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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과 장제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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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허진 정치팀 기자

“나는 후보 텔레그램 계정의 녹색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안 잤고, 새벽 한 시든 두 시든 전화를 받았다.”

3·9 대선 기간 ‘윤핵관’ 핵심 장제원 의원에게 들은 말이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텔레그램 메신저에 접속한 상태면 녹색불이 켜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해석하면 ‘윤석열 후보가 잠들기 전에 먼저 자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 의원이 당선인 비서실장일 때는 이른 아침마다 기자들이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대한민국 중요 이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대체로 막힘없이 대답하곤 했다. 그의 말마따나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어린 기자들은 고생깨나 했다.

지난 7월 15일 국민의힘 권성동(오른쪽)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오찬 회동을 한 뒤 취재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15일 국민의힘 권성동(오른쪽)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오찬 회동을 한 뒤 취재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결과도 다시 짚어보자. 당시 홍준표 후보가 국민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이기고도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22%포인트 넘게 지면서 윤 대통령이 최종 후보가 됐다. ‘윤석열’이란 상품이 좋았지만 윤핵관 그룹의 ‘유통’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3·9 대선 뒤 곧바로 이어진 6·1 지방선거 때문에 국민의힘 공천을 노린 전국의 수많은 예비 후보군이 지인들을 적극 설득한 게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잿밥을 노렸든 아니든 개인의 욕구를 엮어 표로 만들어낸 게 조직력이고, 이런 성과 뒤에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같은 윤핵관이 있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윤핵관은 때로는 억울해도 참았다. 인수위 시절 여야가 ‘검수완박’에 합의한 뒤 이를 물리는 과정에서 비판 세례는 권 원내대표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여권에선 “온전히 권 원내대표 탓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윤핵관이 정을 맞는 결정적 계기가 된 ‘이준석 사태’도 “과연 윤핵관만의 뜻이었겠느냐”는 시선이 상당하다.

“윤핵관은 무죄”라고 비호하자는 게 아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이 기이한 여권의 사달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다면 가장 적합한 대상이 윤핵관이다. 제왕무치(帝王無恥)이니 더욱 그렇다. 윤핵관이 무슨 잘못을 했고,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꾸짖는 글은 숱하게 쏟아졌으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핵심 참모진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자리보전을 했을 뿐 아니라 윤핵관을 밀어내는 배후에 그들이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들의 실력을 보여줄 차례다. 모두가 아는, 그러나 대통령실은 못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 주변의 리스크 관리와 경제 살리기가 당면 과제다. 실력을 못 보여주면 윤핵관보다 더 큰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적어도 윤핵관은 국민 앞에 얼굴을 내밀고 두드려 맞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