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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무기고" 찬사 들은 K방산...여기 숟가락 얹는 그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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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외교안보팀장의 픽 : 민주주의의 무기고 

지난해 10월 일이었다. 방위사업청 아침 간부 회의 때 “폴란드에서 K2 전차에 대해 관심이 높더라”는 정보가 보고됐다. K2 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은 앞서 폴란드에 K2를 제안했지만,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래서 독일의 레오파르트 2에 밀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터였고, 폴란드 대신 노르웨이에 공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57억 6000만 달러ㆍ약 7조 6780억원)을 맺었다. 왼쪽부터 세바스찬 흐바웩 PGZ 회장,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 엄동환 방위사업청장,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유동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 방위사업청

지난달 26일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57억 6000만 달러ㆍ약 7조 6780억원)을 맺었다. 왼쪽부터 세바스찬 흐바웩 PGZ 회장,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 엄동환 방위사업청장,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 유동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 방위사업청

이날 방사청 회의에서 바로 폴란드에 간부급을 보내자고 결정됐다. 당시 강은호 방사청장은 “폴란드는 독일과 역사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다. 그리고 노르웨이와 폴란드를 묶으면 유럽에 K-방산 벨트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지서 알아보니 폴란드는 K2에 진심이었다. 폴란드는 기존 보유하고 있는 레오파르트 2를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을 독일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진행 속도가 느리고 사업비도 뛰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급한 불을 끄러 미국에서 M1 에이브럼스를 주문했지만, 납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폴란드가 원하는 성능의 전차를 원하는 수량으로 원하는 기간 안에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지난달 26일 폴란드는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와 함께 K2 전차를 구매하는 57억 6000만 달러(약 7조 6780억원) 계약을 맺었다. 한국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는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전차ㆍ자주포 추가 계약이 기다리고 있다. 또 FA-50 경공격기 48대 계약의 세부조건을 놓고 한국항공우주와 폴란드간 협상이 진행 중이다.

K-방산의 진격이 대단하다. 노르웨이(전차)와 호주(보병전투차)에서도 독일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두 곳 모두 승산이 높다고 한다. 올 상반기에만 아랍에미리트(UAE)와 4조원대의 천궁-Ⅱ 방공 미사일, 이집트와 2조원대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각각 따냈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 미국연구센터의 피터 리ㆍ톰 코번 연구원은 온라인 매체인 워온더락스에서 한국을 ‘민주주의의 무기고’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방산은 이미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며 “한국산 군용 장비는 미국산보다 싸면서도 성능이 좋다”고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는 대단한 찬사다. 이 문구는 1940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무기 대여법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언급했다. 40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에게 구석에 몰렸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영국을 군사적으로 도와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산업은 민주주의 진영의 무기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었고, 동시에 영국ㆍ소련ㆍ중국 등에 엄청난 무기와 물자를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처럼, 한국이 신냉전에 가까운 국제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기대된다는 의미라 하겠다.

이처럼 K-방산이 잘 나가자 정치권이 숟가락을 얹으려는 모습이 슬슬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폴란드와의 전차ㆍ자주포 계약 때 방사청은 보도자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 때 있었던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의에서 방산 협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함에 따라 계약체결에 속도가 붙었다”고 적었다.

물론 한국ㆍ폴란드 정상회담이 계약에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밑그림은 이미 다 나온 상황이었다. 일각에선 폴란드 수출은 문재인 정부의 업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K-방산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던 적이 있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올 2월 이집트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은 지난해 12월에도 체결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집트를 방문하는 올 1월이나 그 이후로 계약을 연기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고, 공교롭게도 계약이 두 달 늦춰졌다. 문 전 대통령 순방 성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K-방산의 연이은 대박은 ‘방산 비리나 저지른 세금 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연구·개발과 생산에 열중한 방산업계의 노력 덕분이다. 또 방산업계와 함께 수출길을 뚫은 국방부와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군 당국이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일등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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