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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도 살아야” 중2 아들 먼저 내보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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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엄마 따라 들어간 지하주차장에서 중학생 아들은 끝내 살아나오지 못했다. 70대 노모를 모시던 50대 아들도, 손주 바보였던 노부부도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퍼부은 물폭탄으로 벌어진 비극이다.

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경북 포항시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현장에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6일 새벽 차량 이동을 위해 주차장에 들어갔던 주민들이다. 이 중에는 6일 밤 실종 14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생존자 A씨(52·여)의 아들 B군(15·중2)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엄마와 함께 차를 대피시키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실종된 B군은 7일 0시35분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망자 7명의 빈소가 마련된 포항시 북구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는 갑작스러운 재해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과 조문객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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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의 아버지는 “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어깨와 몸이 좀 불편한 아내가 ‘나는 더 이상 안 된다. 너라도 살아야 한다’고 아들을 먼저 내보냈다더라”며 “나가면 살 가능성이 있다고 먼저 보낸 것 같은데 물이 쏟아져 들어오니 아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B군은 엄마와 주차장에서 헤어지면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70대 노모 모시던 50대 아들도, 손주바보 노부부도 참변

폭우에 침수돼 7명이 숨진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천장 일부 공간은 흙탕물 등이 닿지 않은 상태였다. 생존자들의 대피 공간이 된 ‘에어포켓’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폭우에 침수돼 7명이 숨진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천장 일부 공간은 흙탕물 등이 닿지 않은 상태였다. 생존자들의 대피 공간이 된 ‘에어포켓’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B군의 아버지는 “아내가 (아들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이날 낮부터 B군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친구들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도 엄마가 가자고 하면 약속을 깨고 갔을 정도로 어머니를 잘 따랐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C군은 “(B군이) 엄마랑 차 타고 드라이브도 가고, 엄마랑 찰싹 붙어 다녔다”며 말했다. A씨가 다니는 교회 관계자는 “막내아들인 B군은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72세 노모를 모시고 살다가 사고를 당한 D씨(52) 유족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숨죽여 울었다. D씨는 1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72)와 함께 침수 사고가 난 아파트에서 살았다.

D씨의 동생 E씨(45)는 “어제 새벽 비가 많이 와서 서너 번씩 어머니가 괜찮으신지 물어봤다”며 “오전 7시쯤 어머니한테서 ‘형이 차를 가지러 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아파트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E씨는 “아파트에 도착해 주차장 입구를 보니 이미 물이 가득 차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며 “어머니가 형 소식을 듣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실 정도로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D씨는 199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이후 대학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지게차 운전을 하는 F씨(72)와 그의 아내(65)도 지난 6일 각각 자신의 차량을 옮기기 위해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가 변을 당했다. 유족들은 F씨 부부에 대해 “모두 건강했고,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다. F씨의 여동생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조카들이 큰 슬픔에 빠져 있다”며 “오빠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고 보탬이 되고 싶어 고령인데도 회사에 취업해 지게차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F씨는 70년대 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동생은 “오빠가 당시 월급 대부분을 부모님께 보내면 학비나 생활비로 썼다”며 “딸 바보, 손주 바보였던 오빠가 평생 헌신만 하다 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F씨 부부는 2주 전 추석 명절을 맞아 가족들과 벌초를 했다. F씨의 아내가 가족 단체 채팅방에 지난 5일 오후 5시26분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건강하게 잘들 보내십시오. 건강·태풍·조심·안전이 최고입니다”였다.

이번 참사로 어머니(54)를 잃은 G씨(32)는 “사고 현장에 있었던 아버지(58)가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자책하고 계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당시 G씨 어머니는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나간 뒤 태풍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G씨 아버지는 곧장 뒤따라갔지만, 이미 아내는 주차장에 들어간 뒤였다. 간발의 차이였다. G씨는 “지하주차장 입구로 물이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물살이 너무 세서 (엄마가) 다른 출구도 찾지 못하시고 휩쓸려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전날부터 이틀간 군·해경과 함께 여덟 차례에 걸쳐 지하주차장 수색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차장 안에 있던 자동차 66대 내부를 모두 확인했고, 실종자 9명 중 2명은 생존 상태로 구조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7일 오후 6시 현재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포항을 비롯한 전국에서 사망 11명, 실종 1명, 부상 3명 등의 인명 피해가 났다고 잠정 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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