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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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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외환위기의 정의는 간단하다. 원화와 맞바꿔 쓸 달러(외환)가 모자라 생긴 위기다. 1997년 한국이 경험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며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그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다. 대가는 컸다. IMF는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다. 지독한 돈 가뭄에 주택 대출금리는 연 20%대,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30%대로 치솟았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한국 경제는 빠르게 침몰했다.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고 가계 파산이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인에 남긴 상처는 컸다. 경제가 불안하게 흘러갈 때면 외환위기 공포가 소환되는 이유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그랬다. 당시 외국인 자금이 급하게 빠져나가고 원화 값이 추락했다. 2차 IMF 위기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시장에 번졌다. ‘3월 위기설’ ‘9월 위기설’이 연이어 돌았다. 그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어렵긴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해명할 정도였다.

최근 IMF 외환위기 공포가 다시 엄습했다. 일단 물가와 환율이 심상찮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6%(전년 대비)를 넘나들고 있다. 1998년 7.5%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다. 외환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97년 4.4%를 웃돈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선을 뚫고 1400원대를 향해 가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루에 10원 안팎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환율은 상승). 금융위기 때나 있던 일이다. 그런데 정부 반응도 그때와 비슷하다. 지난달 2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에서 “외환 보유가 충분하다. IMF 외환위기와 다르다”고 말했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외환위기도, 금융위기도 경제위기의 한 종류일 뿐이다. 위기는 언제나 모습을 달리했고 또 진화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책 『불황의 경제학』에서 ‘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우 똑똑한 인물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새로운 차원을 계속 발전시켜 보여준다’고 했다.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IMF 외환위기의 기록을 뛰어넘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