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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개헌 필요하나, 지나치게 급진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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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개헌 반대파 주민들이 국민투표 부결 소식에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개헌 반대파 주민들이 국민투표 부결 소식에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군부 독재시절 만들어진 헌법을 대체하기 위한 칠레의 개헌안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개헌을 추진해온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

AP통신과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칠레의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 개표 결과, 반대 61.9%(788만2958표), 찬성 38.1%(486만93표)로 최종 부결됐다. 투표율은 85.79%였다. 지난 2년간 개헌안을 두고 극심하게 분열해온 칠레 사회는 이날 국민투표 결과를 놓고, 개헌 반대파와 찬성파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개헌 찬성파 시민들이 개헌 국민투표 부결 소식에 주저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개헌 찬성파 시민들이 개헌 국민투표 부결 소식에 주저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보리치 대통령은 이날 투표 마감 이후 TV 연설을 통해 “칠레 국민은 두 가지 메시지를 매우 크고 분명하게 전달했다"면서 "첫 번째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점이지만, 두 번째는 현재의 개헌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새로운 개헌안 구성에 힘쓸 것을 약속한다”면서 개헌 작업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뜻을 분명히 했다.

칠레의 개헌 논의는 지난 2019년 10월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50페소(약 50원) 인상안에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당시 시위는 표면상으론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실상은 칠레의 극심한 빈부 격차 등 기존 사회 문제에 대한 분노 폭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칠레는 인구의 1%가 전체 부의 25%를 소유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양극화에 직면해 있다.

당시 탄핵 위기에 몰렸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개헌 카드를 띄웠다. 칠레 헌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1973~1990년) 때인 1980년 만들어진 것으로, 민주화 이후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지 않는데다 칠레를 신자유주의 실험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개헌 추진 여부를 묻는 2020년 국민투표에서 국민 78%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며 국민적 합의도 이뤄졌다. 이후 지난해 5월 제헌의회가 출범했고, 같은해 12월 보리치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개헌안이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지난 5월 개헌안 초안이 공개되면서 개헌안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499개에 달하는 헌법 조항이 너무 급진적이며,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칠레의 새 개헌안에는 공기업 구성원 남녀 동수, 난민 강제 추방 금지, 임신중단 보장, 성 정체성 선택 권리, 자연과 동물에 대한 헌법적 권리 등이 보장돼 그대로 통과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1개 장 388개 조항으로 일부 수정했지만, 진보 진영에서조차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헌 투표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반대 47%, 찬성 38%로 나타나 부결이 예고됐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개헌 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개헌 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치 대통령이 향후 새로운 개헌안 마련을 위해 모든 정당과 만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리치 대통령은 개헌을 이어가겠는 입장이지만, 그가 꿈꾼 미래는 현재 멀어 보이며, 논쟁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이날 투표 결과는 36세 칠레 역대 최연소 대통령 보리치에게 큰 타격을 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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