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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이미 알고 있다…하루 2000L 물 끌어올리는 이 나무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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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삼림욕 하기 좋은 가평 잣향기푸른숲. 전 세계 나무가 토양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데 들이는 에너지가 전세계 수력발전소 발전량과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백종현 기자

삼림욕 하기 좋은 가평 잣향기푸른숲. 전 세계 나무가 토양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데 들이는 에너지가 전세계 수력발전소 발전량과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백종현 기자

지구 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이 토양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 양이 전 세계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성취한 현대 에너지 공학의 업적에 필적할 만한 규모의 에너지 활용법을 식물들이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이미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타 바버라 캠퍼스의 지리학과·생태학과 연구팀은 최근 '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생물지구과학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Biogeo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 세계 나무가 뿌리에서 잎으로 수액을 상승시키는 데 쏟는 에너지가 연간 9.4페타와트시(PWh)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9.4PWh는 9조4000억KWh(킬로와트시)에 해당하며, 이는 전 세계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량(2019년 기준 10.5 PWh)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이언트 세쿼이어 하루 2000L 끌어올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킹스 캐년 국립공원의 레드우드 마운틴 그로브에서 자이언트 세쿼이아가 불에 탄 채 서있다. 키 100m가 넘는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하루에 2000L의 물을 빨아올린다.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킹스 캐년 국립공원의 레드우드 마운틴 그로브에서 자이언트 세쿼이아가 불에 탄 채 서있다. 키 100m가 넘는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하루에 2000L의 물을 빨아올린다.AP=연합뉴스

식물은 살아가기 위해서는 광합성을 해야 하고, 광합성에는 물과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 뿌리에서 물을 흡수해 광합성이 일어나는 잎까지 물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물은 목질부 도관을 통해 수송되는데,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가 들어가는 '수액 상승 펌프'가 필요하다. 이 펌프는 기본적으로 잎의 증산작용을 통해 가동된다.
잎에서 일어나는 수분의 증발 작용인 증산작용은 기본적으로 태양 복사와 장파 복사 등의 에너지에 의해 일어난다. 이에 비해 물을 끌어올리는 힘은 반달세포의 장력과 모세관의 힘, 물 분자 사이의 수소결합 등에서 나온다.

나무가 증산작용을 통해 대기 중으로 뿜어내는 물의 양은 엄청나다. 육지에 떨어진 눈·비의 거의 40%가 식물을 통해 대기로 다시 들어간다.
키가 100m가 넘는 거대한 자이언트 세쿼이어(Sequoiadendron gigantum)의 경우 증산 작용을 위해 매일 2000 L에 이르는 물을 잎으로 보낸다.

연구팀은 전 세계 나무에서 '수액 상승 펌프'에 쏟는 에너지를 계산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종합했다. 먼저 잎의 면적 당 전도도를 파악해야 했는데, 534종의 식물에 대한 전도도 측정값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값을 다양한 종이 섞여 있는 식물 군집에 적용했다. 전 세계 식생지도를 바탕으로 수액 상승 에너지를 계산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산림지역에서는 수액 상승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당 0.06W(와트, 0.15~0.1 W/㎡ 범위)이고, 산림이 없는 초목지역에서는 0.003 W/㎡라고 추산했다.

세계 산림이 수액 상승에 쏟는 에너지는 중간값으로 연간 9.4PWh(9조4000억 kWh)이지만, 최대치로는 연간 140PWh에 이른다. 최대치 기준으로는 인류가 전 세계에서 연간 생산하는 전체 전력량 173PWh(173조 kWh)에 근접한다.

기후에 따라 에너지 소비 달라져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 토소포 지역의 열대우림. AFP=연합뉴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 토소포 지역의 열대우림. AFP=연합뉴스

연구팀은 또 수액 상승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얻는 에너지의 14.2%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산했다. 온대우림에서는 이 비율이 18%로 늘어났다.

연구팀은 "나무의 수액 상응 에너지 확보에서 기후와 식물 생리는 중요한 조절자 역할을 한다"며 "열대 습윤 삼림에서는 증산에 많은 에너지기 들어가지만, 잎이 넓은 상록 활엽수여서 이런 에너지 수요를 완화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온대 우림의 경우는 낮은 일사량과 낮은 온도 등으로 인해 증산이 제한돼 수액 상승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사람의 심장이 뛰는 데는 별도의 대사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식물도 물을 끌어올리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아직 계산에서 불확실성이 상당히 남아있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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