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내 고속철 시장, 외국계 진출하나…7000억원대 입찰 놓고 ‘시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5면

코레일 대구본부 관계자가 동대구역 선로 부근에서 KTX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코레일 대구본부 관계자가 동대구역 선로 부근에서 KTX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국내 고속철도 시장에 외국계 기업이 진출 채비를 하면서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근근이 사업을 유지해온 국내 업체들은 “해외 업체 참여를 무분별하게 허용하면, 철도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마음 졸이고 있다.

5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르면 다음 달 평택오송선(EMU-320) 고속차량 120량 등 총 136량 규모로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대략 7000억원대 규모다. 스페인 철도차량 업체인 ‘탈고’는 국내 중견기업인 우진산전과 컨소시엄을 이뤄 이번 코레일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탈고가 입찰에 나서면 2005년 프랑스 알스톰이 참여했다가 탈락한 이후 17년 만에 해외 업체가 참여하는 게 된다. 이에 따라 국내 유일의 철도차량 업체인 로템과 수주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은 지난 2005년 프랑스 알스톰을 제치고 코레일 고속철도 낙찰자로 최종 선정됐다. 특히 올해에는 평택오송선과 별도로 320㎞급 고속열차 112량 등의 입찰이 예정돼 있다. 업계로선 ‘20년 만의 대목’을 맞이하는 셈이다.

하지만 해외업체의 참여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당장 국내 고속철 관련 부품사(191개사)들은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 중이다.

비대위는 지난 1일 호소문을 통해 “해외 업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며 “전체의 96%가 영세 사업장인 부품사 생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내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건 이들이 그간 국가 기간산업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적자를 견디면서도 고속철 사업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맏형격인 현대로템 철도사업은 최근까지 수천억 원대 누적 적자를 내다가 지난해 겨우 흑자로 돌아섰다.

안전 관련 문제도 제기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사를 둔 탈고는 지난해 매출 5억5540만 유로(약 7500억원)로 세계 20위권 밖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이 회사가 ‘동력집중식’ 고속차량을 주로 제작해 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이와는 구동 방식이 다른 ‘동력분산식’ 열차를 발주할 예정이다.

동력집중식은 열차의 양 끝 기관차에만 동력원이 달려 있다. 동력분산식은 열차에 동력을 골고루 분산해 속도 가감 능력이 뛰어나고, 승객을 동력집중식보다 25%가량 많이 실을 수 있다. 다만 제조 가격은 동력집중식보다 높은 편이다. 현대로템은 정부의 정책 지원과 자체 기술을 통해 동력분산식 고속철도(‘KTX-이음’)를 제작·납품한 바 있다. 지금까지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2조7000억여 원에 이른다.

업계에 따르면 코레일은 지난해 입찰 참가자격 규정을 없애 진입장벽을 낮췄다. 그동안은 시속 250~300㎞ 이상 최고 속력을 내는 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있는 업체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조달 시스템에서 서류 제출 절차를 없애 국내·외에 똑같은 조건을 둔 것”이라며 “애초에 입찰 제한을 규정한 적이 없고, 법과 규정에 따라 공개경쟁 입찰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진 측은 “탈고는 고속철도 사업에서 사우디아라비아·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수주 이력이 있다”며 “스페인에서 일부 기술만 들여오고, 실제 제작은 국내에서 이뤄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