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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만에 발꿈치가 땅에 닿았다…'까치발 소녀' 코리안 미라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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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흐닌프윈에이는 태어날 때부터 양발의 아킬레스건 힘줄과 혈관이 짧았다. 자라면서 발의 앞쪽과 뒤꿈치가 안쪽으로 휘어졌고 발목 관절은 발바닥 쪽으로 굽었다고 한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흐닌프윈에이는 태어날 때부터 양발의 아킬레스건 힘줄과 혈관이 짧았다. 자라면서 발의 앞쪽과 뒤꿈치가 안쪽으로 휘어졌고 발목 관절은 발바닥 쪽으로 굽었다고 한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애가 눈을 찡그린 채 까치발로 총총 걷는데…”

국제구호단체 멘토리스 재단 활동가인 김영미(56)씨는 지난 4월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미얀마 양곤에서 직업훈련을 해 온 한국인 선교사 정지훈씨였다.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과 영상 속 여성은 양쪽 발을 치켜든 채 힘겹게 걷고 있었다. 정씨는 “지역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인데 선천적으로 발 장애가 있어 제대로 걷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름은 흐닌프윈에이(22). 미얀마어로 겨울 추위를 이기고 핀 꽃인 설강화란 뜻이다. 1999년 3월 이례적으로 거센 눈발이 흩날리던 날 태어난 아이에게 ‘추위와 같은 역경을 이기고 잘 자라달라’는 바람에서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흐닌프윈에이는 태어날 때부터 양발의 아킬레스건 힘줄과 혈관이 짧았다. 자라면서 발의 앞쪽과 뒤꿈치가 안쪽으로 휘어졌고 발목 관절은 발바닥 쪽으로 굽었다.

까치 발을 들어야만 간신히 서서 걸을 수 있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과 부모의 무관심 속에 병원 진료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가 사는 미얀마 예토(Yay Toe)는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오지였다. 어릴 적 음식을 잘 못 먹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막냇동생이 의료진의 손길이 닿기 전에 세상을 뜬 아픔도 있었다. 선천성 첨내반족으로 인한 고통에 도움이 되는 건 ‘굽 높은 신발’뿐이었다.

흐닌프윈에이는 미얀마 예토에서 태어나 부모님 오빠, 언니와 함께 자라왔다. 사진 흐닌프윈에이

흐닌프윈에이는 미얀마 예토에서 태어나 부모님 오빠, 언니와 함께 자라왔다. 사진 흐닌프윈에이

선교사와 병원이 내민 도움의 손길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라는 그는 장애 때문에 교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등교는 빼먹지 않았다. 그러나 꿈은 갈수록 멀어져갔다. 직업훈련을 알아보던 중 흐닌프윈에이의 사정은 정 선교사의 귀에 전달됐다. “흐닌프윈에이의 꿈을 찾아주고 싶었다”는 정 선교사는 한국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얻을 곳을 수소문했다. 정 선교사의 요청에 김영미씨가 나섰고 서울의 선한목자병원이 수술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형외과 전문인 이 병원은 2009년부터 미얀마를 찾아 의료봉사를 해왔다.

흐닌프윈에이의 한국행은 순탄치 않았다. 군부 쿠데타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비자발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길 3개월, 간신히 90일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의료관광(C-3-3)비자가 나왔다. 멘토리스 재단이 비행기 값과 체류하는 데 드는 800여만원을 후원하기로 하고 굳셰퍼드재단이 수병원비 약 2500만원을 후원하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한국행이 성사됐다.

수술 성공으로 되찾은 꿈

이창우 병원장은 지난달 4일 3시간에 걸쳐 흐닌프윈에이의 양발을 수술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이창우 병원장은 지난달 4일 3시간에 걸쳐 흐닌프윈에이의 양발을 수술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지난달 3일 이창우 병원장은 흐닌프윈에이를 검사한 뒤 다음날 바로 수술하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재활 기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다. 다음날 이 병원장의 집도하에 3시간에 걸친 피부를 열고 아킬레스건을 10㎝ 이상 늘리는 수술이 진행됐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못 걷게 될 수 있는 수술이라 의료진은 평소보다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마취에선 깨어난 흐닌프윈에이는 “이젠 새처럼 걷지 않아도 되겠다”며 웃었다고 한다.

흐닌프윈에이는 지난달 4일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흐닌프윈에이는 지난달 4일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굳셰퍼드 재단은 지난 2일 흐닌프윈에이에게 검은색 구두와 인형을 선물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갖게 된 낮은 굽 구두에 흐닌프윈에이는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 병원장은 “흐닌프윈에이가 20년 넘게 버림받으면서 움츠러든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다”며 “아직 통증이 남아있지만, 순조롭게 재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흐닌프윈에이는 틈틈이 한국어책을 읽으면서 한국말도 익히고 있다고. 그는 지난 5일 통역을 통해 기자에게 “한국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감사한 곳이다. 발이 다 낫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그 은혜에 보답하러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김정신 굳셰퍼드재단 이사장은 흐닌프윈에이에게 검은색 구두를 선물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지난 2일 김정신 굳셰퍼드재단 이사장은 흐닌프윈에이에게 검은색 구두를 선물했다. 사진 굳셰퍼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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