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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업체 암흑기였던 90년대…10년 전 시행착오의 보복이었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국내ㆍ외적으로 한국의 방산수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CNN은 한국의 방산수출이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고 표현했다. 최근 폴란드를 포함한 대규모 수출계약을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수출 1차분 본계약이 체결된 K2 전차와 K9. 자주포. 폴란드 국기와 합성한 이미지. 폴란드 국방부 트위터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수출 1차분 본계약이 체결된 K2 전차와 K9. 자주포. 폴란드 국기와 합성한 이미지. 폴란드 국방부 트위터

이러한 성과의 진정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투자’와 ‘성과’ 사이에 ‘약 10년’이라는 간격(Lead Time)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결과가 없듯이 축적이 없는 도약도 없다.

1970년대, 담대한 도전

60년대 말까지, 한국은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해 왔다. 70년대 초, 한국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70년)하고 기본 병기의 국산화(71년)에 나섰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당시 여건에서 국방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독자적인 군사력 건설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웠다.

1972년 4월 3일 국산병기 시험발사 행사에서 시제품을 살펴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번째). 정부기록사진집

1972년 4월 3일 국산병기 시험발사 행사에서 시제품을 살펴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번째). 정부기록사진집

하지만, 2가지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결단이었다. 첫째, 군사력 건설의 출발점을 국방과학기술로 잡은 것이다. 방위산업과 연계된 중화학공업 육성을 경제정책으로 병행 추진한 것도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발휘했다.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은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이다. 둘째, 국방비의 3.2%(70년대 후반기 연평균)를 연구개발에 투입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원조달이 불가능했다. ‘방위세(75~90년)’라는 특단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80~90년대, 시행착오와 정체

80년대에 들어서자 방산수출이 연평균 약 1억 달러를 넘어섰다. 83년에는 3억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방산 업체의 가동률도 약 60~70% 수준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점은 내재해 있었다. 국방비 중에서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의 비중이 연평균 2.3%까지 저하한 것이다. 80년대의 작은 성과는 70년대의 과감한 투자가 10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효과였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7년 9월 18일 육군 승진 사격장에서 열린 88전차 명명식. 이날 88전차(K1 전차)는 연막 속에서도 고속기동을 하면서 표적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KTV 유튜브 캡처

1987년 9월 18일 육군 승진 사격장에서 열린 88전차 명명식. 이날 88전차(K1 전차)는 연막 속에서도 고속기동을 하면서 표적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KTV 유튜브 캡처

90년대엔 80년대 시행착오의 보복이 시작됐다. 방산수출은 연평균 7000만 달러 수준으로 급락했고, 방산 업체의 가동률도 약 50%대로 떨어졌다. 방위산업에 대한 위기론이 대두했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신호는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이 연평균 약 3~4% 수준으로 완만하게나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정도가 약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2000~2010년대, 도약을 위한 축적

2000년대 방산수출은 연평균 1억~2억 달러, 방산 업체의 가동률은 약 50%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회복세라고 보기 어려웠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2006년에 시작한 국방개혁이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에 추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특히,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국방비 대비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약 10%까지 점진적으로 증액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000년대 후반,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까지 늘어났다.

2001년 10월 31일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열린 T-50 골든이글 훈련기 출고 기념식. 국가기록사진

2001년 10월 31일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열린 T-50 골든이글 훈련기 출고 기념식. 국가기록사진

2010년대는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의 성장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시기였다. 방산수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세 보다는 약 10억~30억 달러 사이를 오르내리며 등락을 반복했다. 방산 업체의 가동률은 약 60~70%로서 제조업 평균에 근접했으나, 이윤이 제조업 평균의 약 2분의1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히, 국방비에서 연구개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7%까지 상승하면서 본격적인 도약을 위한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었다.

2020년대,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 필요  

방위산업진흥회에 의하면(계약기준), 2021년 수출액은 약 75억 달러이고, 2022년은 약 15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에서도 ‘방산수출 4대 강국 진입’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비전은 2000년대부터 본격화된 국방 연구개발에 대한 예산 확대가 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 통계에 의하면, 세계 방산시장(2017~2021년)에서 한국은 8위로서 2.8%를 점유하고 있다. 1위 미국이 38.6%, 2위 러시아가 18.6%, 3위 프랑스가 10.7%이고, 4~8위까지 국가들이 2~5% 수준의 점유 비율을 보인다. 한국이 점유 비율을 5%까지 끌어올린다면 중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영국 등을 제치고 4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177%에 달하는 높은 방산수출 증가율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2015~21년 국방과학기술 수준 변동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2015~21년 국방과학기술 수준 변동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하지만 ‘도달’하는 것보다 ‘안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안착은 ‘지속성’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국방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및 방산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평가한 한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기준, 미국을 ‘100’으로 가정했을 경우 한국은 ‘79’로서 세계 9위로 평가되었다. 2008년의 세계 11위에서 2015년까지 9위로 2계단 상승한 다음, 이후 현재까지 순위가 정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방산수출이 세계 4위로 상승한다면, 국방과학기술의 수준도 최소한 그와 대등한 수준이 돼야 한다. 국방과학기술이 방위산업과 방산수출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지속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국방비 대비 연구개발 예산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약 10%(2021년 기준, 미국은 15%)까지 더욱 높여야 한다.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방위산업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의 약 15% 수준에서 약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방위산업에서 강소기업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첨단 무기체계의 부품 국산화 비율도 한층 더 높일 필요가 있다.

2015~21년 무기체계별 기술수준ㆍ순위 변화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2015~21년 무기체계별 기술수준ㆍ순위 변화 추이.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방산수출의 성장을 여객기의 비행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가 순항고도를 목표로 엔진 출력을 급격히 올리면서 상승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순항 고도에 안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몇 년 사이에 결정될 것이다. 향후 3~5년의 기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금의 노력은 5~10년 후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다 멀리 보면서 국방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및 방산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할 수 있도록 진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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