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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1억에 판다"…대만 발칵 뒤집은 인신매매 소름돋는 배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대만인 유탕은 지난 4월 페이스북을 통해 한 대만 여성에게 “온라인 카지노 사업과 관련해 캄보디아로 해외 취업을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의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표까지 준다는 말에 일단 캄보디아로 향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탕은 여권과 휴대전화 유심칩을 빼앗기고 전화 사기에 투입됐다. 유탕과 함께 도착한 한 남성은 전화 사기를 거부한 뒤 구타와 전기충격기 고문을 당해 정신을 잃었다.

#2. 피피(가명)도 유탕과 비슷한 경로로 캄보디아로 향한 젊은 대만 여성이다. 그는 철책으로 둘러싸인 산업 단지에 감금된 채, 인신매매 피해까지 당했다. 지난달 11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이 일주일 동안 4번 판매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현지에서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이미 사기 조직이 경찰을 매수해 의미가 없었고, 인신매매에 대응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아 겨우 대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대만 경찰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서 캄보디아 인신매매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는 용의자 2명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 경찰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서 캄보디아 인신매매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는 용의자 2명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초부터 대만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신매매 범죄조직의 수법이다. 이들은 중국어와 컴퓨터 타이핑만 할 줄 알면 매달 1500달러(약 203만원)에서 최대 3270달러(약 443만원)를 주겠다며 접근해 캄보디아로 유인한 뒤, 피해자가 공항에 도착하면 구금해 각종 사기 범죄에 가담시켰다. 피해자 가족에겐 수천만원의 몸값까지 뜯어냈다. 반항하는 이들에겐 폭행을 하거나 음식을 주지 않았고, 성폭행 등의 범죄도 저질렀다.

이들의 범죄는 대만 정부가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캄보디아에서의 대만인 인신매매에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면서 전말이 드러났다. 1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에 따르면, 대만인 외에 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인 피해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아시아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파악에 들어갔다.

CIB 추정 피해자 306명, 국민 “더 있을 것”

지난달 27일 대만으로 귀국하던 미얀마 내 인신매매 범죄조직 연루 혐의자 3명이 체포됐다. 사진 대만 범죄수사국 제공

지난달 27일 대만으로 귀국하던 미얀마 내 인신매매 범죄조직 연루 혐의자 3명이 체포됐다. 사진 대만 범죄수사국 제공

지난달 29일 대만 범죄수사국(CIB)은 지난 1년 동안 캄보디아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대만인 4679명 중 억류된 인신매매 범죄 피해자는 306명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만 정부가 앞서 밝힌 333명에서 다소 줄어든 것으로, CIB는 대만에서 귀국하지 않은 이들 혹은 이들의 가족에 직접 연락해 추정치를 산출했다.

하지만 대만 국민들은 제3국을 거쳐 캄보디아에 들어갔거나, 제3국에 억류된 피해자 등을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CIB 추정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 매체 포커스타이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미얀마 카렌족 반군과 결탁해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진 ‘KK 단지’ 및 인신매매 범죄조직과 연관된 혐의로 대만인 3명이 체포됐다. KK 단지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어려운 ‘인간 연옥’과 같다고 대만 TVBS방송은 전했다.

앞서 대만 언론들은 인신매매단이 심장 11만9000달러(약 1억6000만원), 간 15만7000달러 등 신체 부위별로 가격을 매겨 거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CIB는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7월 발간한 ‘2022 인신매매 보고서’ 중 동아시아ㆍ남태평양 지역 인신매매 실태 등급. 인신매매 실태 평가 1등급은 초록색, 2등급은 노란색, 3등급은 주황색, 4등급은 빨간색으로 표기한다. 사진 미 국무부 제공

미국 국무부가 지난 7월 발간한 ‘2022 인신매매 보고서’ 중 동아시아ㆍ남태평양 지역 인신매매 실태 등급. 인신매매 실태 평가 1등급은 초록색, 2등급은 노란색, 3등급은 주황색, 4등급은 빨간색으로 표기한다. 사진 미 국무부 제공

유독 캄보디아에서 인신매매 범죄가 성행하는 이유로 극심한 부정부패가 꼽힌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부패인식지수는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57위로 최하위권이다. 한 태국 경찰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도 절대 (인신매매 범죄조직을) 완전히 이길 순 없다. 그들이 벌어들인 돈은 누구라도 매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경우 반군 점령 지역에는 공권력이 아예 닿지 않는다.

고학력·중산층 자녀 대상 범죄

문제는 인신매매 범죄의 수법이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농촌 지역의 가난한 청년 등이 대상이 됐던 것과 달리, 최근엔 도심의 고학력자들까지 피해자가 됐다. 범죄 조직이 올린 가짜 취업 공고가 단속되지 않고 구직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또 구직 중인 젊은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등 적극적인 구인 활동도 일삼고 있다. 지난달 16일 대만 정부는 해외 취업 사기로 판단되는 구인 광고 179건을 삭제했다. 하지만 구직자에게 가는 개별 연락은 막기 어렵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사기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젊은 층이 겪고 있는 절망을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불법 카지노나 호텔 사업 등이 어려워진 범죄조직들이 이 공간을 사기 콜센터로 개조하고, 일자리가 절박한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제러미 더글러스는 “팬데믹은 메콩강 일대 범죄조직이 혁신하는 배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정부 당국에 따르면 이런 인신매매 범죄 조직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왔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위치한 중국 카지노의 모습. 채널뉴스아시아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위치한 중국 카지노의 모습. 채널뉴스아시아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대만, 캄보디아와 협조 난항…파고드는 중국  

아시아 각국 정부는 이번 인신매매 사건의 피해 현황 파악 및 자국민 구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만·중국·홍콩·마카오·베트남의 경찰 당국이 각각 자국민 구출을 위한 대규모 작전에 착수했다.

대만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캄보디아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가 중국과 가까운 동맹국이고 대만 정부와 공식적인 접촉을 꺼린다는 점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대만은 지난 1997년에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주재 공관을 폐쇄하고 베트남 호치민 주재 공관을 통해 영사 지원를 해왔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전 세계 대만 수교국은 10여 개국에 불과하다.

중국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 그는 지난달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홍콩과 대만 동포 등의 안전과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 그는 지난달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홍콩과 대만 동포 등의 안전과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중국은 대만 정부의 이런 어려움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대만 분리주의자 정권의 무능 때문에 대만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캄보디아 주재 중국 대사관이 사기 피해를 본 대만인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만 외교부는 “영사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만 주권의 일부다. 다른 나라(중국)에 영사 지원을 절대 아웃소싱(외주)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범죄 조직에 몸값을 주고 탈출한 젊은 커플이 대만 총통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사연이 언론을 통해 폭로되면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한편, SCMP는 피해자들이 사기 업무에 투입된 사실 때문에 범죄자 취급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범죄 행위에 가담했을 수 있지만, 이는 인신매매 조직의 강요에 의한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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