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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끌고 노숙하며 1900km…펑크·설사도 그를 멈출 수 없다[포토버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고 난이도의 무지원 바이크 패킹 레이스인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해 완주한 박종하 씨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대회 참가시 지참했던 장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세계 최고 난이도의 무지원 바이크 패킹 레이스인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해 완주한 박종하 씨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대회 참가시 지참했던 장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세계 최고 난이도의 자전거 대회가 있다.
서울~부산 거리를 2번 왕복(1863㎞)하고, 에베레스트 높이를 4번(3만5000m) 올라야 한다. 노면 상태도 최악이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는 바윗길과 모래길, 셀 수 없는 크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한다. 해발 4185m까지 오르는 집틱 패스(Jiptick Pass)에선 8시간 이상 끌바(자전거 끌고 걷기)를 해야 하며,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홀로 달려야 한다. 최저 영하 5도~최고 영상 38도의 극단적 일교차를 보이는 날씨에 추위와 더위, 배고픔을 견뎌야 하고, 외로움을 무찔러야 한다. 체력과 장비, 정신력 중 어느 하나만 고장이 나도 완주는 꿈도 꿀 수 없는 무지원 바이크패킹 대회,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이하 SRMR)'다.

키르기스스탄 카잘만(Kazarman)에서 나린(Naryn)으로 가는 오르막 길. 사진 SRMR

키르기스스탄 카잘만(Kazarman)에서 나린(Naryn)으로 가는 오르막 길. 사진 SRMR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루트와 고도표. 거리 1839km에 총 상승고도는 3만5000m에 이른다. 사진 SRMR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루트와 고도표. 거리 1839km에 총 상승고도는 3만5000m에 이른다. 사진 SRMR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고산지대에서 열리는 SRMR은 지난 2018년 시작해 올해로 4회째(2020년 미개최)를 맞고 있다. 올해 SRMR에는 그 악명에 걸맞게 165명의 라이더가 참여해 절반인 83명만 제한 시간 안에 피니시했다. 한국인 최초로 이 대회에 참가해 완주한 박종하(41) 씨를 키르기스스탄에서 귀국한 다음 날 만났다. 박종하의 기록은 13일 1시간 12분(완주 인정 시간은 15일), 전체 참가자 중 55번째(솔로 41위)로 골인했다. 전체 12박 중 숙박시설을 이용한 건 단 3일, 나머지 7일은 황무지에서 야영했고, 이틀은 밤을 새워 달렸다. 진한 구릿빛 피부에 조금은 핼쑥한 얼굴로 나타난 박종하는 "평소 85~90㎏ 나가던 몸무게가 74㎏까지 줄어들었다"며, "고등학생 때 이후 최저 몸무게"라고 말했다. 13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전거로 달린 시간을 그의 몸이 증명하고 있었다.

해발 4185m 집틱 패스(Jiptick Pass)를 오르는 참가자들. 박종하 씨는 8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고 했다. 사진 SRMR

해발 4185m 집틱 패스(Jiptick Pass)를 오르는 참가자들. 박종하 씨는 8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고 했다. 사진 SRMR

대회 준비는 어떻게 했나?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장거리 라이딩 시작해 7000㎞ 정도 라이딩을 했다. 원래는 대회 출전용 자전거에 풀 패킹을 하고 최소 6개월 이상 훈련을 해야 하는데, 시합에 타고 가려던 자전거가 수입되지 않는 바람에 한 달여 남겨두고 지금의 자전거 구입하게 됐다. 패킹하고 테스트 라이딩을 많이 못 한 게 아쉽다. 그러다보니 현지에서 적응 훈련 중에 짐을 좀 덜기도 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참가한 사람이 전혀 없다보니 실전 노하우를 전수받을 길이 없었다.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

박종하 씨가 대회 도중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사진 SRMR

박종하 씨가 대회 도중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사진 SRMR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참가자들의 자전거. 윗줄 왼쪽 첫째가 박종하 씨의 자전거다. 아랫줄 왼쪽에 탠덤(2인승) 바이크가 보인다. 팀으로 출전해 완주했다. 사진 SMRM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참가자들의 자전거. 윗줄 왼쪽 첫째가 박종하 씨의 자전거다. 아랫줄 왼쪽에 탠덤(2인승) 바이크가 보인다. 팀으로 출전해 완주했다. 사진 SMRM

대회에 챙겨간 준비물들이 궁금하다.

알루미늄 프레임 산악자전거에 포크백 2개, 새들백 1개, 패니어 2개, 핸들바백, 프레임백, 물백, 휴대용 정수기, 텐트, 침낭, 에어 메트리스, 버너, 코펠, 경량 패딩, 고어텍스 재킷, 겨울용 장갑, 방수 바지,  GPS 기기, 휴대폰 2개, 위성추적기, 헬멧, 물통, 휴대용 공구, 전조등 3개, 후미등, 건전지, 펌프. 튜브, 튜브 펑크 패치, 체인 커터, 체인 링크, 브레이크 패드, 행어, 스포크, 덕 테이프, 케이블 타이, 비상 의약품(진통제, 소화제, 지사제, 근육이완제), 메디폼, 거즈, 바셀린 등이다. 짐과 자전거를 모두 합친 무게가 25㎏이 넘었다. 사소한 것까지 다 챙겨야 하는 이유는, 그 사소한 것 하나가 없어서 대회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경우 실격처리된다.

자전거를 끌고 고개 정상에 올라 쉬고 있는 박종하 씨. 사진 SRMR

자전거를 끌고 고개 정상에 올라 쉬고 있는 박종하 씨. 사진 SRMR

포기하고 싶었을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했나?

사실 출발하자마자 포기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잘 작동하던 GPS 기기가 먹통이 됐다. GPS 기기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길안내가 안 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대회 기간 중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치는 동료 라이더들이 길찾기에 도움이 됐다. 그들을 따라가기도 하고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을 해가며 달렸다.

계속되는 펑크에 박종하 씨는 경기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박종하

계속되는 펑크에 박종하 씨는 경기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박종하

박종하 씨가 끌고 올라온 자전거를 산 정상에서 던지고 있다. 자전거를 왜 던졌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대회 나가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답했다. 사진 SRMR

박종하 씨가 끌고 올라온 자전거를 산 정상에서 던지고 있다. 자전거를 왜 던졌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대회 나가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답했다. 사진 SRMR

마지막 고비는 1200㎞ 지점에서 시작된 설사. 초원에 있는 유목민의 집에서 얻어먹은 양젖이 원인이었다. 설사가 계속되면서 탈수증상이 심해졌다. 20시간 이상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이동했다. 실제로 바이크패킹 대회에서 설사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 다행히 의사인 참가 선수가 건네준 약을 먹고나서야 설사가 멎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 힘든 바윗길을 한 참가자가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박종하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 힘든 바윗길을 한 참가자가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박종하

야간에 전조등을 켜고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 박종하

야간에 전조등을 켜고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 박종하

'포기는 밤에 하지 말고 다음 날 아침에 하라'는 말이 있다. 어둠과 공포가 사람의 마음을 더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날이 밝고 다시 해가 뜨면 또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포기하고 싶을 때,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친구들의 응원에 다시 힘을 냈다. 그들에겐 내가 희망이었고, 그 희망을 저버릴 순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대회를 왜 나가나? 

이런 대회 참가를 하면 정형화된 여행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지금도 초원에 누워 바라본 별들과 은하수의 장관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에서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세계 최고 난이도의 이 대회를 완주했다는 건, 이제 지구상에 내가 완주하지 못할 대회가 없다는 걸 뜻한다.

선수들은 끝 없이 펼쳐지는 해발 3000m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의 풍경 속을 달린다. 사진 SRMR

선수들은 끝 없이 펼쳐지는 해발 3000m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의 풍경 속을 달린다. 사진 SRMR

대회 기간 12일 중 7일 들판에서 잠을 청했다. 숙박시설 이용은 3일, 나머지 2일은 밤새워 걸었다. 사진 박종하

대회 기간 12일 중 7일 들판에서 잠을 청했다. 숙박시설 이용은 3일, 나머지 2일은 밤새워 걸었다. 사진 박종하

이번 레이스에서 인상에 남는 선수가 있었다면 누구?
이번 대회에 홀로 참가를 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늘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만나는 라이더는 적게는 5명, 많게는 20명 정도 됐다. 비슷한 시간대에 골인한 선수들은 모두 함께 달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그중 경기 후반에 자연스럽게 함께 달리게 된 필리핀에서 온 알딘과 미국에서 온 얀이 기억에 남는다. 얀은 목 통증으로 튜브를 이용해 머리를 고정해가며 정말 고군분투했다. 나중에 자신의 여분 튜브를 건네주기도 했다. 또 초반 이틀 간 황무지에서 함께 야영한 체코의 야콥은 GPS 기기가 없는 나를 위해 가던 길을 멈춰 기다려주기도 했다.

미국에서 온 얀 크리스카는 목 부분 부상으로 튜브를 머리와 어깨에 감아 고정한 채 완주했다. 후반 400km를 박종하 씨와 함께 라이딩 했다. 사진 박종하

미국에서 온 얀 크리스카는 목 부분 부상으로 튜브를 머리와 어깨에 감아 고정한 채 완주했다. 후반 400km를 박종하 씨와 함께 라이딩 했다. 사진 박종하

엄격히 말하자면 SRMR은 레이스다. 선수들은 서로 경쟁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이더들은 어느새 동지가 된다. 자전거가 고장 나면 달려와서 도와주고, 졸릴 때 서로를 깨워가며 함께 나아갔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도와준다. 모두 힘이 들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며 쌓아올린 믿음의 끈이 우리를 피니시라인까지 이끌어준 것 같다.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완주를 증명하는 패치(왼쪽 사진)와 이동 중 콘트롤 포인트에서 인증 도장을 받은 브레베 카드. 사진 박종하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 완주를 증명하는 패치(왼쪽 사진)와 이동 중 콘트롤 포인트에서 인증 도장을 받은 브레베 카드. 사진 박종하

완주 직후의 박종하 씨. 피부 톤의 차이가 극명하다. 사진 박종하

완주 직후의 박종하 씨. 피부 톤의 차이가 극명하다. 사진 박종하

앞으로 계획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외 바이크패킹 대회에 나가보려 한다. 내년엔 스페인에서 열리는 이베리카 트래버사에 출전할 생각이다. 유럽 본토 최남단 지점인 타리파(Tarifa)에서 비스케이 만(Bay of Biscay)의 이루(Irun)까지 1731㎞ 비포장길을 달려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대회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종주하는 '투어 디바이드', 프랑스를 종단하는 '프렌치 디바이드', 유럽을 가로지르는 '트랜스 콘티넨탈', 모로코에서 열리는 '아틀라스 마운틴 레이스'까지 모두 출전하는게 꿈이다.

세계 최고 난이도의 무지원 바이크 패킹 레이스인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해 완주한 박종하 씨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 오르막을 자전거로 오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세계 최고 난이도의 무지원 바이크 패킹 레이스인 2022 실크로드 마운틴 레이스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해 완주한 박종하 씨가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 오르막을 자전거로 오르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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