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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토스터·선풍기 10배 주고 산다…발뮤다 '감성가전' 비결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INTRO: 감성 제대로 건드린 생활가전계의 애플

혼자 산 지 벌써 6년. 요즘 부쩍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사무치는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어둡고 조용한 집이 싫어 조명 기능이 있는 스피커를 샀어요. 소리를 빛으로 보여주는 감성템, '발뮤다 더 스피커'랍니다. 음악에 맞춰 호롱불처럼 춤추는 것이 특징이죠. 영롱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지친 하루를 위로 받는 것 같습니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스팀 토스터, 혹시 들어보셨나요? '발뮤다 더 토스터'인데요, 이것 역시 지금까지 한국에서 36만대나 판매된 발뮤다의 대표적인 감성 가전이랍니다. 그런데 이 토스터,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희망소비자가격이 무려 33만9000원. 다른 가전 브랜드의 토스터와 비교하면 3배에서 많게는 10배나 비싸요. 하지만 토스터 가격은 발뮤다의 세계에선 귀여운 편에 속합니다. 선풍기(54만9000원)와 오븐레인지(69만6000원)를 생각하면 말이죠.

한국에서만 36만대가 팔린 '발뮤다 더 토스터'. 사진 발뮤다

한국에서만 36만대가 팔린 '발뮤다 더 토스터'. 사진 발뮤다

가격이 이렇게 비싼데도 사람들이 저처럼 발뮤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토스터가 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필수 가전도 아닌데 말입니다. 선풍기는 또 어떤가요. 다들 집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선풍기가 특별해 봤자 뭐 얼마나 특별할까 싶은데, 취향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워너비’ 가전 중 하나가 바로 50만원이 넘는 발뮤다의 선풍기라고 합니다.

이쯤하면 분명 이 브랜드, 가격이란 허들을 쉽게 넘겨버릴만한 치명적인 매력을 보유한 게 분명해 보이죠? 외로운 제 방을 캠핑장으로 만들어준 '감성 가전', 이번 주 비크닉은 '소형 가전계의 애플', 프리미엄 가전 기업 발뮤다(BALMUDA)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첫 한국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테라오 겐 발뮤다 CEO. 사진 발뮤다

지난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첫 한국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테라오 겐 발뮤다 CEO. 사진 발뮤다

#매출 4분의 1이 한국서 발생하는 브랜드

2003년 '록밴드 기타리스트'란 특이한 이력을 가진 테라오 겐(寺尾玄)의 1인 기업으로 출발한 발뮤다는 공기청정기, 서큘레이터, 선풍기, 토스터, 오븐레인지, 조명 등 총 16개 종류의 생활가전을 판매하고 있어요. 국내에선 스팀 토스터, 그리고 최근엔 전기주전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최근 발뮤다가 한국에서 존재감을 더욱 넓히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한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한 겁니다. 일본 전자공시시스템(EDINET)에 따르면 2분기 발뮤다의 한국 시장 매출은 총 14억500만엔(약 13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종전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지난해 4분기(10억4800만엔)와 비교하면 약 38% 증가했어요.

202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의 발뮤다 매출 추이. 올해 2분기에 한국에서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의 발뮤다 매출 추이. 올해 2분기에 한국에서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와 올해 2분기 발뮤다의 지역별 매출 비중. 한국 시장의 비중이 24.1%로 2.4%p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와 올해 2분기 발뮤다의 지역별 매출 비중. 한국 시장의 비중이 24.1%로 2.4%p 증가했다.

발뮤다에게 한국은 고향인 일본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이자, 가장 큰 해외 시장입니다. 올해 2분기 한국 시장의 매출 비중은 발뮤다의 전체 매출의 4분의 1에 달합니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일본 시장 비중은 4.8%포인트가 줄어든 반면 한국 비중은 2.4%포인트가 늘었죠.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발뮤다의 국내 총판을 맡고 있는 한국리모텍 라보람 전략마케팅사업부서장은 "발뮤다만의 디자인과 감성이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본다"며 "집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타고 고급 가전 브랜드로 국내 시장에 안착했다"고 말했어요.

공기청정기 '발뮤다 더 퓨어(BALMUDA The Pure)'. 사진 발뮤다

공기청정기 '발뮤다 더 퓨어(BALMUDA The Pure)'. 사진 발뮤다

#생활가전을 인테리어로 만들다

발뮤다의 매력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디자인'입니다. 특징은 한마디로 심플(Simple).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시선을 잡아끕니다. 일본 제품이지만, 미니멀 감성의 북유럽 가구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제품 이름도 디자인처럼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토스터는 '발뮤다 더 토스터(The Toaster)', 전기밥솥은 밥을 뜻하는 일본어 '고항(ご飯)'에서 따온 '발뮤다 더 고항(The Gohan)', 청소기는 '발뮤다 더 클리너(The Cleaner)', 스피커는 '발뮤다 더 스피커(The Speaker)'죠.

홈 인테리어가 중요해지면서 디자인은 가전의 중요한 구매 요인이 됐습니다. 김승인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는 2020년 생활가전이 홈퍼니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보고서에서 '가전의 가구화(化)'란 개념으로 2030세대의 가전 구매 양상을 설명했습니다. "최근 가전은 기술발전에 의한 ‘스마트’ 흐름을 지나 가구와 일체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수한 기능은 기본이고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가전이 집안의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주목 받는다"라고요.

발뮤다와 비슷한 포지셔닝을 통해 성공한 브랜드 사례도 많습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로 인기몰이를 한 영국 가전 다이슨(DYSON), 백색(白色) 일색이었던 냉장고 시장에 오렌지·핑크·레드 등 강렬한 컬러 디자인으로 충격을 준 이탈리아 가전 스메그(SMEG)도 디자인을 앞세워 가전의 가구화에 일조한 브랜드들입니다.

무선 선풍기 '발뮤다 그린팬S'. 사진 발뮤다

무선 선풍기 '발뮤다 그린팬S'. 사진 발뮤다

틀을 깬 기능은 발뮤다의 매력을 증폭시킵니다. 먼저 토스터를 볼게요. 세로로 빵을 꽂는 기존 토스터와 다르게, 발뮤다의 토스터는 오븐형으로 설계됐어요. 물을 넣고 구우면 증기가 분사돼 딱딱하게 굳은 빵도 갓 구운 것처럼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주죠. 기분좋은 자연 바람을 만들어내는 선풍기(발뮤다 그린팬S)는 전선때문에 옮기기 힘든 불편함까지 해소해주려고 무선으로 만들었답니다.

실제 사용자들은 디자인에 '홀려' 구매했다가 기능이 좋아 만족감이 높아졌다는 반응입니다. 지난 2년간 토스터를 사용해온 직장인 김지유씨(28)는 "디자인이 예뻐 부엌 인테리어용으로 장만했는데, 식빵 굽는 것뿐아니라 간단한 베이킹까지 가능해서 지금은 기능에 더 만족한다"고 했어요. 지난 여름을 발뮤다 선풍기만으로 버텼다는 박종서씨(43세)도 "간결하고 깔끔한 디자인에 반해 제품을 구매했는데, 무선 선풍기라 집안 곳곳에서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어요.

최성운 대진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는 2020년 발뮤다의 디자인을 연구한 논문에서 "발뮤다, 스메그 등 생소했던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해 기존 다국적 가전 기업들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이들은 독창적인 기업경영전략과 그에 상응하는 디자인 철학을 중심으로 소비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증기와 열로 딱딱하게 굳은 빵도 다시 촉촉하게 되살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발뮤다 더 토스터'의 주요 기능이다. 사진 발뮤다

증기와 열로 딱딱하게 굳은 빵도 다시 촉촉하게 되살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발뮤다 더 토스터'의 주요 기능이다. 사진 발뮤다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사실 발뮤다가 처음부터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니었습니다. 2012년 발뮤다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가전 브랜드일 뿐이었어요. 당시 발뮤다가 한국에 출시한 제품은 선풍기와 서큘레이터 등 여름 가전.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높은 가격 탓에 판매량은 부진했죠.

반전은 후발 주자로 출시된 공기청정기였습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공기 청정 수요가 급증하던 상황. 발뮤다는 친환경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제품 리뷰(체험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쏟아지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토스터, 전기주전자 체험기를 통해 발뮤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의 문구들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죽은 빵도 되살린다', '집에서도 티포트 없이 핸드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처럼요. 물론 발뮤다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긴 했습니다만, 생생한 실제 사용 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어요(저도 죽은 빵 한번 살려보고 싶더라고요).

가격이 아닌 경험의 가치로 경쟁하는 탈(脫) 염가 전략은 '고급 가전' 이미지를 굳히는 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특급호텔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럭셔리 가전’이란 이미지도 더해지니 가격은 더이상 문제되지 않았어요.

발뮤다를 국내에 들여온 한국리모텍은 이점에 착안해 체험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것으로 마케팅 방향을 잡았습니다. 라 부서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리뷰가 공유되면서 매출로 이어졌고, 팬덤이 생겼다"면서 "샤프·파나소닉 등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가전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는 게 테라오 겐 발뮤다 CEO의 경영 철학이에요. 디자인 존재감을 가진 물건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겁니다. 그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가전 제품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자는 편리함보다 새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찾고 있다"고 말한 바 있어요. 토스터를 개발할 때 기능을 '빵을 간편하게 굽는 것'에서 '빵을 굽고 식사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초점을 바꾼 이유죠.

쓸쓸한 저녁, 힐링을 주는 ‘발뮤다 더 스피커’. 사진 발뮤다

쓸쓸한 저녁, 힐링을 주는 ‘발뮤다 더 스피커’. 사진 발뮤다

#발뮤다가 넘어야 할 언덕

그런데 발뮤다의 미래가 지금처럼 마냥 밝을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발뮤다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아요. 환율 리스크 때문입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현재 달러당 137엔을 넘었습니다. 연초 대비 약 18%나 높고, 2002년 4월 이후로 가장 약세죠.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제품을 더 싼 가격에 수출할 수 있어 일본 기업엔 호재입니다. 그런데 발뮤다는 원가 절감을 위해 일본이 아닌 국외(중국·대만 중심)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한국·일본·북미로 수출하는 오프쇼링(Off Shoring) 방식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최근 엔저 현상으로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대비 가격 경쟁력이 낮아졌어요. 아직까지 발뮤다의 최대 시장은 일본인데, 국외에서 생산해 '수입'해야 하니 더 비싼 가격에 살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구매에 망설이게 되죠.

테라오 겐 CEO도 지난 8일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외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일본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우리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발뮤다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7.3% 감소한 8억엔(약 78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발뮤다가 일본으로 생산 기지를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발뮤다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발뮤다폰'. 사진 발뮤다 홈페이지 캡처

발뮤다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발뮤다폰'. 사진 발뮤다 홈페이지 캡처

최근 시작한 스마트폰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발뮤다는 지난해 11월 가전기업 교세라, 통신기업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공동 개발한 스마트폰 '발뮤다폰'을 출시했습니다. 직선이 없는 발뮤다 특유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죠.

하지만 발뮤다는 출시 한 달 만에 제품에서 전파 인증과 관련한 미비점을 발견,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문제를 해결하고 판매를 재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낮은 성능 대비 높게 책정된 가격. 자급제 기준 10만4800엔(약 102만원)이죠.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퀄컴 스냅드래곤765를 선택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스냅765는 LG전자가 지난 2020년 출시한 'LG 벨벳', 같은 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원플러스가 출시한 가격 30만원의 가성비 스마트폰인 '원플러스Z'에 탑재된 칩과 같습니다.

시바타 나오키 일본 기업 전문 칼럼니스트는 "발뮤다폰의 성능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다"며 "미들(중저가) 스펙에도 높은 가격 정책을 그대로 고수해 10만엔이 넘는 고가로 출시한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발뮤다폰 사업, 그리고 환율 리스크. 발뮤다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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