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못 나갈판" 배편 끊길 위기…주민들 더 화나게한 현수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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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 사는 고재우(60) 어촌계장은 지난달 29일 관공서 업무를 보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대천항에 나왔다가 2박 3일 만인 31일에야 섬으로 돌아왔다. 애초 30일 오전 10시 출발하는 여객선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강풍으로 배가 결항하면서 결국 육지에서 이틀을 묵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더 지출한 숙박비와 밥값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었다.

충남 보령에서 외연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지난달 23일부터 하루 2편에서 1편으로 줄어들면서 섬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보령에서 외연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지난달 23일부터 하루 2편에서 1편으로 줄어들면서 섬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신진호 기자

고재우 어촌계장이 일을 보는 데 소요된 시간은 1~2시간에 불과했다. 예전 같으면 오전 9시40분 외연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대천항에 도착, 일을 마치고 오후 2시 출항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예약만 하면 시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대천항으로 돌아와도 섬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을 타기에 시간이 충분했다. 섬 주민들이 하루 만에 육지를 오갈 수 있는 ‘일일생활권’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대천항~외연도 여객선 하루 2편→1편 운항 감축

보령 대천항과 외연도(호도·녹도 경유)를 오가는 여객선(웨스트프런티어호)은 4년 전인 2018년부터 운항 횟수를 하루 2편으로 늘렸다. 육지와 51㎞ 떨어져 사는 외연도 주민과 관광객, 공공기관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오전 8시와 오후 2시 각각 출항한 여객선은 호도와 녹도를 들러 외연도에 도착한 뒤 다시 대천항으로 돌아오는 구간을 운항했다. 여객선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지난달 23일부터 외연도 주민들은 이런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여객선을 운영하는 신한해운이 대천~외연도 여객선의 운항 횟수를 하루 2편에서 1편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23일은 기상악화로 모든 배가 결항해 실제로 운항이 줄어든 건 24일부터다. 하루 2편일 때도 기상 상황에 따라 수시로 결항했는데 1편으로 줄어들면 발이 묶이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됐다.

경영악화로 대천~외연도 노선 운항을 감축한다는 안내문. 신진호 기자

경영악화로 대천~외연도 노선 운항을 감축한다는 안내문. 신진호 기자

신한해운은 대천항~외연도 노선 운항 감축을 결정하면서 가장 큰 이유로 적자를 들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승객 감소와 유류·인건비 인상, 물가 상승으로 경영이 악화해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주말과 공휴일에는 하루 2편을 운항한다. 적자가 누적되면 11월부터 대천항~외연도 노선 운항을 아예 중단하겠다는 게 신한해운의 방침이다. 결국 섬 주민들은 발이 묶이고 육지와 단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객선사 "사재 다 털어도 경영난, 적자 누적"

신한해운 측은 “섬 주민의 피해를 모르지 않지만, 회사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보다 2배로 오른 기름값으로 여객선을 운항할수록 적자만 더 쌓인다는 게 신한해운의 입장이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3억원이던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올해 1억5000만원으로 줄면서 경영이 더 악화했다고 한다.

신한해운 김미경 대표는 “코로나19 여파와 승객 감소를 (우리 회사를 포함해) 여객선사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동안 섬 주민을 위해 고통을 감내해왔지만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김 대표는 경영개선을 위해 사재를 대부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보령 대천항 모습. 신진호 기자

충남 보령 대천항 모습. 신진호 기자

정부와 충남도·보령시는 지난해까지 두 가지 항목으로 연간 3억원의 예산을 신한해운에 지원했다. 일일생활권 노선을 오가는 항로 지원 명목으로 해양수산부 대산지방해양수산청과 자치단체가 각각 7500만원씩 1억5000만원, 적자 보전 명목(최대 70%)으로 해양수산부가 1억5000만원을 부담했다. 하지만 올해부턴 ‘두 가지 항목 중 하나만 지원한다’는 해수부 지침에 따라 일일생활권 명목으로 1억5000만원만 지원하고 있다. 해수부 예산 지원은 총 2억2500만원에서 75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해수부는 두 항목이 유사하다고 판단,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관련 규정, 예산 추가지원 불가" 

지난달 초 신한해운에서 ‘대천항~외연도 노선 운항 감축’ 서류를 받은 대산해양청은 관련 내용을 인가했다. 섬 주민들이 피해가 예상됐지만, 관련 규정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해수부와 대산해양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예산의 추가 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섬 주민이 국민이기 전에 도민(道民), 시민(市民)이기 때문에 충남도와 보령시가 별도의 예산항목을 만들어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게 해수부의 입장이다.

충남 보령 대천항여객선터미널에서 주민들이 배를 기디라고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보령 대천항여객선터미널에서 주민들이 배를 기디라고 있다. 신진호 기자

외연도 주민들은 “선사와 정부, 자치단체가 주민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재우 어촌계장은 “높은 양반들이 선거나 행사 때만 되면 ‘섬에서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인사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나 몰라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섬 생활도 녹록지 않은 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서럽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尹 "유인도 일일생활권화" 국정과제…현실은 반대

더욱이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유인도 일일생활권화’를 포함시켰다. 섬 주민들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취지에서다. 대천항에도 이런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하지만 해수부 지원은 줄었다. 외연도 주민들은 “(부두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면 더 화가 난다”고 했다.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유인도 1일 생활권화'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유인도 1일 생활권화'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외연도의 한 주민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외롭게 섬을 지키는 주민들이 육지에 나가는데 이렇게 힘들면 어떻게 정부와 자치단체를 믿겠느냐”며 “선사(신한해운)와 정부, 자치단체가 협의해 기존의 운항횟수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안여객선 공영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섬 주민의 이동권 보장과 관광객의 안정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민간 사업자에게 서비스 개선과 안전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도 2025년까지 여객선 공영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전문가 "이동권·안전 보장 위해 공영제 전환" 

목포해양대 해상운송항부 노창균 교수는 “해양사고 재발 방지와 안전운항을 위해 여러 차례 법 제·개정이 있었지만, 대중교통수단으로 공영제가 도입되지 않아 안정성 확보가 곤란하다”며 “안전 증진과 이동권 제고라는 국가의 헌법적 의무를 위해 공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김태흠 충남지사가 보령시청을 방문, 보령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지난 1일 김태흠 충남지사가 보령시청을 방문, 보령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충남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서삼석 국회의원(영암·무안·신안)은 “섬에 산다는 이유로 불편이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며 “여객선 공영제로 섬 주민의 교통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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