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를 지키는 주인이 되고 싶소?
아니면 가마를 지배하는 작가가 되고 싶소?”
이는 43년 전 이우환 작가가 박영숙 도예가에게 던진 물음이다.
이 뜬금없는 물음이 나온 내막은 이렇다.
- “도자기 사업하던 남편 가게 귀퉁이에 내가 만든 도자기를 두었죠.이우환 선생이 우연히 그걸 보고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만났더니 저리 묻더라고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답했죠. 이 선생이 두 가지 약속을 하면 가르침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약속이 언론에 나서지 않는 것과 작업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이 물음으로 이우환 작가와 박영숙 도예가의 인연이 비롯되었다. 물론 약속을 지키느라 박 도예가는 은둔 작가로 작품에만 몰두했다.
이런 차에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하여 그를 만났다.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그가 더 알려졌다는 사실의 방증이었다.
2012년 그의 달항아리는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최고의 컬렉션’으로 꼽혔다. 영화 ‘007시리즈’의 배우 주디 덴치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싶은 단 한 가지로 ‘박영숙의 달항아리’를 선정한 데서 비롯됐다.
“보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그 앞에서 내가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는 게 주디 덴치의 선정 이유였다.
박씨가 본격적으로 달항아리에 혼을 쏟은 건 20여년 전부터다.
“어릴 때부터 어둠 속에서, 달빛 아래서, 꽃 필 때, 눈 내릴 때 수십 년 지켜봤죠. 그렇게 품었던 것을 쉰이 넘어서야 나만의 달항아리로 만들어 냈죠.”
그렇게 혼을 쏟은 달항아리는 18세기의 재현이 아니라 21세기의 창조였다.
지난 2일 리움미술관에서 ‘여월지항(如月之缸): 박영숙 백자’ 전이 열렸다. 전시장엔 무려 80여㎝가 넘는 달항아리 29점이 설치작품처럼 늘어섰다.
"가마를 지배하는 작가가 되고 싶냐"는 43년 전 물음에서 오늘에 이른 달항아리,
이젠 '박영숙 백자’라는 이름이 되어 전시장에 한가위 달인 양 휘영청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