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럽, 에너지발 ‘리먼 사태’ 걱정…다급한 獨 ‘횡재세’까지 도입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체코 프라하에서 시민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일 체코 프라하에서 시민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자, 러시아가 또다시 유럽행 가스관을 잠갔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이번 위기가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번질 수 있단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은 수십조 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등 비상개입에 나섰다고 블룸버그·로이터 통신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핀란드·스웨덴, 에너지 기업에 수십조원 긴급 자금

스웨덴 주요 경제 관계자들은 지난 3일(현지시간) “전력 회사에 2500억 크로나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스테판 잉그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 미카엘 담베리 스웨덴 재무장관,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 에리크 테덴 금융감독청장. AFP=연합뉴스

스웨덴 주요 경제 관계자들은 지난 3일(현지시간) “전력 회사에 2500억 크로나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스테판 잉그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 미카엘 담베리 스웨덴 재무장관,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 에리크 테덴 금융감독청장. AFP=연합뉴스

이날 핀란드 정부는 국영 에너지 기업에 100억 유로(약 13조원) 규모의 대출·보증 지원을 약속하는 긴급 지원책을 발표했다. 미카 린틸라 핀란드 경제부 장관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은행들의 도미노 붕괴를 언급하며 “에너지 부문에서 리먼 브러더스 위기가 촉발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춰졌다”고 경고했다. 산나 마린 총리도 “(이번 지원은)사회 기능에 필수적인 기업의 보호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도 지난 3일 ‘에너지 기업들이 기술적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며 최대 2500억 크로나(약 31조 원) 규모의 신용보증 제공 방안을 발표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에너지 기업들이 전력 거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담보금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최악의 경우 세계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카엘 담베리 재무장관도 “지금은 에너지에 국한돼 있지만 대응에 실패할 경우 다른 금융 시장으로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 위기가 금융위기 될까…위기 의식 커져

지난 2010년 4월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 직원이 노르드스트림1호 가스관 건설 기공식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0년 4월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 직원이 노르드스트림1호 가스관 건설 기공식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처럼 유럽에선 에너지 위기가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영국 무역기구인 에너지UK의 아담 베르만 부국장은 “에너지 시장은 최근 몇 달간 이어진 급격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장 프랑수와 랑베르 램버트 커머디티 창업자도 “대형 에너지 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기업도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일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막으면서 커졌다. 러시아 에너지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이날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점검 중 기름 누출이 발견됐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같은 날 G7 재무장관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시행키로 합의한 데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게 유럽의 생각이다. 에릭 마머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차단하고 이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스인프라스트럭처유럽(GIE)에 따르면 2일 기준 EU의 가스 비축율 평균은 81.2%다. EU가 올겨울 가스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내세운 목표치인 80%를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가스와 전기 등 에너지 요금은 다락같이 올랐다. 로이터는 “유럽의 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지난해 대비 400%나 치솟고 이로 인해 전기요금도 폭등한 상태”라며 “업계에선 노르트스트림1 가동 중단 여파로 이번 주 유럽과 영국의 천연가스 가격이 사장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우려한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에너지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치적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유럽 전역에 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일 체코 프라하에선 시민 약 7만명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獨 ‘횡재세’로 88조 서민 지원금 마련

4일(현지시간) 독일의 사회민주당 주도 연정 지도자들이 3차 인플레이션 부담 경감 패키지 대책을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왼쪽)와 자유민주당 의장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이 대책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독일의 사회민주당 주도 연정 지도자들이 3차 인플레이션 부담 경감 패키지 대책을 발표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왼쪽)와 자유민주당 의장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이 대책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독일은 ‘횡재세’까지 도입해 서민 지원에 나섰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립정부는 18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4일 ‘3차 인플레이션 부담 경감 패키지’ 대책을 발표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해 서민들에게 650억 유로(약 88조 원)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숄츠 총리는 “일정 기준 이상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들로부터 수십억 유로 규모의 많은 세금을 거둬 서민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겪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독일 정부는 두 차례 가계 지원 대책을 발표했고 이번 650억 유로 지원책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독일 정부의 지원 규모는 950억 유로(약 129조 원)에 달한다.

EU 에너지 부처 장관들은 9일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에너지 비용 억제를 위한 특별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블룸버그가 입수한 긴급회의 초안 문서에 따르면 EU 의장국인 체코는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 적용, 전력 관련 파생상품 거래 일시 중단 등의 내용을 회의 의제로 올렸다. 초안 문서에서 체코 에너지 장관은 “난방 수요로 에너지 사용이 급증하는 올겨울이 EU 에너지 시장의 회복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발 빠른 대응을 주문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