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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치솟는 도매가…가스·전기 요금 인상 압박 거세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9일 서울 도심 주택단지에 설치된 도시가스 계량기 모습. 뉴스1

지난달 29일 서울 도심 주택단지에 설치된 도시가스 계량기 모습. 뉴스1

국제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 속에 전력·가스 도매가격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판매 가격을 맘대로 올릴 수 없는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가스공사의 손실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눌러온 요금 인상 요인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5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가스공사의 9월분 가스 열량단가(도매가격)은 Gcal(기가칼로리)당 14만4634원으로 전년 동월(6만526원) 대비 2.4배 수준이다. 6월 7만7662원이던 가스 도매가는 넉 달째 오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공급난으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최근에도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 공급이 지연되면서 가스 가격이 더 오를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스 도매가 상승 속에 전력 도매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한전이 각 발전사에서 전력을 구매할 때 적용되는 SMP(계통한계가격)는 이달 들어 육지 기준 ㎾h(킬로와트시)당 200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지난 2일엔 245.42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껏 2012년 2월 8일(225.17원) 기록이 가장 높았는데, 이달 1~3일에 모두 넘어섰다. 월별 수치에서도 6월(128.84원)부터 꾸준히 오르는 모양새다. 이대로면 4월(201.58원)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월평균 200원대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

비싸진 국제 원자재 값 탓에 최근 에너지 수입액 증가세는 심상치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원유ㆍ석탄ㆍ가스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은 185억2000만 달러로 지난해 8월(96억6000만 달러)보다 91.8% 높았다. 같은 기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9.5달러에서 96.63달러가 됐고, LNG(액화천연가스) 가격도 3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글로벌 연료 가격이 급등했지만 전기요금 등은 거의 올리지 못했다. 향후 한전과 가스공사가 입을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전은 올 상반기에만 14조30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1873억)의 76배를 넘는 수준이다. 한전의 재무 전망에 따르면 올해 영업 손실은 27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SMP 상승 같은 악재가 이어지면 올 한 해 30조원 넘는 적자를 낼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전기를 비싸게 산 뒤 일반 가정 등에 싸게 공급하다보니 한전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SMP는 가스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데 국제 가스값이 계속 올라가고 있어 같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SMP와 연동되는 경영 실적도 직격탄을 맞으면서 올해 적자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스공사도 원료인 가스를 비싸게 들여온 뒤 싸게 팔면서 발생한 미수금이 6월 기준 5조1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미수금 액수인 1조8000억원을 훌쩍 넘겼다. 하반기에도 가스 가격이 계속 오른 만큼 손실 규모는 계속 커지는 상황이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미수금은 내년 3월께 12조60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공기업의 경영 개선도 쉽지 않다. 지난 6월 말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된 한전과 가스공사는 부채 감축, 자본 확충 등을 담은 5년 치 재정건전화 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한전은 유휴 변전소 부지와 지사 사옥을 파는 등의 자구책을 추진하는 식이다. 하지만 손실이 누적되면 부채 비율을 줄이겠다는 목표에도 차질이 생긴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 계량기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 계량기 모습. 뉴스1

문제를 해결할 근본 방안으론 급등한 연료비를 반영한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꼽힌다. 하지만 물가 상승 추이가 쉽사리 꺾이지 않고 있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5.7%로 3개월 만에 6%대에서 내려갔다. 하지만 전기ㆍ가스ㆍ수도 물가 상승률은 15.7%로 훨씬 높았다. 역대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한 7월과 같은 수준이다. 특히 전기료(18.2%), 도시가스(18.4%)를 따로 떼 놓고 보면 상승률이 더 올라간다.

지난해 말 정부 결정에 따른 도시가스와 전기 요금 인상도 10월에 계획돼 있다. 전기요금에선 기준연료비가 4월에 이어 ㎾h당 4.9원 오를 예정이다. 가스 요금도 정산단가가 MJ(메가줄)당 1.9원에서 2.3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그래도 추가 요금 인상을 더 이상 늦추기 어렵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북반구에서 겨울 난방이 본격화하는 11월 이후엔 가스 대란이 찾아오고 가격 급등세도 심각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손실이 더 커지면 자구 노력을 통한 재정 건전화도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부는 다음 달 요금 인상 시 예정된 상승분 외에 가스 기준연료비 등을 추가로 올리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에선 물가 부담 등을 들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요금 인상은) 일정 시간을 두고 국민에게 가는 부담을 완충해 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물가만 신경 쓰면 전력·도시가스 공급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국민에게 에너지 위기 상황이니 수요를 확 줄여야 한다는 신호를 주는 측면에서 대폭적인 요금 조정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가스 요금 중 기준연료비는 10월에 추가로 올리고, 전기 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는 연간 상한선(㎾h당 5원)을 다 채웠기 때문에 연내 기준을 바꾼 뒤 내년 초부터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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