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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성원 모두 과학적 태도 가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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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선진사회의 조건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2018년 미국의 한 여론조사 업체가 8200여명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100%가 아니라 84%의 사람들만이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했다. 18세에서 24세까지의 젊은 층에서는 66%만이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젊은 층의 4%는 아예 지구가 평평하다고 굳게 믿는다고 답했다. 2020년 2월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사제로켓을 타고 날아올랐던 사람이 사망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과학적 사실, 만고불변의 진리 아냐
비판 열려있고, 수정·대체 가능해야
과학적 태도 갖춰야 혁신국가 가능
지속적 발전 위해 열린 자세 필요해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은 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자기 확신에 빠져든다. 평평한 지구의 과학적 증거가 무려 200가지 된다고 주장하지만, 둥근 지구의 증거를 제시하면 아예 무시하거나 거대한 음모 하에 조작된 정보라고 폄하한다. 게다가 주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과학이론을 동원한다. 무엇을 믿는가는 자유지만, 평평지구론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고집하는 교조적인 태도다. 평평지구론을 과학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항상 비판에 열려있어야 하고, 더 나은 설명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하고, 과학혁명이래 인류문명이 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과학적 사실은 조건적이며 잠정적

미국인 올랜도 퍼거슨이 1893년에 그린 ‘평평한 지구’ 지도.

미국인 올랜도 퍼거슨이 1893년에 그린 ‘평평한 지구’ 지도.

우리가 가끔씩 잊곤 하지만, 과학적 진술은 무엇보다 조건적이다.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180도가 된다는 초등학교 수준의 상식도 평면이라는 조건일 때 성립하는 이야기다. 조건을 달리해서 축구공처럼 둥근 표면 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세 각의 합은 반드시 180도를 넘는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상식도 압력조건이 다른 에베레스트 산 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건이 달라지면 과학적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놀라운 효과의 신약물질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접할 때는 그 조건을 예리한 눈으로 살펴야 어설프게 속지 않는다.

게다가 과학적 사실은 잠정적이기도 하다. 2000년이 넘도록 훌륭하게 천문의 운행원리를 설명해오던 천동설은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동설로 대체되었다. 만고의 진리로 추앙받던 뉴턴의 고전물리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부분이론이 되었다. 지금도 매일 수 만편씩 쏟아지고 있는 학술논문들은 예외 없이 기존 이론의 문제점과 한계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과학교과서에 실려있는 그 많은 수식과 사실들도 더 나은 설명력을 가진 새로운 논리와 증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유효할 뿐 잠정적인 진실에 불과하다.

인간의 한계도 분명하다. 각 학문의 분과들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 그 어떤 사람도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 알지 못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16세기까지의 이야기다. 따라서 하나의 과학적 현상을 잘 안다고 주장할 때는 그 현상의 한 측면을 잘 안다고 겸손하게 표현해야 하고, 다른 측면의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학적 사실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 또 다른 이유는 많은 경우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2006년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 지위를 잃었다. 명왕성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과서가 바뀐 것이다. 이 결정은 2006년 8월 24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학연합(IAU) 총회에서 424명의 전문가들의 다수결 투표로 결정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알고 보면 사람들 간에 합의된 프레임을 바탕으로 해석된 후에야 우리에게 전달된다. 2017년 중력파를 관측한 공로로 3명의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받았지만,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LIGO)라는 특정한 설비에서 일반인이 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모니터 위의 패턴과 숫자를 특정한 절차에 따라 해석한 결과를 들었을 따름이다. 이것을 중력파의 증거로 채택한 것은 과학자 집단의 합의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도 해석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고, 미래에 더 나은 설명의 패러다임이 제시되면 이 중력파 관측의 결과 또한 다시 재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 사실 이면에는 고도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심지어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과학적 사실들마저도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과학적 사실들이 조건적이고, 부분적이며, 잠정적이고 동시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적 사실들이 인간사회 밖에서 독립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활동 내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기술적 혁신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이론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언제든 비판을 받아들여 고칠 수 있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신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항상 비판에 열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이론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할 만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진실은 그 자체로 자명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태도가 결정한다. 인문과학·사회과학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도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 모두가 미적분이나 통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문사회적 주장 또한 모든 비판에 열려있어야 하고, 다른 증거가 제시되면 지금까지의 주장을 고칠 수 있는 열린 과학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17세기 과학혁명이 중요한 것은 산업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의 조건적이고 잠정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과학적 태도를 정립한 데 있다. 칼 포퍼는 이를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기술선진국은 과학기술자가 많은 사회가 아니라 경청과 개선의 과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많은 열린 사회다. 과학적 태도가 전제되어야 미래를 향한 도전적 질문이 활발하게 던져지고, 왕성하게 실험이 일어나는 혁신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태도는 과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문명발전의 일반원리다. 평평한 지구를 믿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비웃을 때가 아니다. 우리 안에도 평평지구론 못지 않은 반과학적 태도가 결코 적지 않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과학기술 교육에 힘을 쏟았고, 그 덕분에 지금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이 진정 과학적 태도를 갖춘 선진사회가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아예 무시하고 제 목소리만을 높이는 와중에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건강한 토론의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과학기술 전공자의 수가 많아지고 의사결정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과학적 태도를 갖는 일이다. 즉 사회 각 분야에서 대안적 상상과 비판을 과감히 할 수 있고, 또 그 비판을 수용해 기꺼이 기존의 생각을 고쳐나가는 열린 사회의 환경이 갖추어질 때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될 수 있다.

리더는 경청하는 과학적 태도 가져야

특히 리더들이 경청과 개선의 과학적 태도를 갖지 않으면 혁신조직은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최근 모 기업의 기술임원들과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이 무엇일지, 그런 질문들을 자유롭게 제기하고 실험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책임있는 임원들과의 솔직한 토의는 그 자체로 상호 학습과 변화의 시간이었지만, 내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 사람에게 유독 신경이 쓰였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던 그 임원이 마지못해 가끔씩 내놓은 말은 “내가 그 분야 전문가라서 아는데 그건 가능성이 1도 없는 이야기예요”였다. 열기를 더해가던 토론은 그 임원이 등장할 때마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식었고, 그때마다 참여자들 중 누군가는 들릴 듯 말 듯 한숨 소리를 냈다. 토의를 주재하던 나는 ‘찬물 임원’이 등장할 때마다 다시 불을 지피느라 진땀을 흘렸다. 몇 시간의 토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면서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과학적 태도를 갖추지 못한 1급 전문가보다 과학적 태도를 갖춘 2급 전문가가 혁신기업을 만드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