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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가 맡긴 100억 "못준다"…은행과 3대째 싸우는 가족, 무슨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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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정 씨의 부친인 고(故) 김주식 씨가 남겼다는 100억 현금보관증. 사진 연합뉴스=제보자

김규정 씨의 부친인 고(故) 김주식 씨가 남겼다는 100억 현금보관증. 사진 연합뉴스=제보자

1946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돈을 맡겨 뒀으나 은행이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3대째 돈을 찾지 못했다는 가족의 사연이 알려졌다. 이 가족은 현재 가치 100억 원으로 추정되는 현금보관증을 갖고 있지만,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금을 거절당해 정부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군의 김규정(79) 씨는 부친이 조흥은행에 남긴 거액의 돈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

사연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규정 씨의 부친 고(故) 김주식 씨는 14세였던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는 1945년 해방을 맞자 고생하며 모아놓은 엔화를 들고 귀국했다.

김주식 씨는 당시로 거액이던 돈을 집안에 보관해두기 어려워 조흥은행 예천군의 지점을 찾아 맡기고 현금보관증을 받았다.

현금보관증에는 1946년 3월 5일 조흥은행 풍천지점의 박종선 지점장이 예천군 보문면 미호동에 사는 김주식 씨의 일본 돈 1만 2220엔을 받아 보관함을 증명한다고 적혀있다. 김주식 씨의 사인과 조흥은행 직인이 찍혀 있으며 다른 사람이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도 명시돼 있다.

김주식 씨가 맡긴 돈의 가치는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지만, 당시 환율과 물가 상승, 화폐개혁 등을 고려할 때 현재 가치로 40억~70억 원으로 평가되며 76년간의 은행 이자까지 합하면 100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가치 산정의 기준이 되는 쌀값의 경우 경기미 1등품 한 가마(80kg)가 1946년 3.86원에서 올해 22만 1520원으로 5만 7389배 올랐다.

아들 김규정 씨는 1980년대 초 방문한 조흥은행의 한 국고 담당 대리관에게 "우리 은행 것이 맞다"며 "100억 원 이상을 내줘야 하지만, (거액을) 인출하려면 재무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20여일 뒤 금융당국에 문의했더니 이전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현금보관증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김주식 씨는 이후에도 정부 기관들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69년 화병으로 눈을 감았다. 현금보관증은 창고에 있다가 1982년 다시 발견, 그때부터 다시 돈을 찾기 위한 김주식 씨 가족의 노력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신한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해 자료들을 찾아봤고 금융당국에도 알아봤다. 은행 직인과 지점장 이름, 계좌 등을 조사했으나 현금보관증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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