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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 산유국이 된 비결 [SKI 혁신성장 연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SK이노베이션 혁신성장 연구

②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 산유국이 된 비결 -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

다음 달 창립 60주년을 맞는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했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에 인수된 이후 석유화학, 종합에너지, 바이오, 배터리와 그린에너지까지 섭렵하면서 지난 60년간 변신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SK를 재계 2위 대그룹으로 만든 토대가 된 SK이노베이션의 혁신성장 10가지 성공비결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달 30일 기업가정신학회 주최로 열렸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영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된 내용과 연구결과를 정리해 연재한다. 두 번째 혁신성장 스토리는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의 분석 발표를 토대로 정리했다.

SK이노베이션이 2007년부터 탐사한 베트남 15-1 05광구.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2007년부터 탐사한 베트남 15-1 05광구. 사진 SK이노베이션

 "자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된다"

선경(SK의 전신)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다. 당시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식이었다. 다음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유공 사장에 취임한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자원기획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안정적으로 석유자원을 확보하는 등 에너지 안보 문제에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대응하는 기구로 발전시킬 것이란 청사진을 내놓으면서다. 민간 기업이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전 세계 뒤흔든 오일쇼크, 선경의 남다른 대응

1973년과 1978년. 두 번의 오일쇼크가 일어났다. 원유가격이 급등해 전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였다. 안정적으로 원유를 수급하려면 해외 석유 광구를 직접 개발해야 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탐사에 오랜 기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공을 들여도 매장량이 터무니없이 적을 수도 있었다.

당시 국내 석유회사들은 최대주주가 외국 석유기업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최대주주의 석유제품을 그대로 수입해 판매하는 창구 역할을 주로 했다. 해외 석유 개발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 대기업 상사 계열사들이 산유국에 진출해 건설사업 등에 투자하는 대가로 유전 개발권을 취득하는 사례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목표와 계획은 부재했다.

선경에 인수된 석유공사는 달랐다. 자원기획실 설치를 발표한 이후 실제 행동에 나섰다. 1982년 3~4명의 자원개발 전담 요원을 종합기획실에 배치하고, 이들을 주축으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산유국으로 만드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기꺼이 지불한 수업료로 얻은 성과

북예맨 마리브 광구 옛 모습. 사진 SK이노베이션

북예맨 마리브 광구 옛 모습. 사진 SK이노베이션

호기로운 출발이었지만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석유 개발 사업은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하고, 탐사부터 개발 및 생산까지 많은 시간이 투입된다.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에 가담한 직원들도 해외 석유 개발 사업 경험이 전무했다. 사업도 사람도 모두 리스크가 큰 상황이었다. 최종현 사장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업료가 필요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결과가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사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줬다.

터무니없이 맨바닥에서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의 자원 개발 전문 기업들이 진행하는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첫 번째 해외 석유개발 사업은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사업이었다. 미국 코노코(Conoco)가 진행한 이 사업에 5% 지분 투자를 했다. 우리나라 기업 최초 자원개발 투자였다. 8개월에 걸쳐 탐사정을 시추했지만 매장량은 미미했다. 두 번째로 1984년 미국 옥스코(Oxco)사의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 사업에 지분 25%를 투자했다. 광범위한 탐사 작업을 벌였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진 못했다.

하지만 이내 대박이 터진다. 세 번째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서다. 1984년 유공을 중심으로 국내 몇몇 기업들은 북예멘 유전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헌트오일(Hunt Oil)사의 자회사인 예멘헌트오일로부터 북예멘 마리브 광구 탐사개발권 24.5%를 사들였다. 그런데 인수 5개월 만에 3~4억 배럴 규모의 초대형 유전이 발견된 것이다.

개발 작업을 거쳐 4년 뒤인 1987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됐다. 이후 마리브 유전은 우리나라 일평균 원유 도입량의 약 4%를 책임지게 된다.

40년간의 도전의 결실…연 매출 1조원

1988년 마리브 광구에서 시추한 원유를 들여오는 장면. 사진 SK이노베이션.

1988년 마리브 광구에서 시추한 원유를 들여오는 장면. 사진 SK이노베이션.

유공은 북예멘의 성과에 고무돼 이후에도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여러 실패도 있었지만, 남미 페루와 남중국해 등지에서 내실 있는 유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국내 다른 기업들도 이에 자극받아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의 여파로 국가적 차원에서도 에너지 안보 역량을 축적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 셈이다.

SK는 원유탐사를 시작한 1980년 이후 현재까지 약 40년간 34개 국가에서 100여개의 사업을 수행했다. 사업 성공률은 10%로 당초 예상치인 5%를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해외 석유개발 사업은 연간 매출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했다.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초기 최종현 회장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자원 개발에 대한 집중 투자로 이어져 결국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실현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SK 내부적인 역량과 기술력이 축적됐고, 국가 차원에서도 원유 공급원 확보를 비롯해 에너지 안보라는 국가적 어젠다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인터뷰 

김현욱 교수 제공

김현욱 교수 제공

SK이노베이션 창립 60주년 기념 혁신성장 연구에 참여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SK이노베이션의 경영철학을 비롯해 60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인지 상당히 가까이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오랜 과거부터 혁신적인 요소들을 꾸준히 고민하고 또 실행하는 모습들을 확인하면서, 기업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구 주제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구진 가운데 유일한 경제학자였습니다. 경제학은 주로 기업 차원의 의사결정보다는 국가적인 정책이 국가 경제에 어떤 기여를 하는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특히 최근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당시의 고민은 무엇이었고, SK이노베이션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당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연구 주제로 선정하게 됐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자료가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어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기에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료 수집 과정에서 만난 SK이노베이션의 구성원들이 당시 상황과 최고경영진의 의사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제시된 경영철학이 쉽게 체화되고, 몰입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덕분에 당시 사업 담당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상황을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교수님께서 맡은 연구까지 포함해 이번 혁신성장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사이트는 무엇인가요.

"경영학자분들이 기업의 역사를 보면서 단계마다 혁신 포인트를 집어내는 게 경제학자 관점에서는 새로웠습니다. 이런 부분을 나름대로 당시 경제 상황과 연관시키려고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기업들이 경제 상황에 맞춰서 혁신적인 접근을 나름대로 고민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점이 소득이었습니다."

석유사업 진출, 종합에너지 기업에서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까지, SK이노베이션의 끊임없는 혁신이 우리나라의 성장발전이나 기업경영에 던지는 의미나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이 결국에는 우리나라 다른 기업들의 경영철학 등에도 파급됐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 경영학의 특이한 요소로써 연구가 됐고 앞으로도 연구될 겁니다. 이제는 외국의 기업 사례나 경영철학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의 기업 경영에 관한 학술적인 체계가 만들어지고, 또 견실한 토대를 가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SK이노베이션은 60년간 이어온 기업인데요, 앞으로 60년 혹은 100년 기업도 가능할까요?

"이미 환경이나 탈 탄소가 글로벌 화두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따라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신을 다시 성공으로 연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모습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만, 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업에 대한 철학이나 다양한 경영적인 요소들은 영속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KI 혁신성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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