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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감싸되 극우 색채 뺐다…스웨덴 제2당 노리는 43세 당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편적 복지’의 보루인 북유럽 국가 스웨덴에 네오 나치에 뿌리를 둔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SD)이 오는 11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원내 2위에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럽 매체들은 “스웨덴의 극우 정당이 우파와 손잡고 집권을 노리고 있다”며 “북유럽 국가에서 이전에 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는 11일 스웨덴 총선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선거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는 11일 스웨덴 총선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선거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극우 스웨덴민주당, 사민당 위협

스웨덴의 대표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칸타르 시포(Kantar Sifo)가 지난 2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웨덴민주당은 20% 지지를 얻어 집권 여당인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사민당, 지지율 29%)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사민당은 1914년 이후 제1당을 놓친 적이 없고, 지난 100년 중 75년을 집권해온 최대 정당이라 스웨덴 총선은 사실상 2위 싸움이다. 그런데 사민당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원내 2위를 지켜온 중도우파 성향의 온건당(16.8%)을 스웨덴민주당이 3위로 눌러버리고 있다.

스웨덴민주당은 1988년 네오 나치주의 극우단체와 반(反) 외국인주의를 내세운 포퓰리즘 진보당이 합당한 단체로, 당시 지지율 1%대의 비주류 정당이었다. 2010년 첫 원내 입성에 성공한 뒤 2014년 총선에서 제3당(49석·12.5%)으로 약진하더니 2018년 총선 때는 62석(17.5%)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올해 총선을 앞둔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정당의 대표인 온건당을 앞지르며 사민당을 위협하는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스웨덴 의회는 원내 8개 당이 난립해있지만, 크게 진보와 보수·극우로 대별된다. 진보 진영 맹주인 사민당을 필두로 한 좌파연합(좌파당·녹색당·중도당), 보수의 대표격인 온건당 중심의 우파연합(자유당·기민당)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스웨덴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번 선거에선 현 총리인 막달레나 안데르손(55) 사민당 대표가 좌파연합 후보로, 울프 크리스테르손(59) 온건당 대표가 우파연합 후보로 맞붙었다.

스웨덴 총리이자 사민당 대표인 막달레나 안데르손이 지난 5일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통신

스웨덴 총리이자 사민당 대표인 막달레나 안데르손이 지난 5일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통신

우파연합과 손잡고 집권 가능성도

극우인 스웨덴민주당은 2014년부터 원내 3당으로 무시못할 존재감을 보였지만, 사민당과 온건당 중심의 연립정부에는 한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좌우 연합 중 어느 쪽이라도 스웨덴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손쉽게 과반을 넘어 집권할 수 있는 구도인데, 양쪽 모두 극우정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지난 2018년 총선이 끝난 뒤엔 스웨덴민주당을 배제하기 위해 연정 구성이 넉달 이상 늦어지기도 했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좌파연합 소속 정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49%인데 반해, 우파연합은 30%가 채 안된다. 하지만 우파연합이 20% 지지율을 확보한 스웨덴민주당을 품으면 소수점 차이지만 좌파연합을 앞선다. AFP는 “크리스테르손 대표가 안데르손 총리의 권력을 빼앗기 위해 스웨덴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매체 RFI도 “네오 나치의 뿌리를 가진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온건당과 연합해 집권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온건당 대표인 울프 크리스테르손이 토론회 참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웨덴 온건당 대표인 울프 크리스테르손이 토론회 참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케손, 新나치→민족주의 정당 변신

비주류 정당을 원내 2위, 집권 가능한 당으로 키워낸 스웨덴민주당의 젊은 당수 임미 오케손(43)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1979년생인 오케손은 불과 26세이던 2005년 스웨덴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돼 지금까지 이끌어온 실력자다. 그는 당대표 취임 후 네오 나치 전력이 드러난 당원들의 당적을 박탈하고 출당조치하는 초강수로 당에서 극우 색채를 빼고 민족주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하며 지지층의 저변을 넓히는 데 역점을 뒀다. 스스로에 대해 극우가 아닌 ‘스웨덴 민족주의자’라 주장한다.

오케손은 유럽의 다른 극우 정당처럼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하고, 반이민·반유로를 주창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일주일 전, 스웨덴 공영방송 SVT와의 인터뷰에서 오케손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중 어느 지도자를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선 “오늘날 러시아는 거의 전면적인 독재국가이며, 이웃 국가에 대해 국제법 위반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며 달라진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당초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도 회의적이었지만, 개전 이후 핀란드와 나토에 가입하는 데 찬성했다.

스웨덴민주당 임미 오케손 대표가 스웨덴 라디오 주최 토론회에서 상대방의 발언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웨덴민주당 임미 오케손 대표가 스웨덴 라디오 주최 토론회에서 상대방의 발언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스웨덴민주당의 급부상에 대해 “북유럽에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치가 심화되고 빈부격차가 벌어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카밀리 마사우드 미드스웨덴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40년간 스웨덴에서 이번 선거처럼 인종차별적 유세는 본 적이 없다”면서 “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엄격한 배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집권당인 사민당의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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