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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억’ 가거도 수퍼 방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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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볼라벤, 무이파, 힌남노… 이젠 태풍 이름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납니다.”

지난 6일 오후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 사는 박재원(58) 이장의 말이다. 그는 “태풍 힌남노가 북상한 5일을 포함해 꼬박 사흘 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가거도는 2011년 무이파와 2012년 볼라벤 등 태풍 때마다 큰 피해를 본 곳이다. 박 이장은 “역대급 태풍이 온다는 말에 완공이 코앞인 ‘수퍼 방파제’가 또 날아갈까 봐 가슴 졸였다”고 했다.

그가 언급한 수퍼 방파제란 가거도 앞에 건설 중인 길이 480m, 넓이 100m의 방파제를 말한다. 1978년 착공 후 2008년 5월 완공까지 숱한 피해를 봤던 방파제를 증축하는 형태다. 가거도 방파제는 착공 후 셀마(87년), 프라피룬(2000년), 라마순(2002년) 때 공사 현장이 번번이 쑥대밭이 됐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 건설 중인 ‘수퍼 방파제’ 조감도. [연합뉴스]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 건설 중인 ‘수퍼 방파제’ 조감도. [연합뉴스]

완공된 방파제도 태풍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태풍 무이파(2011년)에 이어 볼라벤(2012년) 때 또다시 파손됐다. 당시 주민들은 해상 교통편은 물론이고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등이 모두 끊겨 고립되기도 했다. 전남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 떨어진 가거도에는 주민 413명이 살고 있다.

결국 정부는 수퍼 방파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존 방파제 위에 ‘100년 빈도’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을 덮는 사업이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강력한 태풍을 막는 데 사업비 2329억원이 책정됐다.

주민들은 기대감과 회의감을 동시에 나타내는 분위기다. 44년 전 착공한 방파제가 태풍 때마다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본 탓이다. 반면 “볼라벤 후 설치된 1만톤급 초대형 케이슨(caisson·콘크리트 박스) 등이 최근 태풍 때 효과를 내고 있다”는 기대감도 높다.

일각에선 방파제 건설이 혈세를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민 400여 명을 위해 수천억을 쓰는 게 맞느냐”는 주장이다. 앞서 2008년 5월 완공된 기존 방파제 건설에는 1325억원이 투입된 바 있다.

정부나 전문가들은 “가거도는 단순한 섬이 아닌,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곳”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인 가거도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요충지라는 것이다. 옛부터 가거도는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도 가거도 해역은 중국의 불법 어선과 해경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 때 어선의 긴급대피 및 동중국해를 오가는 어선의 보급기지 역할도 한다.

가거도는 매번 태풍 진로의 한복판에 있어 ‘대한민국 핫코너(Hot Corner)’라고 불리곤 한다. 핫코너는 강한 타구가 많이 날아가는 3루 구간을 말하는 야구용어다. 가거도 수퍼 방파제가 핫코너를 수비할 강력한 3루수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