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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태풍이 지나간 자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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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그제 태풍이 제주도를 지나가면서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다. 굵은 장대비뿐만 아니라 바람이 거셌다.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낮은 곳에 있는 집 쪽으로 물이 넘어오지 않는지 노심초사했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지 걱정이 많았다. 유리창에는 비닐 등을 덧대었고 문틈도 메꾸었다. 주변에서는 바람에 잔돌이 날아올 수 있으니 그것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물이 빠져나가는 길도 미리 내놓았고,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집안 살림에 쓰는 여러 물건을 묶어 두었다.

제주에는 바람이 유난히 거칠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바람의 위세를 몇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돌풍도 돌풍이려니와 바람은 전면적으로 맹렬해서 바람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맞설 수 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정전을 대비해서 손전등과 초도 준비해두었다. 새로 심은 백일홍과 하귤나무에는 지지대를 더 받쳐주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씻겨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태풍으로 물이 넘쳐 넘어오더라도 다른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랐고, 바람이 지나가더라도 내 살림이 있는 곳을 너무 흔들어놓지 않기를 바랐다.

제주 태풍 겪으며 뜬눈으로 지새
폭풍은 생활과 마음에도 일어나
제자리에 있는 것의 고마움 느껴

태풍이 오거나 장마가 와서 큰물이 나가는 일은 내 고향 경북 김천에서도 여러 번 겪었다. 굵은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동안 아버지는 비옷을 입고 삽을 메고 캄캄한 밤에도 수시로 논과 밭으로 나가셨다. 물이 넘어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통로인 물꼬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또 논둑과 밭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셨다. 날이 갠 다음 날에 마을 앞 내를 통해 많은 물이 흘러나가는 것을 보면서 동네 어른들은 “큰물이 나가신다”라고 이르셨다. 물에 대해 깍듯이 존칭을 쓰셨다. 물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을 공경하면서 두려워할 대상으로 여기셨다.

나는 예전에 나의 졸시 ‘큰물이 나가셨다’에서 이러한 일에 대해 쓰기도 했다. ‘큰비 지나간 개천은 가리워진 곳 없어서 마름풀들은 얽히었다/ 작은 소에서 놀던 물고기들은 소식 없이 흩어졌다/ 들길에는 띠풀이 다보록해졌다/ 무너진 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맛살에 주름이 들었다/ 젖은 집으로 어물어물 돌아가는 저녁 거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큰물이 나가셨다, 했다.’

태풍이 가장 가까워졌을 때 바람은 대숲을 밀고, 무화과나무와 귤나무를 사방으로 뒤흔들었다. 집에서는 모든 문이 덜컹거렸다. 비가 퍼붓듯이 쏟아져 눈앞이 캄캄했다. 내 어릴 적 내 아버지처럼 손전등을 들고 삽을 메고 집 주변과 밭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둘러보았다. 내 몸 바깥에는 온통 비와 바람뿐이어서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이 태풍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물이 나가시듯이 태풍이 지나가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태풍은 격렬하게 요동치며 밤의 시간과 내 생활에 머물렀고,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바람은 잦아들었고, 빗줄기도 약해졌다.

돌담이 무너졌고, 나뭇가지는 꺾여서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질과 가지는 뿌리가 뽑혔고, 마당에는 바람에 쓸려온 것들이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해바라기도 비탄처럼 쓰러졌다. 그러나 유리창은 태풍을 잘 견뎌냈고, 나무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어서 고마웠다. 그러면서 이처럼 작은 기쁨과 작은 기적이 사실은 내 일상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는 다시 마당에 내놓았다. 강아지는 갠 아침 속에서 뛰며 놀기 시작했다. 나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월파’라는 말이 있다. 바닷물의 물결이 제방을 넘어서 흐르는 것을 뜻한다. 나는 최근에 졸시 ‘월파’를 썼다. ‘오늘 파도는 제방을 넘어서 온다/ 그러나 집채만 한 파도가 언제 넘어올지 알 수가 없다/ 해변에 사는 우리가 아는 것은/ 월파(越波)가 있다는 것/ 우리에게 때때로 슬픔이 치런치런 찬다는 것/ 그리고 머리에 이고 가던 그 물항아리를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것.’ 우리는 살면서 이 월파를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마음속으로 겪는다. 그러면서 슬픔과 고통을 넘어서는 지혜를 배운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평범한 것과 제자리에 있는 것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앞집 할머니는 무화과밭에서 무화과 열매 수확을 할 것이다. 나는 무너진 돌담을 새로 쌓고, 성장의 막바지에 이른 풀들을 뽑고, 귤나무를 보살피고, 바질잎과 가지를 딸 것이다. 어느덧 가을에 들어섰으니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점차 애절해지고, 그 울음 사이로 반딧불이가 보석 같은 빛을 내놓으며 날아다닐 것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