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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여성 총리된 트러스 “세금 줄여 영국경제 성장 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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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5일 영국 보수당 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런던 퀸엘리자베스2세센터에 도착하는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왼쪽)과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트러스는 57.4%의 표를 받아 신임 대표가 됐다. [AP=연합뉴스]

5일 영국 보수당 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런던 퀸엘리자베스2세센터에 도착하는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왼쪽)과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트러스는 57.4%의 표를 받아 신임 대표가 됐다. [AP=연합뉴스]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저성장에 발목 잡힌 영국을 이끌 총리로 리즈 트러스(47) 외무장관이 선출됐다. 트러스는 5일(현지시간) 영국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8만1326표(57.4%)를 얻어 리시 수낵(42) 전 재무장관(6만399표, 42.6%)을 누르고 당선됐다.

트러스 장관은 다수당 대표로서 총리직을 자동 승계하며, 6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한 뒤 정식 취임한다. ‘파티게이트’와 거짓말 논란 등에 휩싸여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보리스 존슨은 5일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여왕에게 사임을 보고하고 물러난다.

중국·러시아에 ‘강경한 외교’ 강조

신임 총리의 앞날엔 치솟는 에너지 비용과 40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우려 등 험난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신임 내각의 정책 목표는 감세와 성장에 맞춰져 있다. 먼저 생활비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인 에너지 요금 등에 대한 조율이 예상된다.

트러스는 이날 당선 연설에서 “세금을 줄이고 영국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감한 계획을 갖고 있다”며 “에너지 요금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에 관한 장기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3일 텔레그래프 기고를 통해 “당선되면 새 내각 출범 1주일 이내에 에너지 요금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즉각적인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달 말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러스는 BBC에 “모든 경제 정책을 ‘재분배의 렌즈’로 보는 건 잘못”이라며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성장을 촉진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FT는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증가하는 정부 부채, 감세와 국방 지출에 대한 트러스의 약속은 2025년까지 약 600억 파운드(약 94조원)의 재정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추산했다.

트러스는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된다. 마거릿 대처(1979~1990 재임)가 54세에, 테레사 메이(2016~2019 재임)가 60세에 취임한 데 반해 40대 여성으론 처음이다.

그는 경선 초반 수낵 전 장관과 박빙 승부를 벌였지만 법인세 감세 등을 통한 경기 부양을 해법으로 제시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인권 문제가 있는 중국에 대한 강경 외교를 천명했다. 감세·규제 완화 등을 강조하고 포클랜드 전쟁을 밀어붙였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길을 따르는 그에게 ‘대처리즘의 수호자’(텔레그래프)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럽 여성 대통령·총리 16명으로 늘어

사진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제2의 대처’를 꿈꾼다. [AP=연합뉴스]

사진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 트러스 총리 내정자는 ‘제2의 대처’를 꿈꾼다. [AP=연합뉴스]

그는 ‘철의 여인’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은 물론 패션도 따라 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BBC가 주최한 보수당 대표 최종 후보 TV 토론회에 파란색 원피스에 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왼쪽 가슴에는 브로치를 달았는데, 영국 언론은 대처 전 총리가 주로 입던 패션 스타일이라고 보도했다. 대처 전 총리는 영국 왕실의 상징인 로열블루 색깔 패션을 즐겼고, 이는 보수당의 부흥 상징이 됐다.

2010년 총선을 통해 하원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트러스의 패션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법무·재무·국제통상부 장관 등 요직을 연달아 차지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패션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성 정치인들은 외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처 전 총리와 유사하게 빨강·파랑·보라 등 원색 옷에 정갈한 액세서리를 코디하는 세련미를 보여준다.

더타임스는 “화려한 색의 옷을 입는 트러스는 어두운색 정장을 입은 남성 지도자들을 배경으로 만들어 버린다”면서 “대처는 패션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는데 전문가였는데 트러스도 그렇다”고 평가했다. 대처처럼 영국 브랜드 옷만 고수하는 것도 좋은 평가를 끌어냈다. 반면 ‘대처 아바타’로 보일 만큼 대처를 따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원래 트러스는 ‘반(反)대처’ 입장이었다.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는 대처 반대 시위에 나가는 강경 좌파였다. 그도 어린 시절 학교의 모의 총선에서 대처 역할을 맡았을 때, 스스로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옥스퍼드대 재학 중엔 중도 좌파인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했다. 그랬던 그가 1996년 21세에 열렬한 보수당원으로 전향하고 승승장구했다. 그는 2016년엔 유럽연합(EU) 잔류를 지지했지만, 이후 브렉시트 찬성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내고 승리를 위해 입장을 바꾸는 실용적 모습이 여성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야심 차다는 평가가 나온다. BBC는 트러스의 가족 인터뷰를 통해 “그는 보드게임조차도 이겨야 하는 사람”이라며 “승리하기 위해 모든 길을 찾는다”고 전했다. 2000년 회계사와 결혼한 그는 2006년 마크 필드 전 보수당 의원과의 불륜이 공개되면서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았다. 필드 전 의원은 결혼생활이 파탄 났지만, 트러스는 가정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트러스가 총리로 취임하면 49개국 유럽 국가에서 여성 총리와 대통령이 16명으로 늘어난다. 유럽 정치계의 여풍(女風)에 대해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앨리스 에반스 교수는 “코로나19팬데믹 기간에 배려하고 사려 깊은 여성 리더십도 유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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