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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억 방파제 또 날아가는줄"…'핫코너' 가거도 공포의 밤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방파제 공사 40년…뜬눈으로 밤새운 413명 

지난 5일 오후 10시쯤 전남 신안군 가거도. TV 앞에 앉은 주민들이 방파제가 있는 바다 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파도가 초속 32m가 넘는 강풍 속에 금방이라도 방파제를 쓸어갈 듯 넘실거려서다. 가거도 방파제는 2011년 태풍 ‘무이파’와 2012년 ‘볼라벤’ 당시 번번이 유실됐다. 박재원(58) 가거도 2구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또다시 피해가 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가거도 주민들은 6일 오전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 동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몇몇 주민은 방파제가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박 이장은 “역대급 태풍이라는 말에 모두 사흘째 밤잠을 설친 상황”이라며 “올해 말 완공 예정인 방파제가 또다시 날아갈까 봐 특히 가슴을 졸였다”고 말했다.

2011년 태풍 ‘무이파’ 당시 무너진 전남 신안군 가거도 방파제. 중앙포토

2011년 태풍 ‘무이파’ 당시 무너진 전남 신안군 가거도 방파제. 중앙포토

2011년 태풍 '무이파' 당시 초속 40m의 강풍과 10m가 넘는 강력한 파도로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방파제에 설치된 100t이 넘는 큐브 블럭이 마을 앞 길까지 날려와 널부러져 있다. 뉴시스

2011년 태풍 '무이파' 당시 초속 40m의 강풍과 10m가 넘는 강력한 파도로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방파제에 설치된 100t이 넘는 큐브 블럭이 마을 앞 길까지 날려와 널부러져 있다. 뉴시스

태풍 진로 한복판…대한민국 ‘핫코너’

힌남노 북상에 주민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새운 곳이 있다. 전남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 떨어진 한반도의 서남단 가거도다.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을 가야 하는 가거도는 태풍 때마다 방파제 등이 큰 피해를 봤다. 태풍 때마다 진로 한복판에 위치해 대한민국 핫코너(Hot Corn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핫코너는 강한 타구가 많이 날아가는 3루 구간을 말하는 야구용어다.

가거도 방파제는 1978년 착공 후 우여곡절 끝에 2008년 5월 완공됐다. 착공 이후 ‘셀마’(87년), ‘프라피룬’(2000년), ‘라마순’(2002년) 등 태풍에 공사 현장이 번번이 ‘쑥대밭’이 되면서 30년 넘게 공사가 이어졌다. 주민들은 착공 후 1325억 원이 투입된 방파제가 완공되자 “이제야 태풍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생각했다.

2011년 8월 7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 제9호 태풍 `무이파'가 상륙해 집채만한 파도가 항구를 덮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8월 7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 제9호 태풍 `무이파'가 상륙해 집채만한 파도가 항구를 덮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에 대비해 어민들이 어선을 육지로 올려놓았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에 대비해 어민들이 어선을 육지로 올려놓았다. 연합뉴스

무이파·볼라벤 때 방파제 또 유실

주민들의 기대는 또다시 태풍 앞에 무너졌다. 2011년 8월 대풍 ‘무이파’에 이어 2012년 8월 ‘볼라벤’ 때도 방파제가 쓸려나갔다. 볼라벤 당시 가거도는 무이파 때 무너졌던 방파제 유실과 함께 닷새간 고립되기도 했다. 해상 교통편은 물론이고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등이 모두 끊겼다. 흑산도에서 남쪽으로 75㎞ 떨어진 가거도에는 41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볼라벤 후 가거도 방파제는 보다 강력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강 공사가 시작됐다. 사업비 2335억 원을 추가 투입해 100년 빈도의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게 골자다. ‘100년 빈도’란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태풍을 의미한다. 이른바 ‘수퍼 방파제’라 이름 붙여진 길이 480m의 방파제는 올해 12월 외관이 완공될 예정이다. 2013년 3월 착공 후 118개월 만이다.

전남 신안군 가거도 수퍼 방파제 조감도. 사진 신안군

전남 신안군 가거도 수퍼 방파제 조감도. 사진 신안군

480m ‘수퍼 방파제’…118개월 만에 완공 눈앞

목포지방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가거도 방파제는 1978년 착공 당시 설계파고 8m에 유속·수심 등을 고려해 높이 10m로 설계됐다. 이후 2000년 태풍 ‘프라피룬’ 때 방파제 64m가 유실되자 제방을 12m(설계파고 8.4m)로 높였지만, 번번이 유실 피해를 봤다. 주민들은 기존 방파제에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 등을 보완한 형태의 수퍼 방파제가 태풍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이장은 “초속 30m가 넘는 강풍에도 공사 현장에 쌓고 있던 사석 일부가 쓸려 내려갔을 뿐 방파제 붕괴나 파손 등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볼라벤 후 설치된 1만t급 초대형 케이슨(caisson·콘크리트 박스) 등이 효과 발휘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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