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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미술시장 ‘서울의 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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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프리즈 서울 2022가 남긴 것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

지난 2~5일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렸다. 2003년 영국의 아트 매거진 ‘프리즈(FRIEZE)’의 편집장 2명이 런던의 갤러리들과 연합해 시작한 이래, 프리즈는 아트 바젤(스위스)·피악(프랑스)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부상했다. 아트페어는 작품을 파는 화랑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큰 장터다. 하지만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우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통해 참가 화랑을 선정한다. 적어도 5년 이상의 꾸준한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신청이라도 할 수 있고, 작품을 판매한 실적보다는 자국의 작가들을 얼마나 후원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이 아주 중요한 선정 지표가 된다.

서울, 아시아 미술계 허브 가능성
딜러·콜렉터 부각, 작가는 안 보여
서울의 독창성 부각할 현장 부재
새로운 담론 보여줄 전시 기획해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미술장터 ‘프리즈 서울’엔 7만여명의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 관람객이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참가한 영국의 R+V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67년 작품 ‘화가’를 감상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미술장터 ‘프리즈 서울’엔 7만여명의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 관람객이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참가한 영국의 R+V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67년 작품 ‘화가’를 감상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아트페어는 1970년에 시작한 아트바젤이다. 유럽의 중립국가인 스위스는 예전부터 세금도 없고, 무기명 계좌를 가질 수 있는 은행과 금고가 있었기에, 아주 작은 도시인 바젤은 미술품·시계·보석 등을 전시·거래하는 마이스(MICE)사업의 중요한 장이 됐다. 스위스 상권의 핵심인 취리히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 작은 도시가 만들어낸 ‘아트 바젤’ 이라는 페어 브랜드는 2013년 아트바젤 홍콩을 개관하면서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아트바젤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글로벌 미술시장(65억달러, 9조원)의 30%가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차지했다.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할 만큼 아시아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글로벌 아시아 미술시장이 홍콩을 통해 문을 연 지 꼭 10년여만인 올해 그 주도권에 출사표를 던지듯, 새롭게 ‘서울’이 아시아의 미술계 허브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미술계 거물급 인사 서울 찾아

갤러리 P21은 1993년생 한국 작가 류성실의 솔로 전시를 선보였다. 미디어쇼를 통해 실제-허구, 예술-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사진 갤러리 P21]

갤러리 P21은 1993년생 한국 작가 류성실의 솔로 전시를 선보였다. 미디어쇼를 통해 실제-허구, 예술-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사진 갤러리 P21]

프리즈도 지난 20년간 영역을 확장해 왔다. 프리즈 뉴욕(2012년), 프리즈 LA(2019년)에 이어 아시아 시장의 전략적 장소로 서울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서울에 글로벌 미술시장이 왔다. 최근 한국의 부상은 놀랍다. 코로나 와중에도 전면적인 록 다운을 하지 않았던 한국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국제적인 시각에서 더욱 힙한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까지 광주 국제 비엔날레, 부산 영화제 등을 통해 세계 문화 예술계의 VIP가 서울을 방문했지만, 이번엔 글로벌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세계적인 딜러들과 콜렉터들이 서울을 찾았다. 데미안 허스트를 스타 반열에 올린 화이트 큐브의 제이 조플링, 요셉 보이스와 함께 일하면서 잘츠부르크에서 시작한 타데우스 로팍,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파트너인 크리스토퍼 다멜리아, 홍콩 가고시안 대표 닉 시무노빅, 홍콩 크리스티 출신(15년 경력)으로 최근 부임한 하우저앤워스 갤러리 일레인 곽 같은 갤러리스트 등이 직접 참가하여 작품 설명에 나섰다. 지난 20년간 프리즈를 후원해온 도이치 뱅크의 살만 부회장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10여명의 중요한 콜렉터들과 함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찾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스위스 최고의 미술재단인 루마 콜렉션의 마야 호프만, 중국 K11미술관 설립자 아드리안 쳉 회장, LVMH 아르노 회장의 아들 등이 서울을 찾았다.

한국의 호스트 역할도 놀라웠다. 미술계뿐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로 큰 몫을 했다. 프리즈 기간중 150여개의 파티와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프리즈 위크(8월 29일~9월 4일) 일주일간 서울은 뜨거운 환영 파티의 연속이었다. 모두들 한국의 활발한 도시성, 음식, 패션 문화에 감탄을 빼놓지 않았다. 서울에 미술시장의 새봄이 활짝 열린 것이다. (프리즈 서울은 2026년까지 5년간 열린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성 부재 아쉬워

갤러리 바톤이 내놓은 송번수 작가의 ‘Possibility 022-II’. [사진 갤러리 바톤]

갤러리 바톤이 내놓은 송번수 작가의 ‘Possibility 022-II’. [사진 갤러리 바톤]

프리즈 서울이 한국의 국제 아트페어인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와 동시에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기대를 모았다. 바젤 아트페어보다 더욱 ‘동시대성(contemporary)’정신에 입각한 매우 실험적인 정신의 ‘현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추구한 것이 영국의 ‘프리즈’ 였다. 그렇기에 한국의 로컬 페어와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인가도 중요한 성공 지표일 수 있어서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상태에서 비판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한국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현장이 너무나도 빈약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글로벌한 프로젝트가 열리는데, 구태의연하게 예전처럼 한국 미술을 알리는 어떤 계기점으로 만들겠다든지, 아니면 한국 작가 전시를 하나 더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해외에서 온 게스트들이 프리즈 서울에 와서 그들의 무대에서 보지 못한 서울만의, 새로운 독창적인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나올 것 같다. 이 게스트들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다. 아주 첨예한 현대미술의 이해 안 되는 언어도 열심히 보겠다고 온 미술계 인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이들의 갈망과 요구에 맞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응대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 현장성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다.

미술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꼭 작품을 사고 파는 화랑과 콜렉터만의 축제가 아니다. 미술관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구매력을 가진 고객이기에, 당연히 미술관 관장·큐레이터들이 온다. 비평가들도 작가들의 신작을 보러 올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에 중요한 주인공으로 나타나야 할 중요한 주체 중 하나가 당연히 한국미술 작가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들의 작품은 팔리는 데, 정작 그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작가들이 16만원(프리뷰 포함 가격)짜리 티켓을 사서 이런 미술장터를 가게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들 작가들이 화랑을 기웃거리며 VIP 티켓을 부탁해야 하는 건 매우 슬픈 일인 것 같다.

미술관에 작가가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다시 말해, 다양한 공공 프로그램들이 좀더 강화되어야 한다. 작가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동시대 작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를 만들고, 판매와는 직접 상관없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들이 병행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국·공립 미술관, 적극적 후원자 역할하길

악셀베르보르트 갤러리는 중견 서양화가이자 설치 미술가인 김수자의 작품을 키아프(KIAF)에 출품했다.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악셀베르보르트 갤러리는 중견 서양화가이자 설치 미술가인 김수자의 작품을 키아프(KIAF)에 출품했다.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프리즈 서울을 통해 얻은 수확 중 하나는 한국 작가를 세계에 소개하는 일을 해외 갤러리스트들이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한국 작가들을 발굴, 소개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를 만들고 만남의 장을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국이 다른 아시아 도시들에 비해 월등히 인정받는 것은 좋은 국·공립 및 사립 미술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미술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월등한 한국 미술의 유통 에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프리즈도 서울을 찾은 것이리라. 따라서 국·공립 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상설관이나 티켓을 사서 볼 수 있는 전시 환경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한국 미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담론을 주도해가는데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는 길이다.

이제 2023년을 준비하자. 미술관들도 내년에 다시 찾을 그들에게 과연 우리는 어떤 전시로 새로운 담론을 보여 줄 수 있을까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축제기간에 보여준 리움 미술관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소 보수적일 것 같았던 리움미술관 로비에서 열린 파티는 일품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롭게 단장한 콜렉션 전시가 많이 회자됐다. 또한 이건용 작가의 퍼포먼스와 송은 작가상을 받은 젊은 한국 작가들의 전시로 시작한 송은 아트센터와 그 주차장 파티 또한 좋은 예다.

마지막으로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는 내용은, 서울이 글로벌 아시아 시장의 중추 역할에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해외 인사들이 느끼게됐다는 점이다. 프리즈가 들어와서 키아프나 한국시장이 너무 해외 미술품시장으로만 커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기우였다고 생각할 만큼, 한국 작가들에 대한 일반인들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아시아의 시장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진취적인 힘은 한국에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중견을 넘어가고 있는 좋은 작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술시장의 핵심은 결국 작가와 작품이다. 한국이 갖고 있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을 더욱 성장시키고 함께 키워나가야 할 것 같다.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