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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최하영 “확신 갖고 내 이야기 전달했죠”

중앙일보

입력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최하영. 14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우승 후 첫 고국 전국투어를 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최하영. 14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우승 후 첫 고국 전국투어를 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날(6월 4일) 밤 시상식이 지연됐어요. 다음날 자정 가까이 돼서 시작했죠. 1위부터 부르는데 그게 제 이름이어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죠.“

14일부터 첫 국내 투어, 2위 입상 이바이 첸도 무대에 #클래식 음악팬 어머니 밑에서 7세때 취미로 첼로 시작 #"자기 음악에 확신 있어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어"

5월 9일부터 6월 4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최하영(24)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입상자의 경력이나 음반, 협연 기회 면에서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메이저 콩쿠르로 위상이 높다. 해마다 바이올린-피아노-성악-작곡 분야를 번갈아 경연하다 2017년부터 작곡을 대신해 첼로 부문이 신설됐고, 올해가 두 번째 대회였다.

우승 상금으로 2만5000유로(약 3400만원)를 받고 지난달 중순 한국에 온 최하영을 최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수상 직후 벨기에 각지를 연주 여행하며 한 달 반을 보냈고 7월 초 거주하는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에도 독일과 스위스에서 초청 연주를 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콩쿠르는 시작부터 꼬였다.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 테스트가 양성으로 나오자 1차 연주 순서를 마지막 날로 돌렸다. 천신만고 끝에 경연 전 음성이 나왔다. 호텔 대신 자원봉사 가족의 집에 묵었던 시간들도 따뜻한 추억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특별한 가족이었어요. 다섯 자녀 모두 취미로 악기를 하나씩 하더군요. 넷째와 다섯째는 어린 딸들이었는데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보는 게 더 좋다고 했어요.”

최하영은 2011년 브람스 콩쿠르, 2018년에는 펜데레츠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특히 펜데레츠키 콩쿠르는 현대곡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까다로운 곡들을 암보로 연주하면서 단련이 됐죠. 새로운 첼로 음을 많이 찾았고 루토스와프스키 협주곡에 관심이 생긴 것도 그때였어요.”

결선에서 최하영이 연주한 루토스와프스키 협주곡을 들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 명연주로 꼽았다.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된 이 곡은 모놀로그 같이 첼로의 카덴차로 시작하고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논쟁을 벌이듯 극적이고 난해한 작품이다.

“연주를 듣고 청중들이 많이 찾아오셨어요. 현대곡인데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죠.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갈등하는 오페라적인 해석을 의도했어요. 어릴 때 노래를 좋아해 중창단 활동을 했고. 연극도 좋아했죠. 이야기를 첼로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최하영이 들려준 호방한 표현에는 전략적인 악기 선택도 한 몫 했다. 2019년 금호문화재단에서 대여해준 파올로 마치니 첼로로 연주하다 이번에는 1800년산 니콜라 베르곤지 첼로를 갖고 대회에 나갔다. 파올로 마치니는 어둡고 남성적인 특성이 있는 반면 니콜라 베르곤지는 직접적이고 밝은 음색에 전달력이 좋아 큰 홀에서 연주할 때 효과적이다. 영국 악기상 플로리안 레온하르트에게 편지를 써서 빌릴 수 있었다.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과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도 레온하르트의 악기를 대여해 쓴다.

결선진출자들이 뮤직 샤펠에 모여 외부와 차단된 채 새로 작곡된 곡을 익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통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과제곡은 외르크 비트만의 ‘5개의 소품’이었다.

“피아노의 표현에 어울리는 곡이라 첼로로 운궁이 힘들었어요. 손이 크지 않아서 더 어려웠죠. 다른 참가자들과 곡의 해석에 대해 서로 의논하기도 했죠.”

뮤직 샤펠의 결선 진출자들은 경쟁자였지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문태국(28),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27, 3위 입상, 예르비/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내한), 윤설(27), 정우찬(23) 등 결선 진출자들과 가지고 온 떡볶이, 라면을 나눠먹기도 했다.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최하영. 14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우승 후 첫 고국 전국투어를 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최하영. 14일 부산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우승 후 첫 고국 전국투어를 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하영은 현재 고려대 사학과에서 독일사를 연구하는 최호근 교수의 3녀 중 차녀로 부친 유학 시절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났다. 언니 최하임, 동생 최송하는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다. 클래식 음악팬이었던 어머니는 잘 때도 차 안에서도 늘 음악을 틀어놓았다.
정서가 풍부했던 최하영은 특히 베토벤 ‘로망스’만 들으면 눈물을 흘렸다. 첼로는 7세 때 시작했다. 취미로 첼로를 배우던 어머니를 따라 한건데 본인의 낮은 목소리 톤과 잘 어울리는 첼로 저음이 처음부터 좋았다고 한다. 새 악보를 배우면 집안을 뛰어다니며 환호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승 장형원은 연습곡을 시켜 기초를 다졌다. 한 주에 하나씩 새로운 곡을 외워서 준비해갔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2년간 배운 스승 정명화는 수십 가지 음색, 비브라토를 알려줬다. 귀를 열어 원하는 색깔의 목소리 찾는 연습을 했다. 11세 때 보스턴 근처 바닷가 마을에 2주간 머물며 보자르 트리오의 첼리스트 버나드 그린하우스에게 받은 마스터클래스를 잊지 못한다. 파블로 카잘스의 마지막 제자였던 93세 첼리스트는 매일 아침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첼리스트 말고 음악가가 되라”는 가르침을 지금도 간직한다.

일반 중학교에 다니다가 1학년 마치고 영국 퍼셀음악원으로 유학간 뒤 16세때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독일 헤센주 크론베르크에 있는 사설 음악원으로, 세계적인 거장들의 마스터클래스와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크론베르크의 16세 소녀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또래 친구들도 없었다. 학교 안에서 경쟁과 압박감이 심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때 동기부여를 하면서 제가 강해진 것 같아요. 늘 여러 친구들 앞에서 연주해야 하죠. 조그만 방 안에서 전문가인 청중들 앞에서 연주해야 했던 게 도움이 됐어요.”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스승 프란스 헬메르손의 레슨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큰 그림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2020년 가을부터 다닌 베를린 예술대학에선 볼프강 에마뉘엘 슈미트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비유, 바디랭귀지를 배웠다. 올 가을부터는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왕립음악원에서 이반 모니게티에게 배운다. 그는 마스터클래스를 분석하고 맥락과 문학적인 감수성을 중시한다. 시를 찾아 낭송하는 수업도 있다. 최하영은 김춘수 ‘꽃’을 번역해서 읊었다.

어린 시절 태권도와 발레, 피겨스케이팅을 했던 최하영의 요즘 취미는 재즈 드럼 연주다. 아트 블레이키와 필리 조 존스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베를린에서 재즈 연주하는 친구들과 합주할 날을 고대한다.

최하영은 이번 콩쿠르 2위 입상자인 중국의 이바이 첸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 투어에 참여한다. 14일 부산문화회관, 15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16일 제주 서귀포 예술의전당, 17일 철원 PLZ페스티벌, 18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1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최하영의 연주를 볼 수 있다.

12월 5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반주로 우승 기념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라흐마니노프, 멘델스존, 브리튼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한다.

최하영은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2021 제네바 콩쿠르에서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다. 콩쿠르는 알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빨리 잊고 털어버리는 성격이 필요하다고 후배 연주자들에게 조언했다. “무대에서 자기 음악에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죠. 심사위원들에게 나를 입증하려고 연주한다기보다 그분들을 내 음악에 초대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할 수 있었죠.”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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