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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비 폭탄' 집 내놓을 빈곤층…작년보다 지원 39% 늘렸다 [尹정부 약자복지 분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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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기초생활 수급자 독거노인 집을 나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기초생활 수급자 독거노인 집을 나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정치복지에서 약자복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출근길 회견에서, 1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위기 가구 발굴체계 강화 현장 간담회에서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의 보편적 복지인 포용복지를 "선거용 정치복지"라고 비판하면서 차별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보편·선별 복지 논란이 이어져 왔는데, 윤 대통령은 선별적 복지를 택하면서 약자복지를 내걸었다.
 윤 대통령의 이런 프레임은 방역정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을 정치방역으로 규정하고, 과학방역(표적 방역)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 정부와 달리 영업시간과 사적 모임 인원을 무차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복지에서도 취약계층을 타기팅(표적)하겠다는 뜻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달 30일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은 약자복지 방침에 따라 짰다. 전체 예산(본예산+추가경정예산)을 전년보다 41조원 줄이면서 복지 부문은 늘렸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보건을 제외한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92조659억원으로 전년(80조6484억원)보다 14.2% 늘었다. 전 정부 5년 연평균 증가율(11.2%)보다 꽤 높다. 고득영 복지부 기획조정실장은 "전체 재정 지출을 줄이더라도 취약계층은 보다 두껍게 보호해야 한다는 새 정부의 약자복지 정책 기조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급여 등 76개 복지의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이 5.47%(4인 가구 기준) 올랐다. 문 정부 연평균 증가율(2.78%)의 2배이다.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난 분야는 '의료비 폭탄'으로 불리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다.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거나 규모를 줄이는 '의료 빈곤층'이 대상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지원 대상을 암 등 6대 질환(외래진료)에서 모든 질환으로, 지원 한도액을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했다. 이를 위해 예산이 436억5900만원에서 605억4500만원으로 38.7% 늘었다. 전 정부 연평균 증가율(5.2%)의 7.4배에 달한다.
 장애인 분야(복지부 장애인정책) 지원도 11% 늘어난다.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의 경증 장애인(종전 기준 장애 3~6등급)에게 지급하는 장애수당이 2015년 이후 처음 오른다. 월 4만원(복지시설 거주자 2만원)에서 6만원(3만원)으로 오른다. 기초수급자 장애수당 예산은 75.1%, 차상위계층은 18.5% 늘어난다. 전 정부(연평균 2.4% 인상)에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장애아동 가족지원도 17.8%(전 정부 14.1%) 올랐다. 이밖에 의료급여, 맞춤형 돌봄 등의 지원액도 적지 않게 늘었다. 최근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자립지원청년(보육원 퇴소 청년) 지원 예산도 61% 늘었다.

윤석열 약자복지 담은 첫 예산 분석 #재난적 의료비 지원 증가율은 전정부의 7배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2배 #장애수당은 7년만에 크게 올려 #시민단체 "물가인상률에 못 미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초수급자 선정의 재산 기준도 꽤 완화됐다. 전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집중했고, 이번 정부는 그동안 공고하게 유지되던 재산 기준을 풀었다. 재산 공제액을 높이고, 지역 구분을 세분화했다. 이 덕분에 생계비 수급자가 3만4952가구, 의료비 대상자가 1만2687가구 새로 생긴다. 물론 전 정부보다 증가율이 둔화한 것도 있다. 장애인연금이나 활동 지원, 발달장애인 지원, 아동학대 예방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를 내건 예산에서 약자에 집중한 예산을 적지 않게 늘린 점은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전 정부가 보편적 복지, 현금복지를 하면서 정작 선거 때 보이스(목소리)가 약한 그룹을 상대적으로 챙기지 않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가 바로잡는 중"이라며 "취약계층부터 (현금)복지를 튼실히 챙기자는 게 약자복지이며 이게 윤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유권자를 의식해 복지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혜택 확대에 치중했지만 현 정부가 표 계산을 하지 않고 위험에 빠진 이에게 집중하려는 건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앞으로 기초연금 인상도 소득 하위 40% 이하 저소득 노인에게 집중하고,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재산 기준에 걸려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비판적이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0일 논평에서 "기준중위소득 인상, 주가급여 기준 상향, 긴급복지 확대 등으로 기초생활보장 예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6월 이후 물가상승률이 6%대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자랑할 만한 수준이 아니며 사실상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에 돌봄 서비스가 맡겨진 탓에 질이 매우 낮고, 돌봄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지 오래다. 그런데도 공공성이 담보된 인프라 확충 예산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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