀향 포기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최모(25)씨는 8~11일 나흘 동안 할 수 있는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취업준비에 필요한 돈도 벌고, 남는 시간엔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다. 대전이 고향인 최씨는 “이미 월세 등에 부모님 손을 빌리고 있어서 명절에 친척들 얼굴 보는 것도 민망하다”면서 “주변에서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은 대다수 귀향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1580명을 대상으로 추석 귀향 여부를 조사한 결과 ‘고향 방문 계획이 없다’는 답이 585명(37.0%)로 조사됐다. 고향 방문을 계획할 수 없는 이유로는 ‘직장, 아르바이트 등으로 연휴에 쉴 수 없기 때문(30.4%·178명)’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고, ‘취업 준비, 시험공부 등 자기 계발에 집중하기 위해(24.1%·141명)’란 응답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오른 장바구니 물가로 차례상에 과일 올리기도 어려워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지난달 31일 기준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31만 7142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1만 9338원(6.5%) 증가한 것이다. 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추석(9월 10일)을 나흘가량 앞두고 주요 성수품 가격이 크게 뛰었다. 6일 기준 선물세트용 사과로 쓰이는 홍로(10kg 기준)의 평균 도매가는 5만 2280원으로 1년 전(4만 4668원)보다 약 17% 올랐다. 배추 10kg(3만 6040원), 무 20kg(4만 180원)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2.5배(1만 3352원), 3.3배(1만 2260원) 뛰었다.

수원에 사는 주부 이현숙(49)씨는 “지난해보다 차례상 차리는데 10만원은 더 든 것 같다”며 “특히 과일값이 너무 비싸져 박스로 사던 사과를 차례상에만 올릴 만큼 낱개로 샀다”고 말했다.

“중고거래 앱에 선물세트 팔아 현금 만들었다”

추석 선물세트들이 중고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추석 선물세트들이 중고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사진 당근마켓 캡처.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값비싼 추석 선물도 부담이다. 티몬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추석 선물을 준비하며 물가 상승을 체감했다’고 답했다. 강모(33)씨는 “예년 같으면 5만원에 샀을 과일 세트 가격이 6만~7만원 정도는 되는 거 같다”며 “온라인 통해 5만원 이하로 인사용 추석 선물을 골랐는데 40만원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중고거래로 이뤄지는 ‘스팸 되팔이’는 명절마다 이뤄지는 연례행사가 됐다. 당근마켓 앱이나 중고나라 사이트에는 '주말에 받은 추석선물 새상품 스팸세트 직거래 가능합니다' '고급멸치세트 팔아요' '샴푸와 바디워시 선물세트 팝니다'와 같은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명절에 회사나 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 가운데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개봉하지 않고 중고로 판매하는 것이다. 햄, 참치, 식용유, 생활용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격대는 주로 3만~10만원대다. 대부분 상품이 온라인 최저가의 40~50% 수준으로 저렴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거래도 활발하다. 중고거래를 자주 하는 직장인 장모(27)씨는 “주변에서 받은 선물세트들을 되팔아서 15만원 정도를 현금화했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은 줄고 지갑이 얇아지면서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소비량이 줄어들면 재고가 늘게 돼 실물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어 “한국은행이 미국처럼 인플레이션 목표치 목표를 잡고 시장에 신호를 줘 기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감)을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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