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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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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K명절이 부활했다. 명절에 빠지지 않는 게 명절음식이다. 추석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건 2000년도 더 된 풍습이다. 고대사회부터 풍농제(豊農祭)를 지냈고, 삼국사기에 신라 3대 왕인 유리왕 때 술과 음식을 마련해 가을 길쌈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명절음식은 전 세계 공통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이 송편을 만들듯 중국은 월병을, 일본은 당고(団子)를, 미국에서는 칠면조구이와 호박파이를 만들어 추수감사절을 기념한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명절음식이 불필요·불합리·불공평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적잖다. 설·추석마다 귀경객들이 버리고 간 명절음식 쓰레기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들이 몸살을 앓는 게 대표적 단면이다. 이 기괴한 풍경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을 싸주니 받아오긴 하는데 어차피 먹지 않으니 빨리 버린다”는 이기주의, 그리고 “피곤한 명절 끝에 시댁(혹은 처가)에서 준 음식이 싫어 무조건 버린다”는 감정주의의 결합이다. 이번 추석에도 버려진 명절음식들이 인류 최대 과제인 탄소중립을 곳곳에서 해칠 것이다.

지난 5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간소화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한 건 그래서 더 의미 있다.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나물·구이(적·炙)·김치·과일·술 등 여섯 가지며, 여기에 더 올린다면 육류·생선·떡을 놓을 수 있다.” 국내 유교문화 최고 기관이라는 성균관이 명절 노동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전 등 기름에 지진 음식을 차례상 요소에서 제외했다. 지난 7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반 국민(1000명)의 40.7%, 유림 관계자(700명)의 41.8%가 ‘간소화’를 차례상 최대 개선점으로 꼽은 결과다. 성균관 측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며 “이번 표준안 발표가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세대갈등을 해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명절이 2020년 설 이후 2년8개월 만이다. 그간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아팠고,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명절증후군’과 ‘남녀차별’ 같은 해묵은 논쟁에서 자유로운 추석을 기대해 본다. K명절이 시대와 세계를 선도하면 그 또한 자랑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