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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개입에 경고장 날렸다…OPEC+ 감산 결정에 유가급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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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다음 달부터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지금보다 10만 배럴 줄이기로 했다. 경기침체 우려를 이유로 들었지만, 국제유가 통제를 시도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OPEC+가 사실상 경고 사격을 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OPEC+는 이날 장관급 회의를 열어 10만 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지난달 회의에서 하루평균 10만 배럴을 증산하기로 한 결정을 한 달 만에 되돌린 것이다. 이에 따라 OPEC+의 원유생산량은 지난 8월 수준(하루 평균 4385만 배럴)으로 돌아갔다. 지난 6월 이후 하락세를 보여오던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이날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넘었던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보다 2.28% 상승한 배럴당 88.85달러로 장을 마쳤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2.38% 오른 95.2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OPEC+가 내세운 명분은 커지는 시장 변동성이다. 세계 각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중국이 코로나19 재봉쇄 조치에 나서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원유 소비량이 줄어 국제유가가 급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 전날 OPEC+의 장관급 감시위원회(JMMC)는 하반기 원유 시장에서 하루 평균 90만 배럴이 초과 공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OPEC+, 감산으로 美에 경고사격 "

OPEC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OPEC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실질적으론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유가 통제 시도에 대한 OPEC+의 경고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에 대해 OPEC+가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유가상한제는 G7 국가들끼리 정한 가격 이상으론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WSJ는 “G7의 유가상한제가 성공적으로 이행되면 국제유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구매자 연합이 형성되는 셈인데, 이는 OPEC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며 “이번 감산조치는 (산유국) 카르텔의 가격 결정권을 위협하면 보복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 사격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 핵합의가 달갑지 않은 사우디 

미국과 이란 간의 핵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의 복원 협상에 대한 반발이란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JCPOA 복원 협상은 양국 간 합의안 최종 조율에 들어가 타결이 임박한 상태”라며 “협상 타결로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풀리면 이란산 원유가 국제 석유 시장에 나와 하루평균 약 100만 배럴 이상의 원유 증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산유국들로선 앙숙인 이란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원유가 시장에 초과 공급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에너지 시장 분석기업인 엔베루스의 빌 파렌 프라이스 이사는 “이번 감산 조치는 사우디가 JCPOA 복원협상 타결에 나서는 미국에 보내는 강력한 정치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헛물 켠 바이든, 비판 여론 직면 가능성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에 악재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잡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특히 기름값이 급등해 표심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이를 위해 유가 상한제 도입, 이란 핵합의 복원 등을 추진해왔다. 지난 7월엔 사우디를 전격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직접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번 감산 조치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감산은 사우디가 주도했다”며 “사우디 등 OPEC+는 바이든 행정부의 간청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선 바이든 비판 여론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인권단체 반대에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지만, 유가 안정이란 소득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면을 구긴 백악관은 여론 관리에 나섰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국민은 이번 여름에 기름값이 12주 연속 내려간 걸 목격했는데 인하 속도도 10년간 가장 빨랐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공급을 강화하고 가격을 낮추는 데 필요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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