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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초토화됐던 반지하 집..이제 겨우 도배·장판 깔고 안방서 잔다

중앙일보

입력

이번 추석은 지난달 8일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을 휩쓸고 지나간 지 꼭 한 달 만에 찾아왔다. 9월 초 ‘엎친데 덮친격’이 될까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태풍은 수도권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권 이재민들은 타 지역 비 피해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이들은 아직도 수마가 휩쓸고 간 현장에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 사는 신정호(24)씨 집. 침수가 난 지난달 9일 모습(왼)과 이후 한 달 간 장판·도배를 새로 한 모습(오). [사진 신씨 제공]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 사는 신정호(24)씨 집. 침수가 난 지난달 9일 모습(왼)과 이후 한 달 간 장판·도배를 새로 한 모습(오). [사진 신씨 제공]

긴급복구비 200만원으로 방수칠도  

송파구 오금동 반지하 주택에 사는 한창호(62)씨는 폭우로 집이 물에 잠기자 11일간 동네 사우나에서 생활했다. 집에 돌아왔지만 방이 복구가 안돼 20여일은 집 현관에서 텐트 등을 설치하고 잠을 잤다. 다행히 집 수리가 끝나 지난 7일부터는 방에서 이불을 깔고 잘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희망의 집수리’를 통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준 덕분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재난구호기금 120억 원을 긴급 편성해 약 2만 침수가구에 도배·장판 등 비용으로 가구당 최대 120만원까지 줬다.

한씨는 “집이 물에 막 잠겼을 땐 정말 막막했는데 그래도 살 길은 있더라”며 “(집수리 지원 외) 시에서 준 긴급복구비 200만원으로 창문에 방수칠을 하고 가전제품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500만원 지원, 자치구별 ‘수해 트라우마’ 상담도

정부와 지자체는 추석을 앞두고 수해 복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 침수 피해 지원 지원금으로는 ▶긴급복구비 200만원 ▶침수가구 집수리비(최대 120만원) ▶소상공인 긴급복구비 500만원 ▶구호·의연금 등이 있다. 또 풍수해보험 무상가입 대상자를 확대하고 (파손 재산에 한해) 취득세와 자동차세를 감면해준다. 여기다가 현장 복구활동 직접 지원하기도 있다.

특히 서울시는 추석 연휴 전까지 수해를 당한 소상공인 업체 8804곳에 긴급복구비 500만원 씩을 지원했다. 이는 시 긴급복구비 200만원에 추가 지원금 100만원 그리고 중앙정부 지원금 20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피해가 컸던 관악·동작·서초구에 우선 지급한다.

서울 신사 시장 반찬가게 주인 A씨(66)가 지난달 8일 침수 피해 당시 찍어둔 사진.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에 반찬 냉장고가 모두 고장났다. [사진 A씨 제공]

서울 신사 시장 반찬가게 주인 A씨(66)가 지난달 8일 침수 피해 당시 찍어둔 사진.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에 반찬 냉장고가 모두 고장났다. [사진 A씨 제공]

덕분에 소상공인들도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A씨(66)는 지난달 주민센터를 찾아 6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봤다고 신고했다. 가게에 물이 허벅지까지 들어차는 바람에 반찬을 넣어뒀던 냉동고·김치냉장고가 모두 고장 났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장만한 쇠고기 등 50~100만원 어치도 모두 폐기 처분했다. 다행히 지난 5일 지자체에서 복구비 500만원을 받았는데 “냉장고를 고치고 추석 전 반찬 재료를 사는 데 쓸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 각 자치구도 지원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침수 피해가 가장 심했던 관악구는 지난 5~6일 ‘현장종합상담센터’를 가동하고 수해 주민을 직접 찾아가 각종 재난지원 내용과 신청 방법 등을 안내했다. 수해 트라우마를 겪는 이재민에겐 관악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재난심리회복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동작구는 집중호우로 옹벽이 무너져 피해를 본 사당동 극동아파트 주민에 가구 당 재난지원금 5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금천구는 피해 지역인 금하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감진과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금천구는 집중호우 피해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에게 ‘서울시한의사회’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진 금천구]

금천구는 집중호우 피해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에게 ‘서울시한의사회’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진 금천구]

여전히 남아있는 수해 상처

그러나 각 지자체의 총력전에도 일상생활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다. A씨는 추석이 다가오지만 아직 복구가 덜 된 집에서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을 위해 제사상 차리기가 마땅치 않다.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 거주하는 신정호(24)씨 가족은 도배·장판·가구 등을 간신히 새로 했지만 개당 50만원인 방문은 아직 달지 못했다. 신씨는 “가을로 접어들어 밤에는 싸늘한데 걱정”이라고 했다.

집중 호우로 인한 상처는 침수 피해를 당하지 않은 일반 시민에게도 남아있다. 강남 일대 지하철역 에스켈레이터·엘레베이터 중 일부는 한 달째 공사 중이다. 교체가 되려면 10월~11월 말까지는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그 사이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난지 모르고 길을 들어섰다 계단을 겨우 올라가며 숨을 고르는 노인도 많다. 역무원은 하루에도 “10번씩 민원 전화를 받고 있다”며 “우리도 얼른 교체해 정상 가동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6일 운행 중지 상태인 서울 한 지하철 역내 에스컬레이터. 장세정 기자

지난 6일 운행 중지 상태인 서울 한 지하철 역내 에스컬레이터. 장세정 기자

집중 호우 당시 역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엔진’에 해당하는 부품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건조 후 작동하면 그대로 쓸 수 있겠지만 아예 공사를 새로 해야 하는 것도 있다. 게다가 이수역·동작역·고속터미널역 등 일대 여러 지하철역 승강기가 한꺼번에 침수됐다 보니 공사 일정도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로 280개 역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봤다”며 “추석을 앞두고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지하철을 상시 운영하며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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