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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이원석의 수사 칼날, 유병호의 감사 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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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국민이 선거로 권력을 교체하는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에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는 체제의 건강함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 이빨 뽑힌 검찰, 정치 외풍에 시달린 감사원을 보면서 권력형 범죄와 정책 비효율을 걸러내는 한국사회의 여과 기능이 고장 났다는 우려가 컸다.

5일 국회 청문회에 나서는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왼족)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연합뉴스,중앙포토]

5일 국회 청문회에 나서는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왼족)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연합뉴스,중앙포토]

 그런 의미에서 두 공직자의 행보를 주목한다. 5일 국회 청문회 자리에 서는 이원석(53) 검찰총장 후보자와 지난 6월 임명된 유병호(55) 감사원 사무총장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인 두 사람은 민주화된 김영삼 정부 때 공직에 입문했다. 이 후보자는 1995년 사시 37회로 검사가 된 뒤 27년간 특수수사에 전념했고, 유 총장은 1994년 행시 38회로 총무처·정보통신부를 거쳐 1997년부터 감사원에서 25년간 한 우물을 팠다.
 두 사람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 후보자는 대검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치며 특수통으로 성장했다. 이명박 정부 4대강 의혹 수사, 탄핵당한 대통령 박근혜 직접 조사 등 대형 사건을 다룬 경험이 풍부하다. 유 총장은 감사원 특별조사국 기동감찰과장, 감찰정보단장, 공공기관감사국장 등 핵심 감사 보직을 두루 거쳤다.

2019년 10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 중간에 이원석 기획조정부장(현 검찰총장 후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특수수사 분야에서 한솥밥을 먹었다.[중앙포토]

2019년 10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 중간에 이원석 기획조정부장(현 검찰총장 후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특수수사 분야에서 한솥밥을 먹었다.[중앙포토]

 두 사람은 문 정부에서 인사 불이익을 당한 공통점도 있다. 이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2019년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검찰 개혁 8개 안'을 마련했으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수원고검 차장으로 좌천됐다. 유 총장은 2019년 지방행정감사1국장 시절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 비리’ 의혹을 감사해 사장엔 해임 요구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엔 주의 처분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를 건드렸기 때문인지 그 후 심의실장으로 좌천됐다. 대쪽이란 평가를 받은 최재형 감사원장이 그를 다시 중용하자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감사를 뚝심 있게 추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탈원전 감사가 괘씸죄에 걸렸는지 또다시 한직인 감사연구원장으로 밀려났다.
 정권 교체 이후 두 사람은 부활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 5월 김오수 검찰총장 사퇴 이후 대검 차장으로 영전해 총장 직무대리를 맡았고 지난달 윤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다. 유 총장은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인수위에 파견됐고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으로 발탁됐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6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유병호 신임 감사원 사무총장에게 임명장 전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민감한 감사를 추진하다 두 차례 좌천됐다.[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6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유병호 신임 감사원 사무총장에게 임명장 전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민감한 감사를 추진하다 두 차례 좌천됐다.[뉴스1]

 이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문 정부의 부정적 유산을 본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문 정부가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수사 대상 범죄를 대폭 축소한 데다 김오수 총장 시절 권력형 비리 수사에 미온적이어서 수많은 의혹 사건이 산적해 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의혹들도 수사가 진행중이다. '친윤'이란 부담을 벗고 정치 중립 시비를 피하면서 검찰의 수사 역량을 조기에 회복해 민감한 사건을 말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이 후보자가 떠안은 형국이다.
 대체로 새 정부 초기에는 전 정부 정책을 집중적으로 감사하고 이후에는 새 정부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 감사원의 관행이지만 문 정부에서는 파행을 겪었다. 전직 감사원 간부는 "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정책을 탈탈 털었지만 정작 문 정부 정책 감사에는 외압을 가해 막았다"며 "국회가 청구한 탈원전 감사를 빼면 지난 5년간 감사원 자체 감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여서 로펌에 영입된 감사원 출신들이 눈칫밥을 먹었고 퇴직자들의 로펌 재취업도 어려웠다"고 전했다. 해야 할 감사를 제때 안 하는 바람에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정책 혼선, 엉터리 코로나19 백신 정책,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4대강 보 수질 항목 조작 및 해체 의혹 등 유 총장이 처리할 감사 숙제가 산더미다.

이재명 민주당 신임 대표가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손을 잡고 웃고 있다. 검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게 6일 오전 출두하라고 통보한 상태다.[뉴스1]

이재명 민주당 신임 대표가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손을 잡고 웃고 있다. 검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대표에게 6일 오전 출두하라고 통보한 상태다.[뉴스1]

 두 사람이 직면한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야당의 정치 공세에 매끄럽게 대응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과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윤석열 사단'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과 사적 인연이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도 사적 관계는 없고 공적 기관에서 측근이나 라인은 있을 수 없다"고 이 후보자가 선을 그었으니 새 정부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 공정하게 검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현 정권에도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유 총장의 공언처럼 동일한 잣대로 새 정부 정책에 감사의 거울을 비춰야 할 것이다.
 지인들의 인물평을 들어보면 이 후보자가 사리판단에 밝고 치밀한 두뇌형이라면, 이종격투기로 단련된 유 총장은 불의에 비타협적인 원리원칙형이다. 두 고위 공직자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국민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대임을 잘 수행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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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5년간 방치된 의혹 많아 #검찰과 감사원 기능 정상화 시급 #오로지 법과 국민만 생각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